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고 있습니다만
바스락거리는 살결이 보여주듯
내 몸은 모두 건조해진 것 같다.
마치 수분이 아니라,
무언가 더 근본적인 것이 증발해 버린 것처럼.
나는 왜 다시 멈춰버린 것일까.
왜 다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 것일까.
분명 나는 쉬기로 했다.
그 결정을 하기까지 충분히 고민했고,
전략적으로 확보한 휴식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비어 있는 하루들 같았다.
텅 빈 시간 속에서 마음까지 비어버리는 기분.
해야 할 일들은 머릿속에 선명한데
몸은 침대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한동안 서재 문을 닫은 채로 지냈다.
열고 들어간 적도 없는 방처럼,
벽에 걸린 큰 액자처럼
그 문은 그저 ‘있는 것’이 되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복도를 지나가다가도
나는 그 문을 본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상상하면
이상하게 화가 났다.
왜?
대체 왜?
물어도
나는 입을 다문 채 다시 몸을 눕혔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니잖아.
서 있을 수 있잖아.
앉아 있을 수도 있잖아.
스스로에게 소리를 쳐보지만
결국 이불을 꼭 덮고 눈을 감는다.
그러다 울면
또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나는 어제를 지우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제 있었던 일을 복기하고,
기록하고,
검열하고,
다시 살아본 뒤에야
오늘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
“난 오늘 새로 태어났어.”
그렇게 말하며
어제까지의 일을 지워버리는 건
나에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싫었던 것이다.
복기해야 하는 나 자신이.
정리해야 하는 어제가.
차라리 외면하는 편이
덜 아프다고 믿으면서.
나는 반복해서 변기 꿈을 꾼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멈추지 않거나,
추락하거나,
제멋대로 올라가는 꿈을 꾸던 시절도 있었다.
그건 회사에 다닐 때 자주 나타났다.
휴직을 하고 나서는
변기 꿈이 반복된다.
화장실은 대중목욕탕처럼 열려 있고,
문은 닫히지 않고,
변기는 더러워 앉을 수 없다.
어젯밤 꿈에서도
또 변기가 나왔다.
이번엔 문을 닫을 수 있었다.
프라이빗하다고 느낄 만큼은.
하지만 변기는 여전히 더러웠다.
그래도 달라진 게 있었다.
나는 닦을 생각을 했다.
칸 안에는
변기 커버를 닦을 수 있는 용액이 있었다.
나는 휴지에 그것을 짜서
커버를 닦았다.
그리고 앉았다.
지난 꿈들보다 나아진 상태였다.
그런데
일어나려고 하자
누군가가 나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몸이 떨어지지 않았다.
커버에 본드가 붙어 있었던 것처럼.
발악하다 겨우 일어났을 때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님처럼 보였지만
내게 화를 내는 범죄자 같았다.
그가 소리쳤다.
“후회하지 말랬잖아!
후회하지 말라고 사는 인생인데!
하지 말랬잖아!”
나는 무언가를 집어
그를 떨어뜨리려 발버둥 쳤고
그 순간 깼다.
얼굴이 뜨거웠다.
머리로 피가 쏠린 것처럼.
나는 스스로를 자주 의심한다.
이게 정말 화를 낼 상황인지.
내가 과한 건 아닌지.
혹시 내가 나태해진 건 아닌지.
그래서 내가
사실은 가벼운 사람인 건 아닌지.
낮에는 구조를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고,
다음 수를 계산한다.
단단한 척한다.
그런데 밤이 되면 묻는다.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릴까.
가끔은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틀린 길은 아닌지.
이 멈춤이
퇴보가 아니라
숨 고르기인 게 맞는지.
내가 한 선택들이
완전히 잘못된 건 아닌지.
나는
가벼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나를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당분간, 이렇게 흔들리는 기록을 계속 남길 생각이다.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