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
나는 UX/UI 디자이너이자, 튜터로 일하며 하루의 절반 이상을 기술과 함께 보낸다.
예전에는 키보드 위 손끝이 내 생각을 그대로 옮겼다면,
이제는 AI가 내 의도를 펼쳐낼 수 있도록 정교한 명령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AI는 어느새 나의 손이 되어주었고, 때로는 나의 눈과 귀가 되어주기도 한다.
AI는 빠르고 효율적이며, 실로 강력한 동반자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이 편리함에 기대며 내 고유한 감각과 감정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언어로 설명되기 전의 ‘느낌’이다.
선 하나가 주는 방향감, 여백이 만들어내는 호흡, 버튼 위에서 잠시 망설이는 순간까지.
이런 미세한 감각들이 모여 디자인의 온도를 만든다.
그런데 이 ‘느낌’은 오롯이 인간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나 자신에게 묻는다.
'오늘 나는 정말로 느꼈는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반응한 순간이 있었는가?'
'나는 지금,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도구에게 사용당하고 있는가?'
요즘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AI의 능력에 완전히 매혹된 사람들과, 그것이 자신을 대체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 있다.
디자이너로서 AI의 힘을 빌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세계를 그려내지만,
동시에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새로운 도구를 익힐수록, 혹시 내가 그 도구의 연장선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 경계한다.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 수도, 아니면 더욱 기계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업무 모드에서 벗어나면, 방 안에 고요가 찾아온다.
여러 창으로 가득했던 화면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오직 브런치의 빈 텍스트 에디터 창 하나만 열어둔다.
작은 탁상등의 노란 불빛 아래서, 그제서야 비로소 내 언어가 깨어난다.
글을 쓸 때만큼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감각이 깨어난다.
따뜻하고 차가운 말들, 잔잔히 흘러가는 생각들,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들까지.
이런 것들은 아직 어떤 기술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리듬이다.
나는 글을 통해 무언가를 보여주기보다는, 나 자신을 지키려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내 감정과 목소리가 희미해지지 않도록.
내가 가진 여백과 깊이를 잃지 않도록.
완벽한 문장을 순식간에 AI가 만들어내는 시대에,
서툴고 불완전한 나만의 문장을 남기는 일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나만의 방식 같다.
내가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이 변화의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을 걸고 싶을 뿐이다.
“기술에 완전히 의존하지 않아도 괜찮다.”
“AI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이 느끼는 그 모든 감정들은 오직 당신만의 고유한 가치다."
우리는 감정을 가진 존재다.
AI는 그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어도, 그 감정 자체를 대신 느끼고 살아줄 수는 없다.
우리 안의 혼란과 모호함, 때로는 비논리적인 직감까지도 모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안에야말로 우리가 인간인 이유가 있다.
나는 앞으로도 기술을 배우고 활용할 것이다.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더 넓게.
하지만 그 모든 속도 한가운데서도 '느림'의 글쓰기만은 놓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효율에서 잠시 벗어나서 나만의 속도를 찾고,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나는 꼭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 글을 통해, 이 급변하는 시대에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모든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감정을, 당신만의 여백을 소중히 지키세요.
그것은 그 어떤 기술도 대체할 수 없는 당신만의 것이니까.”
기술은 분명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 풍요로움은 기술이 정의해 준 편리함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가치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내일의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더 많은 사람들과 그 세계를 함께 꿈꾸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