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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지 Apr 19. 2022

첫사랑의 기록

[연극] 유리동물원

일기를 브런치에 쓰는 건 처음이다. 무언가 기록하지 않으면 일상이 흩어져 사라지는 것 같은 조급함과 쓰지 않고 지내는 상태가 지속되면 될수록 꼭 그만큼의 거대한 포부가 있어야만 시작할 것 같은 불안감이 결국 밤 11시 30분 날 컴퓨터 앞으로 데려왔다.  


이 공간에 오랫동안 오지 못했던 이유는 새로운 사랑 때문이었다. 나의 사랑은 열정과 닮아있다. 몰두하는 자세와 그에 따른 실행, 자기희생적 행위들을 통해 나는 '이 정도면 사랑인가', '이 정도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래 이거야말로 사랑이지' 등등의 확신을 얻곤 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새로운 사랑에 얼마 큼의 가치를 매겨야 할까, 신중하게 생각해 왔다.


작년 한 수업에서 '유리 동물원'이란 작품을 연출했다. 유리 동물원은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1944년 발표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현실에 얽매여 있는, 그래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들을 그린 작품이다. 나의 연극은 러닝타임이 15분인, 조명기는 하나도 쓰지 못하는, 관객이라고는 그 수업을 듣는 20명 남짓이 전부인 연극이었다. 


블랙박스 형태의 공간(창문 쪽을 빼놓고는 모두 검은색으로 칠해진 공간이었다)에서 관객석의 위치와 그 높이, 천장 등을 몇 개를 켜놓을 것인지, 어떤 음향을 어떤 세기로 재생할 것인지부터 해서 무대 디자인, 동선. 심지어 원작의 어떤 장면들을 붙여 15분짜리 대본을 만들 것인지 까지. 모두 혼자 결정했다. 세세하면 세세할수록 난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무엇에 몰두했다고 말해야 할까. 그 순간, 그 행위, 아니면 그 세계를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15분이 지나면 사라질 그 세계가 시작된다. 아만다(엄마)와 로라(딸)의 대화로. 달을 보며 모든 것이 잘 되게 해 달라 소원을 빌라는 어머니의 대사에 맞춰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똑이 아닌 쿵쿵 소리, 열린 문으로 톰과 짐이 등장한다. 짐은 현실 그 자체의 인물. 매력적이고 무심한, 편승되고자 하는 내 마음을 지나쳐 멋대로 상대를 골라버리고 마는 현실. 정전으로 짐과 로라는 한 불빛 안에 머문다. 서로 매료되고 매료될수록 긴장감은 상승하고 결국 로라의 유리 동물원은 깨지고 만다. 


로라의 유리 동물원이 깨졌다. 깨져버린 자신의 세계를 응시하다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깨진 유리 조각을 짐에게 건넨다. 하수 측면에서 들어오는 빨간빛. 따뜻하고 어쩌면 주황색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포근한 빛. 짐을 내보내고 로라는 봄날의 왈츠란 노래에 맞춰 혼자 춤을 춘다. 자신을 평생 집 안에만 머물게 했던 장애를 잊은 듯이. 원작에는 없는 한 문장을 마지막에 적었다. "짐은 유니콘을 쥐고 거실로 나간다. 로라,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한다. 발걸음을 처음 뗀 사람처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로라를 비난하지 않겠다는 내 연출 의도는 사실 예상 가능하듯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 테다. 시간은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놓쳐진 그녀는 흘러가는 것들 사이에서 미아가 되어버렸다. '쉬고 있다'는 상태가 이제는 주위 시선 속 자신의 정체성이 되어 버린 그녀를 위로하고, 일으켜 세우고, 공간 밖으로 이끌고 싶었다. 발걸음을 처음 뗀 사람처럼, 비틀거리면서도 이제는 일어나길 응원한다. 비난하는 시선이 아니라, 포근한 주황색으로 로라를 보듬어 주었다. 세계를 정교하게 만드는 작업은 지나칠 정도로 짜릿했다. 사랑이라는 단어와 연극이라는 단어를 짝지어 놔도 충분할 것 같다.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걸 꺼려한다. 안에 있을 때 너무나 충만하고 아름다운 빛깔로 존재했던 것들이 꺼내놓고 보면 익어버린 바나나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 표현된 사랑은 너무 달아서, 결국 물을 먹게 하는 그 지나침이 싫다. 그러나 오늘, 도서관에 가서 내가 사랑하는 작가의 신간을 그냥 지나치고, 희곡을 잔뜩 빌려오면서, 이 첫사랑을 기록해두기로 결심했다.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것, 여럿이 생각난다. 아주 오래전 밤에 몰래 일어날 정도로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에 몰입했던 것. 그보다 더 이전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가 있었고. 또 비가 오거나 시험 기간일 때도 풋살화를 챙겨 밖으로 뛰쳐나가던 것들. 심한 근육통을 그냥 무시해버릴 정도로 정신없이 매료됐던 그 땀 흘리는 행위들. 또 하나의 사랑을 만든다는 것이 부담되면서도 설렌다.  


읽고 쓰는 행위에 잠시 소홀했었고, 반성한다. 더 많은 사랑을 하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더 다양한 글을 많이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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