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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Oct 08. 2019

너가 게으른 건 다 너 때문이다

때때로 못난 나를 위한 자기반성


환하게 켜진 전등 아래에서 불길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확인한다.


'6시 06분... 회사 가야 할 시간이구나.'


침대도 아니고 거실의 카페트에 누워있는 자신을 보며, 티비 옆 테이블 위에 놓인 츄하이 캔들을 보며 순식간에 자괴감에 휩싸였다.


집안을 멍하니 둘러보다 혼자 침대 위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남자 친구에게로 시선이 간다. 상냥함이라고는 조금도 묻어있지 않은 말투로 이때다 싶은 듯이 쏘아붙인다.


"6시 넘었어 일어나. 나 집에 가고 싶어."



어제는 유난히 피곤한 하루였다.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직장인 중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마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너덜너덜한 상태였던 것 같다. 첫 주의 시작인 월요일부터 잔업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집에 가서는 이것저것 하고 싶었다. 책도 읽고, 밀린 일기랑 가계부도 쓰고 친구가 추천해 준 넷플릭스 드라마 보기 등... 퇴근 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얼마 안 되는 것을 알기에 일을 하면서도 일 끝나고 뭘 할지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꼽아보고 있었다. 사고 싶은 것들을 적어놓고 급날을 기다리는 심정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언제나 막상 퇴근을 하고 나면 밥을 먹고 조금 뒹굴거리다 보면 어느덧 10시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 되어있고 결국 하루 종일 기다리던 그 황금시간대엔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한 채 그렇다고 기분 좋게 놀지도 못한 채 그렇게 어물쩡하게 하루가 끝난다. 여러 가지 패턴이 있으나 대개 누워서 유튜브를 보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집에서 츄하이나 하이볼 한 두 캔 하다 보면 깜빡 잠이 들거나 하는 것이 그 예이다.


결국 못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아침이 와버린 심기 불편한 상황에 마주하자


'다 저기 누워있는 쟤 때문이야. 왜 술을 마시 자고 해서는. 또 자기 혼자 침대에 누워서 잘만 자고 있네. 누구는 자기 때문에 불도 안 끄고 거실 바닥에서 자느라 도중에 서너 번은 더 깼는데..'


라는 의식의 흐름으로 황에 대한 불만을 애꿎은 사람에게 표출시키고 말았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답은 나온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벌러덩 누운 것은 나고, 편의점에서 남친이 츄하이를 집을 때 자기도 마시고 싶다고 몇 캔 더 거들은 것도 나였으며 도중에 몇 번씩 깨면서도 불 끌 생각, 침대에  가서 잘 생각을 안 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조금은 귀찮게 느껴지는 하고 싶었던, 해야 했던 일들과 당장 편하고자 하는 욕구 사이에 편한 길을 선택한 건 바로 나였다.


 탓을 하고자 하면 한도 끝도 없다. 인간은 환경과 타인의 영향을 받는 존재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매일 아침 못나지려 하는 나 자신에게 일깨워 주기 위해 부끄러운 내 모습을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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