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2026년이 오기를

트리가 꺼지고

by 투게더미

겨울엔 봄이 기다려지고 여름이 어서 오길 바란다. 여름이 왔을 땐 빨리 추운 겨울이 오기를 기다렸다. 내 현재보다 다가올 미래는 덜 힘들기를 기대했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이 고통이 계절 바뀌듯 넘어가길 바란 것일지도. 그게 내가 1년씩 살아가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한동안(이라고 쓰고 정확한 날짜를 세어봤다. 8일이었다.) 아침과 낮이 없는 날의 연속이었다. 휴직을 하고 처음 일주일간은 끝도 없이 잠이 왔다. 눈을 떠보면 한밤중이었고, 새벽이었고, 저녁이었다가 다시 한밤중이 되었다.


내가 만약 혼자 있었다면 하루가 24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루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을지도.


짧은 꿈들을 꿨다가 잠시 깨면 그게 무슨 뜻이었을까 하며 나름대로의 해몽을 해보기도 했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생각이 강한 나였기에, 나의 무의식이 주는 무언의 힌트들을 찾아 퀴즈를 풀어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난 아무런 해석도 할 수 없었다. 며칠이나 지났는지 가늠도 못한 채, 정신 차리면 최소 3일 동안 빈 공란으로 남아 있던 다이어리가 말해주듯, 그냥 나의 지금 상황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계속 잠들어 있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려 보았을 때, 2025년 말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밀 생각에 들떠서 큰맘 먹고 장만한 트리가 눈에 들어왔다. 거실 한편에 자리 잡은 트리. 분명 장식품들을 고를 때 나는 어린아이처럼 들떴었다.


우연히 마주친 스토어에서 장식품들을 잔뜩 사고 돌아와 놓고도 모자라 다이소에서 예쁜 것들을 또 주워 담았다. 나이가 서른이 넘어가도 크리스마스는 왜인지 설렜다.


고단했던 여름, 숨 고르기를 하던 가을이 지나 어느덧 찬바람이 불면 타올라 재만 남아있는 나의 곁을 식혀주는 것만 같아서 평온함을 느끼기도 했다. 잠시 찾아온 그 평화가 나에겐 안온함을 가져다줘서 겨울을 특히 좋아했던 것 같다.


“춥지 않아? 나는 추운 게 너무 싫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조용히 나는 미소 지었다.


차라리 날씨가 추운 것이 나 스스로 꽁꽁 얼어붙어 바들거리는 것보다 나았기에. 차라리 온도가 낮고, 나 스스로의 온도는 영하가 아닌 편이 살 만했어서. 나오는 입김을 보고 ‘나는 따뜻하구나’ 하며 안도할 때가 훨씬 나았다.


거실의 트리는 왜인지 기시감이 들었다. 예뻐 보이고 귀여운 것들과 반짝거리는 조명을 둘둘 안고 있는 모습이, 밤낮없이 자다가 물 한 잔 마시러 나온 나의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어두워야만 예뻐 보이는 것들, 좋아 보이는 것들로만 꾸며진 모습.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엔 장식품들이 확연히 없는, 그러니까 보이는 것에 치중한 모습.


꼴깍 삼키는 물과는 다르게 이런저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왜, 저 트리가 내 모습 같아 보였을까. 그리고 그게 거슬린다는 것도 왜였을까.


한참을 트리를 쳐다보고 있자 남편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저 트리, 거슬려.”


아무 잘못 없는 트리가, 그렇게 좋다고 콧노래를 부르고 캐럴을 틀어놓고 꾸미던 트리가 뜬금없이 거슬린다니. 이상하게 생각할 법도 한데 남편은 조용히 말했다.
“치우자. 아니, 내가 치워둘게.”


저 장식품들을 다 떼고 나면 볼품없는 게, 그저 아무것도 아닌 나무면서 온갖 예쁘게 보일 반짝이는 것들은 죄다 달고 있네, 하면서 나의 머리는 좀처럼 멈출 생각을 안 했다.


물 잔을 내려놓고 트리를 등진 채 방으로 들어와 원래 있던 자세로 돌아갔다. 이불 속에 들어가 베개를 안고 눕기.


새벽에 깨서 거실로 다시 나간 나는, 깜깜한 거실을 홀로 밝히고 있는 트리와 다시 마주했다.


어두워야 진가를 발휘하는 건가.
나는 어둡기 싫어.
나는 주변이 어두워야 예뻐 보이는 현실이 싫어.


왜 어두워야 밝게 보이는 거지.
왜 난 애써야 하는 거야.
왜 온갖 괜찮아 보이는 것들로 날 치장해야 하지.



트리를 향한 짜증은 어느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6개월을 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