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정확히는 조울증에 빠지고 나서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가 아플 때까지 먹는 안 좋은 습관이 생겼다. 집안에 틀어박혀서 무언가를 시도할 에너지도, 의지도 없었던 시기. 그 안에서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앞에 있는 음식을 먹어치우는 일 말고는 없어 보였고 나는 그렇게 삐뚤어진 방식으로 내가 처한 상황과 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시기와 비교하면 나는 정말 많이 나아졌다. 마음 상태에 점수를 매길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때보다 더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최근에는 일도 다시 시작하였다. 비록 일을 하면서 마주하는 스트레스들에 한없이 취약해져 버린 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생각보다 견디기 힘든 일이지만.
그렇게 크고 작은 스트레스들이 나를 뒤 흔들 때마다 나는 위에 음식물을 가득 채워 넣는걸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요즘은 그렇게 힘들다고 느끼지 않은 날에도 하루 끝에는 어김없이 과자나 튀김류, 그리고 맥주를 한 아름 사들고는 집으로 향한다. 그 행동을 하는 순간에도 인지는 하고 있다. '아 내가 또 이러는구나. 오늘도 많이 힘들었나 본데 그걸 또 먹고 마시는 걸로 풀려고 하는구나.' 근데 그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제지하지는 않는다. 분명 이전만큼 힘든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좋은 습관만 남은 것처럼 느껴진다. 스스로에게 좋지 않은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본능이 이끄는 대로 내버려 둔다. 그리고 더 이상 먹기 힘들 정도가 되면 그제야 먹을 것을 입안으로 밀어 넣는 손을 멈춘다.
주말에는 친구와 등산을 했다. 등산을 하며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괜찮은 것 같은데 동시에 안 괜찮고 싶은가 봐. 전보다 괜찮아졌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힘들다고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왜 그런 이상한 행동들을 반복하는 걸까?"
답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가지고 한탄하듯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를 고민 받이로 만든 듯하여 미안한 마음을 느끼던 중 친구가 말했다.
"음.. 글쎄? 오히려 안 괜찮은데 괜찮고 싶은 거 아냐? 전보다 괜찮아진 건 맞지만 괜찮아지는 속도가 아직 너의 기대에 못 미친다던가."
"..."
곱씹을수록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누구보다 자존심도 쎄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다 컸던 나는 아직까지도 지금의 내상태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뭐를 하든 당차고 에너지 넘치고 밝아야 하는 내 모습을 기대하며 자꾸만 심신이 취약해진 나를 부정하기 바빴다. "괜찮아진 것 같은데?"는 오히려 "괜찮아야 한다."라는 나의 바람과 기대를 잔뜩 머금은 말이었을 지도. 한 발 떨어져서 나를 바라봐준 친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언제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안아 줄 수 있을지.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슬며시 지친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