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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Oct 26. 2022

쓰레기 도둑질

‘아뿔싸!’ 

옆집 여자는 너무 말이 많다. 적어도 내 기준에는 그렇다. 동네 입구 슈퍼 아줌마나 세탁소 집주인 여자는 그런 그녀가 싹싹하고 붙임성이 있다고 좋아하지만 나랑 자주 커피 타임을 하는 주변 아줌마들은 그녀가 이말 저말 하고 다니면서 동네 소문을 만들어 낸다고 그녀 앞에서는 입조심을 한다. 

우아하고 교양 있어 보여 좋겠다며 나만 보면 칭찬인지 비아냥거림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자주 하는 그녀에게 쓰레기 그것도 남의 집 쓰레기를 뒤지는 현장을 들키다니. 남 이야기 좋아하는 그녀에게는 세상 재밌는 뉴스거리가 생긴 꼴이다.      



이게 다 딸년이 공부를 못해서 벌어진 참극이다. 자식 성적에 연연하지 않을 거라고 고상을 떨던 나에게 딸은 처음 치른 고3 모의고사에서 집에서 통학 가능한 대학교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성적표를 가져왔다. 다급하고 불안해지면서 얄팍한 나의 지적 허영과 위선이 들통났고  설마 내 자식이 이렇게 공부를 못할 줄 몰랐던 서울 대 출신 남편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소문내지 않고 독선생도 붙이고 심리 관리해주는 센터도 보내 봤지만 수능 날이 다가와도 아이의 성적은 요지부동이었다. 보다 못한 친정 엄마가 극약 처방으로 용하다는 무당집에서 받아온 비방 책이라도 마지막으로 써 보기로 했다. 주변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아이의 노트나 메모를 태워 부적을 만들어 아이 베갯속에 넣어 두라는 해괴한 그 비책을 말이다.    

  

딸과 동갑내기 옆 집 여자의 아들은 그녀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키 크고 잘생기고 공부 잘하고 예의 바르기까지 하다. 사위라도 삼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하는 그런 아이다. 솔직히 그 아이의 노트로 부적을 만들 생각을 하니 묘하게 안심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옆 집 여자에게 사실대로 고하고 부탁하기는 내 알량한 자존심에 죽기보다 싫었고 금쪽같은 아들 노트로 부적이라니 그녀가 허락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재활용 쓰레기를 내어 놓을 날을 노리기로 했다. 전에 보니 그 집에서는 아들이 다 쓴 연습장이 자주 나왔다. D 데이. 그녀가 아침 일찍 분리수거 쓰레기를 내어 놓은 걸 확인하고 사람이 지나다니 지 않는 시간을 노렸다. 식구들이 모두 나간 직후 주부들이 설거지나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할 때다. 다행히 날도 춥고 흐려 골목이 조용하고 스산하다. 동네 사람들 눈을 피해 범죄를 저지르기 딱 좋은 날씨와 시간이다. GO~GO


아하 그런데 그녀는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걸까? 내가 너무 집중해서 임무를 수행하다 그녀의 인기척도 들지 못한 걸까? 목표물을 찾기도 전에 들켜 버리다니.      

“자기 뭐 하는 거야? “     

살다가 이렇게 당황스럽고 민망한 적이 있었던가? 뭐라고 둘러 될 말도 생각나지 않고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에게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다. 신이시여 자비심을 베풀어 죄인에게 이 난관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부적이고 뭐고 그냥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어머 자기도 그 00 도사님한테 갔었구나. 진즉에 얘기하지. 그 도사님이 공부 잘하는 애들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 졸업생 노트로 부적을 만들라 하고 공부 못하는 애들은 공부 잘하는 재학생 노트를 사용하라고 했다더라. 노트 주인들도 운이 트인대서 난 쉽게 구했는데... 우아한 자기가 남의 쓰레기를 다 뒤지다니. 자식 앞에서 별 수 없구나. 호호호. 우리 집에 들어가 커피 한 잔 해. 아들 방에서 내가 태우기 좋은 걸로 찾아 줄게... 호호”     


부적이 영험하긴 했을까? 딸년은 전철로 통학이 가능한 경기도 끝자락의 대학에 추가 합격했고 나는 한 동안 옆집 여자의 재밌는 얘깃거리의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인생 뭐 별거야 싶다. 지켜야 할 것, 붙들고 있어야 할 것이 뭐라 있으랴. 



             위 글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등은 사실과 무관하며 창작의 의한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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