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마음을 열어주세요
"우리 아이는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서울 강서구에 특수학교가 모자라 구로구에 있는 학교에 가려면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제대로 자기표현도 못하는 아이들이, 학교를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새벽마다 일어나는 것을 너무 힘들어합니다. 고3이 이런데 초등학교 장애아동들은 어떻겠습니까? 한 번만 부모라고 생각해 주시고 마음을 열어주세요"
어제 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는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가 열렸다.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목소리가 토론회장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굳이 장애를 갖지 않더라도, 그것이 특수학교가 아니라도, 내가 부모가 아니더라도, 학교를 반대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 <특수학교 설립>이 왜 이렇게 큰 문제로 붉어졌을까.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반대 비상대책위:줄여서 비대위> 위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강서구에 특수학교가 이미 있는데도 또 지으려 하는 것은 지역별로 균형 있게 지어야 한다는 특수교육 원칙에 위배된다"
그의 설명은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그의 말에 심각한 모순이 하나 있다. 일단 넘어가고 그의 또 다른 설명을 들어보자.
"공진초등학교 부지에는 허준의 전통을 살려 국립 한방병원을 지어야 한다"
일견 하기에, 특수학교 설립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한 두 번째 설명에 나는 잠시 생각이 멈췄지만 어쩌면 두 번째 이유야 말로 비대위가 현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즉 그들의 반대 이유는 <한방병원>을 지어야 한다는 궁극적인 목적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설픈 음모론을 전개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왜 한방병원을 원하는지 거기에 무슨 이권이 섞여있는지는 사실 내 관심사가 아니다.
사실 이번 사건은 지금 불거진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중 올해 3월의 인터넷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도 <비대위>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반대 이유를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반대 비대위 관계자는 “저희는 집값이 떨어질까 봐 반대하는 게 아니다”라며 “공진초 주변 200m 이내에는 장애인 복지관, 직업학교 등 6개의 장애인 시설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특수학교를 짓는 건 지역 형평성에 어긋난다”라고 말했다.
“특수학교가 없는 양천구에 먼저 지어야지 강서구 한 곳에만 특수학교를 또 짓는 건 지역균형발전에도 맞지 않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그들이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거라고 예상되지만, 나는 그들이 초지일관 외치는 '균형'과 '형평성'에 주목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균형과 형평성은 사전적 의미와도 매우 다르며 지극히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비대위>는 서울이 마치 하나의 '생명체'로 강서구를 그 생명체의 '왼쪽 팔'처럼 인식하고 있다. 서울은 그 이름으로 '하나'라고 인식되어 있지만 실상은 크고 작은 도시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도시다. 강서구는 59만 5천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거대 도시다. 우리나라는 15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지역을 시로 부르는데 그 기준에 의거하면 강서구는 자체적으로 거대 도시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다름 아닌 해당 지역주민(떳떳이 세금 내는)이 필요로 하는 특수학교 설립은 완전한 강서구의 문제이며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비대위가 양천구를 들먹이며 '균형'을 논한다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참고로 양천구의 인구는 47만 4천 명이다)
고로 <특수학교 설립>은 강서구의 문제 이기 때문에 더 이상 타 지역을 끌어들이지 않도록 하겠다.
서울시와의 균형은 더 이상 반대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보고, 나는 비대위가 말하는 형평성에 대해서는 코웃음이 나왔다.
“공진초 주변 200m 이내에는 장애인 복지관, 직업학교 등 6개의 장애인 시설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특수학교를 짓는 건 지역 형평성에 어긋난다”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강서구엔 이미 장애인시설이 많다는 게 이유라는데 이것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미 많다는 건 다른 지역에 비해 그렇다는 거다. 이미 시설이 있어도 필요하면 당연히 더 짓는 게 형평성 아니었나. 집값 떨어질까 반대하는 게 아니라고 하면, 지역 형평성에 맞춰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어진다.
형평성이란 이런 것이다. 그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비대위>는 자기 본심을 감추기 위해 또다시 장애인 학생과 그 가족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다.
“저희는 집값이 떨어질까 봐 반대하는 게 아니다”
나는 저 말을 믿는다. 왜냐하면 이번 일을 계기로 교육부는 전국 167개교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1km 이내 인접 지역과 1~2km 이내 비인접 지역의 표준지가·공동주택·단독주택 가격 등 10개에 대한 영향력을 분석했다. 그 결과 표준지가 등에서 의미 있는 수준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특수학교 인접지역에서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나는 아직 그들에게 선함이 있다고 여기니까.
집값이 어쨌든, 한방병원이 저쨌든, 이유가 뭐건 싫은 건 싫다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비대위와 김성태 의원에게 실망한 것은 그들이 본심을 감추기 위해 사용한 제스처와 대화 방법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반대 이유는 <한방병원 설립>이 <특수학교 설립>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며, 그들은 처음부터 균형과 형평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의미를 잘못 알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
영혼이 없는 그들의 반대 이유는 되려 그들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혀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무시'가 차별과 억압이 되어 다시 한번 장애인 학생과 가족들에게 상처만을 남기고 말았다.
그리고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대표들은 이런 말을 했다.
'장애인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님비(지역이기주의)가 아니다'
반대가 아니라고 외치면서 반대쪽에 서있고,
님비가 아니길 바라면서 누군가가 노비가 되길 바라는,
대한민국의 현재가 씁쓸해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