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bina Oct 25. 2022

원더우먼이 머리를 잘랐다

 

원더우먼은 지쳤다. 고민이 많다. 자신의 고향인 신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혼자 앉아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어머니 저를 도와주세요.’


밤마다 그녀는 자신을 창조한 여신께 간곡한 기도를 한다. 슈퍼 히어로가 무릎을 꿇고 신의 이름을 부른다.      

지구에서 보낸 삶이 그럭저럭 100년이 되어 간다. 신의 가호 아래 불사신의 존재로 태어난 그녀. 신이 준 비범한 능력들을 사용해 인류의 평화와 진보를 위해 악의 세력을 무찌르고 힘없는 사람들을 구해왔다.      

하지만 자신의 신성한 책무를 완성하기위해 그녀가 들인 열정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좋아 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전쟁과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대립과 분열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사악한 세력들의 힘은 강하다. 평범한 사람들조차 쾌락과 탐욕과 이기심에 물들어 함께 살아가야 할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에게 위해를 가하고 있다. 지구는 더 이상 그녀가 처음 이 곳으로 왔을 때의 생명력이 넘치던 아름다운 행성이 아니다.   

    

신들이 그녀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모든 존재가 사랑과 평화 속에서 행복하게 공존하는 세상은 요원하기만 하다.  아름다운 슈퍼 히어로, 그녀의 힘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 보인다.      

신들이 이 행성의 진화를 위해 보내준 여러 슈퍼 히어로들과 힘들 모아 위기의 지구를 구해보고자 도모했었다. 그러나 지구에서의 삶에 너무나 익숙해진 그들이 자신의 인기와 명예를 내려놓고 대의를 위해 현신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받기위해 활동하는 히어로들. 힘과 능력을 대중들의 환화와 박수를 얻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자들. 그들은 더 이상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그저 능력 있는 연예인일 뿐이다.   

   

얼마 전 고속도로에서 큰 교통사고가 났다.  그녀는 급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폭발의 위험이 있는 탱크로리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다친 사람들을 병원으로 빨리 후송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차안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했다. 다행히 사고의 규모에 비해 인명 피해는 거의 없이 사고가 정리되어 오랜만에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원더우먼은 크게 절망했다. 

'섹시한 원더우면 능력도 충줄' '원더우먼 드디어 본연의 섹시 히어로로 돌아오다' '긴 머리 휘날리며 고혹적 자태의 원더우먼 날아오르다'    

그녀의 가슴과 엉덩이 라인이 강조된 동영상과 사진이 포털과 유튜브를 떠들썩하게 장식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실시간 동영상과 사진이 생중계되고 전송되는 근 몇 년간, 그녀는 드러나는 행동을 자제해 온 터였다. 하필 그날은 상황이 너무 급박했었다.  

그녀가 그날 행한 어마어마한 구조 내용은 원더우먼의 아름다운 외모를 팔아 돈을 벌고자 하는 선정적인 언론에게는 그저 하나의 추임새일 뿐이었다. 


‘어머니 제게서 불사의 몸과 초능력을 거두어 주세요. 저는 너무 지쳤습니다. 제가 고향 어머니가 계시는 그곳으로 돌아 갈 때 까지 조용히 평범한 존재로 살고 싶습니다. 이젠 더 이상 어머니가 제게 주신 고귀한 책무를 완수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를 용서해주세요.’     


눈물의 기도는 그날 밤 유난히 간절했다. 그리고 그녀는 창조주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수고했다. 곧 때가 올 것이다. 세상의 모든 모순과 악이 드러나고 마침내 모든 것이 정화되고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총 들었던 자들은 사원으로 달려가 모든 신들의 이름을 부를 것이며 신의 이름을 찾았던 헌신자들은 총을 들것이다. 그때에 이르러  네게 준 임무가 완성 될 것이다. 기다리거라.’     


새벽녘 원더우면은 거울 앞에서 가위를 들었다. 아름답고 윤기 나는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들이 바닥으로 맥없이 떨어졌다. 날이 밝았다. 짙은 남색 항공 잠바와 검정색 스키니 진을 입은 원더우먼이 오토바이에 몸을 실고 밝아 오는 햇살 속으로 사라졌다.                                      

작가의 이전글 아침에는 진실이었다 오후쯤 거짓이 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