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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Oct 24. 2022

아침에는 진실이었다 오후쯤 거짓이 되는 것


간밤에 아주 푹 잔 때문일까? 몸이 이렇게 가볍다니 하루의 시작이 이보다 더 기분 좋을 수가 없다. 남편을 깨우는 목소리가 평소 나답지 않게 밝고 상냥하기까지 하다. 날씨마저 기특하다. 10월의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쾌청하다.     

 

후다닥 집안일을 끝내고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며 커피를 내려 마셨다. 부족함이 하나 없는 오늘의 이 순간. 난 너무 행복하다. 시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했다.

‘어머니 날이 너무 좋아 전화드려요. 별일 없으시죠? “

이런저런 이야기 오고 가고 통화를 마무리하면서 시어머니는  전화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셨다. 특별한 이유 없는 이 행복감. 충만함. 그러고 보니 내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창경궁에 산책 나갔다 들어오는 길. 딸내미가 전화를 했다. 갑자기 위경련이 와서 직장에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중이라고. 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경련이 종종 온다. 그런데도 내 기준에는 술을 너무 자주 마신다. 걱정과 짜증이 내게 인사를 한다. 안녕~ 불과 조금 전까지 나는 전례 없는 최고의 기분이었는데 우울한 세포들이 마구 활동을 시작하며 아이처럼 행복하고 활기찼던 내 육신과 기분에 걷잡을 수 없는 먹구름을 몰고 왔다. 난 역시 너무 쉽게 주변의 영향을 받는구나. 조금 전까지 행복하다, 충만하다는 내게 순도 100퍼센트의 진실이었는데....     


병원으로 가는 길에 친정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하필 이럴 때? 엄마와 통화를 하기 전에는 마음을 잠시 가다듬어야 한다. 표현이 거칠고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엄마. 심기를 자극하지 않고 부드럽게 엄마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통화가 될 때까지 집착하고 걱정하는 엄마. 화를 자초 하긴 싫었다. 역시나 별일 없이 잘 지낼 때는 먼저 전화하지 않는 평소의 엄마답게 아픈 여동생 걱정, 이런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헤아려주기는커녕, 걱정하면 아픈 딸이 낫냐며 핀잔을 준 남편에 대한 섭섭함과 억울함까지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낸다. 나는 전례 없는 최악의 기분이 되었다. 우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병원에 도착해 수액을 맞고 있는 딸을 잠시 보고 병원비를 정산한 후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아서 집으로 왔다. 속이 안 좋은 딸이 먹어야 하는 자극적이지 않은 저녁과 운동 가기 전에 든든하게 배를 채워야 하는 남편을 위한 저녁을 준비했다.    

  

유튜브를 켰다. 구독 중인 채널에 새로운 동영상들이 많이 올라왔다. 하나같이 경제 걱정. 나라 걱정. 대통령 걱정. 뭐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는 무능하고 기만적인 국가 시스템과 집권 여당에 대한 걱정과 비판이 난무하다. 피곤하다. 우울하다 절망스럽다. 아침에 쨍쨍하게 나를 채워졌던 행복감 충만감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나는 지금 전례 없는 최악의 기분이다.  




행복과 불행의 양 극단에서 칼춤을 추다 몸살이 나려는 것 같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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