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갈아서 나를 만들고 있었다
내 기억의 첫 시작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다.
누구보다 뛰어놀기를 좋아하던 나이에, 실컷 뛰어놀 수 있는 곳에 맡겨져 지내던 어느 날의 기억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와 친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사람이었다.
시작은 단순한 질문이었다.
나는 뭘 좋아하지?
나는 뭘 하고 싶지?
이 질문을 아주 늦게서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현생을 살아내는 것이 버거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은 내 안의 말을 듣는 방법을 몰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하고 싶어도, 사고 싶어도 그 마음을 늘 미뤘다.
지금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도 있어야 했다면 그냥 있었다.
모든 걸 인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굳이 감내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도 참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시절의 나는 그것이 내가 굳이 감내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것을 판단하지 못했다.
나이는 먹었지만 어른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오랫동안 ‘착한 아이’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결심했다.
이제는 착하지 않겠다고.
남을 생각하던 에너지로 나를 생각해 보겠다고.
남에게 향하던 에너지를 나에게 쏟기 시작했을 때,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라고 왜 못하나.
나라고 못되게 굴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나는 오롯이 나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혼자 여행을 가고, 책을 마음껏 읽고, 소음에서 멀어졌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미루거나 거의 갖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편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방향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제는 나에게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착한 아이는 이미 어른이 되었고,
사리분별을 할 줄 알고,
손익계산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돌이켜보면 자기 검열은 착한 아이였을 때부터 내게 있던 버릇이었다.
다만 그걸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나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어떤 기질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그 기질이 어떻게 생각과 행동으로 흘러들어 가는지 잘 몰랐다.
누군가가 나에게
“너 아파.”
라고 말해도 믿지 않았다.
이 정도는 아픈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눈물이 났다.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말해도
나는 스스로를 아무것도 모르는 모지리라고 말하곤 했다.
무언가를 잘한다고 해도 그것을 내 능력이라고 인정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나는 늘 부족한 사람이었고
계속 채워 넣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내 안에는 내가 만들어낸 하나의 아바타가 있었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
이상적인 나의 옵션을 하나씩 추가해 가며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나를 갈아서 나를 만들고 있었다.
쉬면서 몸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는 이미 여기저기 고장이 나 있었다는 것.
내 욕심은 과했고,
나와 친해지겠다고 했던 것들 중에는
오히려 나를 망치고 있던 것들도 있었다.
게다가 나는 쉬는 동안에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생각은 멈추지 않았고
생각하는 데 에너지를 다 써버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또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키보다 큰 매트리스를 세워 두고
침대 프레임의 방향을 바꿔 방의 구조를 바꾸었다.
식자재를 모두 소분해 정리했고
세탁실을 오가며 빨래를 했다.
마치 살림꾼처럼 집을 정리하고 나면
머리가 조금 가벼워졌다.
나는 지금도 계속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에 다니고
논문을 썼던 것도
결국은 나 자신을 알고 싶어서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내가 읽는 책,
내가 듣는 음악,
요즘 빠져 있는 TV 프로그램까지도
어쩌면 모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요즘,
그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