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링크3 : 감정의 예술 #2

첫 전시와 균열

by 디자이너 야니

다음 날 아침, 민우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어젯밤 민서와의 통화 이후 잠이 오지 않았다.

감정 정화 프로그램에 대한 유혹과 불안이 계속 마음을 흔들었다.


세수를 하다 거울을 보니, 눈 아래 다크서클이 짙어져 있었다.

2년 전 사고 이후로 이런 날들이 많았다. 불면에 시달리고,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날들.


'오늘은 새로운 전시 오픈이지.'


며칠 전부터 준비해온 '감정 아카이브 전시'가 드디어 시작되는 날이었다.

민우의 작품 세 점이 메인으로 전시되고, 관람객들은 새로운 '공감 링크' 시스템을 통해 더욱 직접적으로 작가의 감정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오전 10시, 갤러리 'Memory Archive'. 개막을 두 시간 앞둔 전시장은 분주했다.

기술진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고, 큐레이터들은 작품 배치를 재조정하고 있었다.


민우는 자신의 작품 앞에 서서 마지막 테스트를 진행했다.

'어머니의 자장가'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를 감각으로 재현한 것이다.


작품 앞에 서자, 홀로그램이 깨어났다.

주변의 소음이 스르르 사라지고, 익숙한 멜로디가 귀에 흘러들었다.

따뜻한 손길이 이마를 스치고, 라벤더 향기가 번지며, 연한 주황빛이 시야를 감쌌다.


"완벽해요." 기술진이 엄지를 들어 보였다.

"감동지수 91점, 안정감 94점. 최고 수치네요."


하지만 민우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방금 체험한 감각들이 과연 자신의 진짜 기억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너무 매끄럽고, 너무 완벽했다.

진짜 기억은 더 복잡하고 때로는 아프기도 했는데.


"민우 작가님, 언론 인터뷰 준비되셨어요?"

큐레이터가 다가왔다. 갤러리 입구 쪽에는 이미 기자들과 카메라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인터뷰는 예상했던 질문들로 진행됐다.

"네오아트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개인적인 경험을 이렇게 공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음 작품 계획은?"


민우는 준비해둔 답변들을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계속 유나의 말이 맴돌았다.

'제 마음인데.'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작가님, 혹시 작품 활동 중에 감정적으로 힘든 적은 없나요?

개인적인 경험을 계속 데이터로 변환하는 것이 작가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민우는 잠시 멈췄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음... 때로는 그런 순간들이 있죠. 하지만 그것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다면..."

말을 하면서도 공허한 대답이라는 걸 알았다. 기자도 그런 표정이었다.




오후 12시, 전시가 개막했다.

커다란 유리문이 밀리며 햇살이 안으로 쏟아졌고, 설레는 숨결을 품은 관람객들이 하나둘씩 발을 들였다.


첫 번째 작품 앞에 선 한 중년 여성의 표정이 이내 흔들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이게...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예요? 정말 제 어머니가 옆에 계신 것 같아요."

옆에 있던 남편이 휴지를 건네며 말했다.

"감동지수 93점이라던데, 역시 높은 점수 작품은 다르네."


민우는 그 말을 들으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점수를 먼저 보고 감동을 평가하는 것일까, 아니면 감동을 받고 점수를 확인하는 것일까?


두 번째 작품 앞에서는 젊은 커플이 함께 체험하고 있었다.

"오빠, 나도 이런 기억 있어. 할머니가 해주신 미역국 맛."

"진짜? 나는 좀 다른데. 우리 할머니는 북엇국을 더 자주 해주셨거든."

"그래도 비슷한 느낌이잖아. 이거 신기하다."


민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인데,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기억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세 번째 작품에서는 더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이 작품 점수가 가장 높네. 97점이야."

"그럼 이게 가장 좋은 거겠네. 해보자."


하지만 체험을 마친 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음... 뭔가 너무 강렬해서 부담스러운데?"

"나도. 감동적이긴 한데 좀 인위적인 느낌?"

"그래도 점수가 높으니까 좋은 거겠지."


민우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점수와 실제 감정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 같았다.




오후 3시쯤, 관람객이 줄어든 틈에 민우는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다.

갤러리 앞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고개를 돌리니 유나가 할머니 손을 잡고 다가오고 있었다.

할머니는 7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자상한 얼굴의 분이었다.


"할머니, 이분이 제가 말씀드린 그 아저씨예요."

할머니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우리 유나가 아저씨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그림 구경을 하러 오신 거예요?"

"아, 안녕하세요. 사실 제가... 여기 전시하는 작가입니다."

유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진짜요? 아저씨가 작가였어요?"

"응. 너도 구경해볼래?"

유나가 할머니를 올려다봤다.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갤러리 안에서 유나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작품들을 체험하는 다른 관람객들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저씨, 저 사람들 왜 저렇게 울어요?"

"그림을 보고 감동받아서 그래."

"그림이요? 어디 있어요?"


민우는 당황했다.

유나의 시선에는 홀로그램도, 빛의 효과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저기... 저 빛들이 보이지 않아?"

유나가 고개를 저었다.

"빛은 보여요. 예쁘긴 한데... 그림은 아닌 것 같아요."

"왜?"

"그림은 종이에 그리는 거 아니에요? 저건 뭔가 다른 거 같은데."


민우는 말문이 막혔다.

유나에게는 이 모든 첨단 기술이 그냥 '빛'일 뿐이었다.


첫 번째 작품 앞에서 한 관람객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유나가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저 사람은 왜 울어요?"

"작품을 보고 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래."

"어머니가 안 계세요?"

"아니야, 계시지. 그런데 어릴 때 기억이 떠올라서..."

유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계시면 만나러 가면 되는데, 왜 여기서 울어요?"


그 순간 민우는 뭔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유나의 시선으로 보면, 사람들이 진짜 감정 대신 가짜 감정을 체험하며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나야, 너는 이 전시회가 어때?"

유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쁘긴 해요. 그런데... 왜 다들 기계를 쓰고 있어요? 그냥 마음으로 느끼면 안 되나요?"


할머니가 유나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우리 유나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 보구나. 이런 것도 예술이란다."


하지만 민우는 유나의 말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5시, 전시장이 붐비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에 맞춰 더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민우는 한 구석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봤다.

대부분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뭔가 이상한 패턴이 있었다.


"이 작품 점수 어때?"

"87점? 그럼 패스. 90점 이상짜리만 보자."

"저기 97점짜리 있네. 그거 보자."


사람들이 점수를 보고 작품을 선택하고 있었다. 마치 쇼핑하듯이.

더 이상한 것은, 같은 작품을 체험한 사람들의 반응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감동적이네요."

"정말 완벽한 감정 체험이에요."

"역시 고점수 작품은 다르네."


마치 정해진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그때 한 젊은 여성이 민우에게 다가왔다.


"혹시 윤민우 작가님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와, 팬이에요! 사인 받을 수 있을까요?"


민우가 사인을 해주자, 그녀가 물었다.


"작가님, 다음 작품은 언제 나와요? 더 높은 점수 작품도 기대하고 있어요."

"더 높은 점수요?"

"네, 100점짜리 작품 나오면 정말 대박일 것 같아요!"


민우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에게는 작품의 내용보다 점수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저녁 8시, 전시장이 문을 닫은 후.

민우는 혼자 남아 작품들을 바라봤다.


조용해진 공간에서 홀로그램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들이 끝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이게 정말 내 기억일까?'


오늘 하루 종일 수백 명이 자신의 기억을 체험했다.

그들 각자는 자신만의 해석으로 받아들였지만, 결국 모든 반응이 비슷해졌다.


민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오늘 찍은 사진들을 봤다.

감동하는 관람객들, 눈물 흘리는 사람들, 만족스러워하는 표정들.


그 사이에 유나의 사진도 있었다.

갤러리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유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평온한 표정이었다.

감동하지도, 놀라지도 않는, 그저 자연스러운 모습.


'유나는 뭔가 다르다.'


민우는 갤러리를 나와 유나가 있는 화방으로 향했다.




화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유나가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오늘 전시회 어땠어요?" 유나가 물었다.

"음... 사람들이 많이 왔어."

"좋아하던가요?" 민우는 잠시 망설였다.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뭔가 이상해."

"이상해요?"

"응. 다들 똑같은 반응을 하는 것 같아."


유나가 크레파스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어요. 가짜니까 그런 거예요."

"가짜?"

"네. 진짜가 아니잖아요. 기계로 만든 거잖아요."


민우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럼... 내 그림도 가짜라는 뜻이야?"


유나가 민우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저씨가 진짜로 느끼면서 그렸어요?"

"...잘 모르겠어."

"그럼 가짜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괜찮다고?"

"다시 진짜로 그리면 되니까요."


유나가 새로 그린 그림을 보여줬다.

오늘 갤러리에서 본 것들을 그린 것 같았다.

알록달록한 빛들과 사람들이 서툴지만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오늘 본 거예요. 예뻤어요. 그런데 왜 사람들이 슬퍼하는지 모르겠어요."


민우는 그 그림을 보며 깨달았다.

유나의 눈에는 오늘의 전시가 그저 '예쁜 빛들'이었다는 것을.

감정의 조작이나 점수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유나야, 나한테 조언 하나 해줄 수 있어?"

"네!"

"나는 어떻게 해야 다시 진짜로 그릴 수 있을까?"

유나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마음으로 그리세요. 기계 말고 마음으로."

"어떻게?"

"음... 화나면 화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아저씨 마음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세요."


민우는 눈을 감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했다.

하지만 복잡한 생각들만 가득했다.

박지원의 제안, 점수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


"지금은 잘 안 들려."

"그럼 연습해요. 저도 처음엔 안 들렸거든요."


유나가 크레파스를 하나 건네며 웃었다.

"같이 그려요."


민우는 크레파스를 받아들었다. 오랜만에 잡아보는 크레파스였다. 거칠고 투박한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종이 위에 선을 그었다. 서툴고 떨리는 선이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은 선이었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움틈이 느껴졌다. 아주 작은, 하지만 분명한 떨림이었다.


'이게... 이게 내 마음이구나.'


민우는 멈춰진 선을 바라보았다. 선은 종이 위에 남았고, 떨림은 가슴 안에 머물렀다. 민우는 그 감촉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기를 조용히 가슴속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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