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평정심 사이에서
날씨가 맑고 공기가 깨끗할수록 나는 긍정적인 기운에 휩싸인다.
엉망인 집안이 갑자기 보이고,
뛰러 나가고 싶어지고,
미뤄둔 일들을 한 번에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솟는다.
이 감정은 반갑고 힘이 솟지만
문제는,
이 기운이 사그라들었을 때다.
그러니까 나는 꽤나 감정기복이 큰 사람이다.
어릴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엄마는 말했다.
"너는 기분이 좋으면 하늘을 뚫고, 기분이 나쁘면 지하 땅 끝까지 가지 아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나는
행복과 슬픔을 온전히 느끼고 표현할 수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절제’를 가르쳤다.
감정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좋지 않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어린아이가 듣기엔 꽤 격한 표현이었다.
그 뒤로 나는
기뻐도 크게 웃지 않았고
슬퍼도 티를 내지 않았다.
고작 할 수 있었던 건
고개를 흔들며 얕게 웃거나
밤마다 소리 없이 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한 시절까지 나는 하루를 너무 생생히 기억해서 괴로워했다.
내가 걸었던 길의 풍경,
지나가던 사람들의 생김새와 표정들,
그 순간의 냄새,
나눈 대화까지도 닥치는 대로 저장했다.
의도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이 기억력이 저주처럼 느껴질 때마다
나는 기도했다.
제발,
좋은 기억만 남게 해달라고.
잊고 싶은 기억은 지워달라고.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제는 하루가 통째로 흐려진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옅어진다.
이게 내가 원한 방식은 아니었는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일어나서 옷을 입고,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괜찮아진 것 같았다.
기분이 많이 좋다고 박수를 치고 싶었지만
그건 나의 머릿속에서만 움직였다.
기뻐도 뭐 어때.
오랜만의 감정인데
오롯이 느껴도 뭐 어때.
그러나 동시에,
'내가 계획만 하면 틀어지던데'
하는 생각도 함께 올라왔다.
기대와 불안이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올라오는 순간을 다시 한번 마주했다.
그래도, 그래도
일단 뛰러 나간다.
오랜만에 운동화를 꺼내고
숨이 차고 몸이 무거운 걸 느끼면서
노래도 듣고,
멀리까지 갔다가 원점으로 돌아올 때의 안도감도 느껴보고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걸,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숨을 마음껏 쉬지 못하는 건 꽤나 고통스러운 것임을 느끼면서
하늘을 보고 돌아왔다.
뛰고 왔더니 흔들거렸던 건 내 몸뿐만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생각할 것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이제 내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된 거야?"
"너 이것도 결정해줘야 해!"
"이제 더 이상 외면하지 마!"
하며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는 '생각들'이 아우성친다.
번호표만 뽑아둔 채로 줄은 서지 않은 채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는 통에
나는 더 혼란스럽다.
이를테면 이런 다짐들
되도록 아침에 일어난다.
취침 전까지 침대에 눕지 않는다.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일기는 하루를 마무리할 때 쓴다.
공복운동이나 저녁운동을 한다.
술을 감정에 맡기지 않는다.
건강식으로 먹는다.
필사를 한다.
매일 책을 읽고 기록한다.
이 다짐들이 나를 구해줄지,
혹은 또 다른 기대가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정리해 보기로 한다.
나는 지금,
다짐을 하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