반창고를 붙일수 없는 상처 투성이

제2장 1화 내가 먼저 합시다

by David Dong Kyu Lee

한국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 새로운 대통령을 뽑고 위하여 대선 공약을 내거는 가운데 유일하게 기독교계에서는 대통령후보자들에게 엄청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이슬람문제 해결, 교육해결, 동성애 반대, 학원휴무화, 임시직 철폐, 상권보장, 중소기업 지원 및 보장 등 등 등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길 원한다고 하며, 한사람을 밀어주기 작전을 세운다. 공약을 아무리 내놓으면 무엇을 하는가?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시장이 되고, 도청장이 되어도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어찌할 것인가?

장로가 대통령이 되어 무엇이 달라졌는가? 아마 목사가 대통령이 되어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그 이유는 대통령은 한 나라를 대표하고, 국회의원은 국민들의 입과 발과 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국민들이 그들의 말을 믿고 그대로 행동으로 이행하기를 소망하였기 때문이다.

자식이 못나거나 잘나거나 똑같이 내 자식인 것처럼 대통령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한쪽만 편드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것에 있어서 국민을 잘 살도록, 국민이 옳은 길을 가도록 인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 역시 시장도 역시 도청장도 역시 국민의 입과 발과 손이 되어야 하고, 각시의 국민들을 대표하여야 하며, 각도에 속하여 있는 국민들의 아프고 힘들 고충들을 해결해주어야 하는 자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통령이나 정치지도자는 자기 집안 대대로 먹고살 것을 마련하려 하는 자들이 아닌가?

종교 지도자나 교인들은 착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교계 목사들도 그렇다. 교회가 크면 내자식에게 물려 줄려고 하는 모습은 저 북한의 김일성과 같은 세습이 아닌가?

각 교단의 총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20년전에 보통 30억이 들어가는 교단도 있다. 작년까지 만해도 교단장이 되기 위하여 100억을 뿌렸다는 교단도 있다. 명예라는 것과 권력이라는 것 때문에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일반국민들이 만져볼 수도 없는 돈들이 들어가고 술술 새어 나가고 있다. 그러한 돈이 누구의 것인가? 목사 개인의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목사 개임 것이라면 목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자기 배를 불렸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교단장들도 총회장이 되기 위하여 많은 공약을 내세우지만 제대로 지키는 목사나 교단장을 보지 못하였다. 한국에 있는 어느 목사들은 이곳 엘에이에 종교개혁500주년 설교를 하기 위하여 10만불을 내는 자들도 있다.

모든 정권을 잡은 자들은 세상정치나 종교계나 경제계나 교육계나 모든 부분이 다 마찬가지이다. 솔직히 국민들은 피 흘리고 땀 흘리고 고통하고 신음하면서 제대로 쉴 새도 없이 전전긍긍 살다가 세금 낼 철이 되면 세금을 내야하고, 세금을 내지 못하면 왜 가난한자들부터 차압이 들어오고 몰수할 것을 다 몰수하는지 모르겠다.

사회의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고 바라볼 때 국민들은 살맛도 나지 않고, 아무 낙도 없고 바람쥐 챗바퀴 돌리는 것처럼 변화가 없는 삶을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한다. 공약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플랜이 있다할지라도 그것들을 행하지 않고 지키지 못한다면 하나의 쓰레기더미에 불과한 것이다. 지키지 못할 쓰레기들을 왜 고귀한 입으로 내 뱉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나부터이다.

내가 하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정치 권력가들을 두려워하고, 내 체면을 두려워하고, 내가 해함을 입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나에게서 물질적인 손해가 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이 내대신 해줄 것을 바라는게 아니라, 내가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변화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나는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해라 그것은 바로 바보 멍청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갈급하고 정말 필요하다면 당신들이 믿고 있는 신들에게 간구하고 빌어라. 대선에 나가는 자들에게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나아가 쟁취하기 위하여 싸우고, 당신들의 믿고 따르는 신들에게 울부짖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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