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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자까 Mar 27. 2023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그날

공포의 그 시간




마침내 목표했던 돈을 모았다.

유학원 랭귀지 코스와 RMIT 소속의 영어 프로그램에 들어갈 비용이었다.

호텔 레스토랑과 컨퍼런스, 주말 새벽 청소 땜빵 알바를 하며 악착같이 모은 돈이었다.


한국에 있을 땐 맛있는 음식은 안 먹어도 내 몸 치장하는 데엔 돈을 아끼지 않았던 나였다. 하지만 멜버른에 오고 난 후 쇼핑에 들어갈 돈을 절대적으로 아꼈다. 얼마나 돈을 지독하게 아꼈냐면 친언니도 혀를 내두를 정도인 사건이 있었다.


멜버른 유학 생활 7년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길고 긴 비행 끝 서울 언네 집에 도착했다. 짐을 풀기 위해 케리어 가방을 열었고, 언니는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뭔가 새롭고 재미난 것들이 있을 거라고.




언니가 한국에서 멜버른으로 보내준 겨울옷과 책. 7년 후 고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옷들은 대부분 7년 전 한국에서 호주 갈 때 가져갔던 옷들이 유물이 되어 돌아왔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보다 더 했다. 케리어 한가득 신 문물과 새 옷, 호기심 가득한 물건이 있을 거라 기대했던 언니의 얼굴엔 실망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내 짠내 나는 표정, 촉촉해진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낡은 나의 케리어에서 언니는 느꼈을 것이다. 내 동생의 그간 겪은 고생 마일리지를. 7년간의 짐은 웬만한 이삿집 수준이 되었고 컨테이로 붙여 1달 후 배로 도착할 예정이었다. 케리어엔 당장 한국에서 입을 몇 가지 옷과 제일 아끼는 포트폴리오, 다이어리 그리고 송별회 때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과 편지들만이 들어있언니 입장에서는 참으로 멋대가리 없는 내용물이었다.


그렇게 짠내 나게 아낀 덕분에 나는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왕따 생활도 끝이 나고 호텔 알바 안정되면서 본격적으로 나는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계단이 IAE 유학원이었다. RMIT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RMIT 파운데이션 과정을 수료해야만 하고, (한국과 교육과정이 다른 멜버른에선  한국에서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면 고3 과정 같은 파운데이션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파운데이션에 들어가려면 RMIT 소속 영어 프로그램을 이수해야만 하고, 영어 프로그램에 들어가려면 일정 수준 영어 에세이를 통과해야만 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그 첫 번째 계단이 유학원 영어 프로그램이었다. 이곳에서 영어 에세이 과정을 통과하고 추천서를 받으면 RMIT English Program에 들어갈 수 있었다.


멜버른에 온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영어는 어려웠다.


첫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Collins Street에 있는  유학원엔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만난 한국 워홀러, 유학생들이 가득했다. 인상 좋은 현팀장님의 도움으로 바로 수강 가능한 영어 클래스를 끊었다.


넘치는 의욕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수업은 따라가기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있었다. 나의 영어 수준을. 나름 빡쎄게 공부를 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도 하고, 호텔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자만했었나 보다. 역시 말하는 것보다 쓰는 건 더 어려웠다.


영어 표현이 생각은 나지만 스펠링은 엉망이었고, 그나마 생각나는 표현도 적절치는 않았다. 선생님은 샤프로 작성한 나의 에세이에 빨간색 수성 볼펜으로 덕지덕지 수정을 했다. 구몬 선생님도 울고 갈 만한  빨간펜이었다. 동그란 불 테 안경에 단발머리, 40대 중반의 여 선생님은 나긋나긋한 톤으로 나의 뼈를 마구 때렸다.


"음..? 아.... 지금 이 실력.. 으로는 영어 에세이 패스.. 하기 힘들겠어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이는데요?"


얼굴이 장작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다음날 친구의 도움으로 멜버른 대학교 교육학과 도서관엘 갔다. 그곳엔 미취학 아동부터 중 고등학생을 가르칠 때 쓰는 교제가 수두룩 했다. 나는 거의 매일 친구의 학생증으로 멜번대 교육학과 도서관에 출근했다.

 "삑" 학생증을 찍고 도서관에 들어갈 때면 왠지 모를 기분 좋은 설렘이 있었다. 마치 내가 여기 학교 학생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에선 난 그저 영어 무식자였다.



멜버른 대학교 내 여러 도서관 중 한 곳



미취학 아동의 동화책부터 시작했다.

멜버른에 온 지 1년 반을 조금 넘긴 나는 나를 1살이라 생각하기러 했다. 어린이 도서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결코 만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나는 1살이지만 동화책 내용은 4~5살쯤은 되어 보였다. 그나마 그림이 있어서 맥락은 파악할 수 있었다.


모르는 단어는 찾아가며 글을 해석했고 표현을 이렇게 하는구나~ 하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도서관 마감 시간 때까지 책을 읽었고, 머물기 힘든 날엔 책을 왕창 대여해서 챙겨 갔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났고 다시 영어 에세이 테스트가 있던 날. 주제는 '나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멜버른에 왜 왔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작성했다. 글은 A4용지 한 장을 꽉 채워야 했다. 최선을 다해 작성을 했고 결과는? 50% Well done. 나쁘지 않았다. 선생님의 빨간펜 밑줄도 처음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었다.


"오? 많이 좋아졌는데요? 이런 표현이랑 이런 거, 그리고 이런 거만 조금 더 보완한다면... 가능.. 하겠는데요? (빙긋)"


가능?

처음으로 가능성을 들었다.

영어 에세이 지옥을 경험한 2개월 만에 처음으로 나도 웃을 수 있었다. 희망도 생겼다.

그리고 1개월이 더 지난 어느 날.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그날이 왔다.

바로 공포의 영어 에세이 시험 시간.


주제는 ‘나를 소개하는 글’ 오잉? 한 달 전에 나왔던 주제인데 또다시 나왔다. 지난번에 받은 피드백과 1달간 책을 읽으며 더 공부했던  턱걸이로 70점을 받았다.

RMIT English Program 커트라인이 딱 70점이었다. 할렐루야!

솔직히 말하자면 65점을 받았는데 선생님께서 대놓고 도와주셨다.


내가 샤프로 열심히 에세이를 쓰고 있을 때였다.

“음… 거긴… 이런 표현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스펠링이… 이거 인 것 같은데?”

“어.. 어… 거기.. 쓰읍… 조금만 이렇게……”

선생님은 슬그머니 지우개를 건네주셨다.


선생님은 정말 나에겐 귀인이었다. 선생님 덕분에 부족한 5%를 채우고 나는 드디어 RMIT English Program에 합격했다.


워홀러 굿바이~

안녕? 학생비자!


우여곡절 끝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학생비자 신분이 되었고, RMIT English Program 10주 코스 결제를 플렉스 했다. 이제 두 번째 계단에 발을 디딜 때이다.


설레는 학생비자로서의 첫 삶.

대학교 입학을 목적으로 둔 유학생들이 모여있는 클래스 첫 수업시간.


OMG. 한국인은 나뿐이야? 파란 눈의 외국인, 터번을 쓴 인도인, 히잡과 벌카는 쓴 이슬람인 그리고 수많은 중국인들 사이에 덩그러니..


이제부턴 진짜 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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