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을 쉬기로 했다.

휴직, 그 첫날의 기록

by 투게더미

이건 다 낫지 않아서 생긴 해프닝, 아니 일어나야만 하는 일 같은 것일까. 머릿속에서 하지 못 한 말들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10년 만에 다시 담에 걸려 침을 맞아도 낫지 않는 통에 침대에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떠다니는 문장들을 정리해야만 할 것 같아서.



아이에게 부모는 첫 세상이다. 첫 지인이었다가 친구였다가 적도 되었다가 그 작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데이터에 저장이 되었다. 완벽한 세상보다 허물어지고 왜곡되어 찌그러지는 세상을 먼저 만나게 되는 건 인간사 필연적인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학교생활을 할 때에는 나는 나의 세상에서 산다기보다 엄마의 세상, 혹은 어서 나와야 하는 세상에서 살았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했던 인간관계가 가족과 멀어지며 나의 세상을 살다 보니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느껴졌다. 우리 하나하나의 개체는 생에 가장 빠른 지인이자 친구이자 적이었던 가족으로부터 자아가 생성된 채로 오랜 세월을 살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자아는 가족으로부터 받은 기억으로 살아간다. 힘을 얻은 채로, 혹은 자신을 잃은 채로.



나는 이걸 회사생활하면서 온몸으로 느꼈다. 사람들과 가까워지면서 그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선을 넘지 않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 안에는 안전한 울타리가 있다는 것도. 그것이 어른들이 말하던 '비빌 언덕', 혹은 '기댈 수 있는' 무언가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부러웠다. 종교나 다른 것에 기대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 장면을 직관할 때마다 외롭고 슬퍼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는 것도, 나는 들으면 흠칫 놀라는 말을 하고도 자신은 떳떳한 듯 있던 것도 그 속을 보면 단단히 차 있는 에너지들이 있었다. 나처럼 흐물거리거나 깜빡거리는 희미한 에너지들이 아니었다. 애써 끌어올려 움직이게 하던 나의 에너지와는 다른 그저 스스로 살아 빛을 내는 파장들이 그들의 자산 같아 보였다. 뒤늦게 쌓으려 해도 쌓아지지 않는 그런 것. 힘을 조금만 빼고 인식하지 못하면 사그라드는 모닥불 속 재처럼.



물론 그 에너지들이 모두에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이 잠시나마 위로가 되긴 했지만 불씨가 꺼진 나에게는 열심히 따듯한 빛을 내고 있는 것들만 눈에 보였다. 빵빵히 돌아가는 겨울철 부잣집 보일러처럼. 자,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걸로 다시 이 겨울을 날 준비를 해야 할까. 땔감들을 주워서 이것이 연료가 되기 위해서, 아주 좋은 연료가 되어 다시 내가 따듯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쉼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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