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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Oct 28. 2022

내가 그렇게 답답합니까?

"사과하면 무슨 생각이 들어?"


딸이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지나가고 나서 망설이며 입을 뗀다.


"왜 그런 걸 물어보지? 무슨 일 있어. 글쎄....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백설 공주는 참 나쁜 애야. 일곱 난쟁이를 이용해 먹기만 했잖아. 순수하고 착해서 궁에서 쫓겨나고 왕비한테 속아 독 사과까지 받았다고 알고 있지만 고도의 생존전략 아니었을까?."


"그만 거기까지"


딸이 내 말을 끊는다. 


"엄마의 문제가 뭔지 알아? 너무 생각이 복잡해. 그니까 반응도 대답도 느리지. 참 답답한 사람이야. 생각나는 즉시 말로 안 나와? 사과하면 맛있겠다. 먹고 싶다 이렇게 바로바로 말이야."

    

맞는 말이다. 내 머릿속에서 모든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있다. 어떤 사건을 인지하거나 사물을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순간에도 그렇다.


트럭에서 파는 계란을 보면 저 많은 계란은 어디에서 왔을까에서 시작된 생각의 꼬리는 육식문화의 폐해와 환경문제를 거쳐 결국 계란은 하루에 1개 정도만 먹어야 한다는 결심으로 마무리되는 식이다.    

   

매사가 이런 식으로 복잡하다 보니 보니 내가 생각해도 내가 답답할 때가 많다. 특히 하고 싶은 말 혹은 해야만 하는 말을 해야 할 때 더욱 그렇다.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혹시 상대의 의중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걸까? 내 말에 상대가 상처 입어 상항을 더욱 악화시키는 건 아닐까? 내 말의 의도가 잘 전달되지 못하고 상대가 오해를 하게 되면? 

나의 말이 불러올 안 좋은 결과와 내가 말하지 않음으로써 감당해야 할 나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비교하기 일쑤다. 그러길 반복하다 보면 차라리 혼자 정리하고 말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신중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예측과 통제 범위를 벗어난 일이 생겼을 때 책임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때 그것을 꾹 참아 넘겼을 때 스스로에게 느꼈던 대견함에 뿌듯해하던 드라마의 주인공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뿌듯함보다는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안 좋은 일들이랑은 걱정하지 않고, 주변 눈치 안 보고, 사람들 심기도 살피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내뱉었을 때의 '통쾌함'을 느끼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내 주변에 하고 싶은 말 또는 해야만 하는 말을 바로바로 담아두지 않고 쏟아내는 사람들이 몇 있다. 친정 엄마, 여동생 그리고 내가 낳은 딸. 나는 그들이 부럽다. 자신이 쏟아낸 말을 감당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때론 엄중할 지라도 말이다. 내게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걱정이 없다면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을 상대의 면전에 두고 해 줄 수 있을까? 찰진 욕설까지 추임새로 넣어서. 나는 답답한 사람 맞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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