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던 내가 살아남은 방법
지금의 나의 습관을 만드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책들은
『1만 시간의 재발견』, 『리추얼』, 그리고 여전히 불변의 1위인 『타이탄의 도구들』이다.
어릴 적부터 예민했던 성격은 예체능을 하기엔 잘 맞았지만,
그걸 직업으로 삼지 않은 채 평범한 나로 살아가는 일에는
늘 필요 이상의 에너지가 들었다.
입시지옥 같은 학교에 다니던 시절,
반장이라는 프레임 안에 있던 나는
반 친구의 표정이 조금만 달라 보여도 먼저 다가가 고민을 들어주곤 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친구가
“역시 네가 있어서 좋아. 너랑 얘기하니까 한결 편해졌어.”라고 말하면
나는 늘 이렇게 답했다.
“아니야, 나는 뭐 한 게 없는 걸.”
하지만 사실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데에서 오는 불편함보다
‘저 친구는 왜 저럴까’ 하고 추측하는 시간이 훨씬 힘들었고,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기분에 따라 변하는 집안 공기를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느끼는 아이였다.
가끔은 집 문고리를 잡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느껴질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우리 집 분위기는 대체로 좋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흔히 말하는 ‘눈치’가 먼저 길러졌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읽는 것도 유난히 빨랐다.
이런 성향은 사회생활에서는 큰 문제는 없었지만,
혼자 있을 때는 녹초가 되어
20시간씩 자는 날도 많았다.
물론 4조 3교대 근무의 영향도 있었지만,
사람이 많은 공간에 가기만 해도
실시간으로 기가 빨리는 걸 보면
이 예민함이 피로의 주된 원인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로 사는 법’을 주제로 한 책들만 골라 읽고 있었다.
그걸 보며 깨달았다.
내 무의식이 나에게
“이제 바깥이 아니라 너에게 시선을 돌려.”라고 말하고 있다는 걸.
그렇게 시작한 ‘기록’은
어느새 꽤 많이 쌓였다.
예전엔 ‘올해 내가 뭘 했더라?’ 하고 떠올려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던 일들이
이제는 종이를 펼치면 전부 적혀 있었다.
무엇이든 확실한 걸 좋아하는 내 성격엔
기록이 참 잘 맞았다.
물론 무언가를 오래, 꾸준히 하는 건 내 장기가 아니지만
불확실한 채로 한 해를 보내는 건 더 싫었다.
그래서 귀찮아도 하루 루틴을 붙잡았다.
한 해를 통째로 후회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말이 너무 정리가 안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회사 동료와 식당에 앉아
그날의 일들을 털어놓고 있는데
그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미안한데… 지금 네가 무슨 말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 말에 속으로 꽤 뜨끔했다.
그 뒤로 다짐했다.
말하기 전에 먼저 쓰자.
생각이 너무 많고,
동시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을 때는
적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문장을 쓰려면 어법을 맞춰야 하고,
단어를 골라야 하고,
구어체와 문어체의 차이를 의식하게 된다.
그 과정 자체가 생각을 정리해 주었다.
덕분에 아침마다 널뛰던 생각들이
조금씩 정돈되기 시작했고,
구멍 난 기억들도 채워졌다.
퇴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받은 스트레스,
정리되지 않던 감정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다 보면
내 행동을 돌아보게 되고,
타인을 이해할 아주 작은 실마리도 보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다시 읽으면
그 일은 이미
‘그리 큰일도 아니었던 것’이 되어 있었다.
쓸데없는 기억들로
나를 갉아먹던 오래된 습관도
조금씩 사라졌다.
가벼워졌다.
문장으로 완성해 놓으니
그 사건들이 후루룩 읽힐 만큼 가벼워졌고,
나는 그것들을 종이 한 장처럼 넘길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