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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고 Apr 01. 2019

야망찬 라이더의 세계일주, 애니 런던데리

낯선 그녀들의 역사 #9. 19세기 자전거로 세계를 누빈 허풍쟁이

1894년, 거대한 환송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자전거를 탄 여인. 그녀의 미션은 15개월 안에 자전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영어 외에 다른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고, 기부를 받아서도 안 된다. 돈이 없을 땐 직접 노동을 해야 하고, 이에 더해서 5만 달러를 벌어와야 한다. 레이스의 성공을 기원하는 순진한 사람들은 묘령의 설탕업자가 제시한 내기에 참여한 여인을 열렬히 응원했다. 상금 10만 달러를 노리는 여인과 세계일주에 성공함으로써 여성의 권리가 향상되길 바라는 페미니스트들. 홍보를 위해 자전거 협찬을 한 콜롬비아 자전거사(社). 여기에 호기심으로 가득한 군중들까지. 각양각색의 목적이었지만 하나같이 여인의 성공적인 세계일주를 바랐다.

최초로 여성 자전거 세계일주를 달성하기 위해 나섰던 애니 "런던데리" 코프초브스키

자전거를 탄 여인의 이름은 애니 코프초브스키(Annie Kopchovsky)다. 1870년경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그녀는 5살 무렵, 아버지 레비(Levi)와 어머니 베아트리체(Beatrice) 그리고 언니 사라, 오빠 베넷과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대인이었던 이들 가정은 보스턴에 정착했다. 부모는 그곳에서 남동생 야곱과 여동생 로사를 더 낳았다. 반유대주의적 감정이 서려 있던 보스턴에서 유대인 가정은 가난을 면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애니가 17살이 됐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사라는 출가했으니, 오빠인 베넷과 애니가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애니는 곧 결혼함으로써 그 책임을 회피했다. 그리고 4년 만에 세 아이를 둬, 곧 그녀 자신이 치열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애니의 남편 맥스는 전형적인 유대인 남성이었다. 율법서 토라를 공부하고, 유대교회당에 꾸준히 다녔다. 애니는 지역 일간지에서 광고 영업자로 일하며 신문의 광고 지면을 판매하는 일을 했다. 한창 그녀가 치열하게 살았을 1894년은 모험적인 인간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사람들의 시야가 국내를 넘어 세상으로 뻗어가자, 미지의 세계를 밝혀내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던 것이었다. 1886년, 3년 만에 자전거로 세계를 일주하는 데 성공한 토마스 스티븐슨(Thomas Stevens)과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넘어 1890년, 72일 만에 세계를 완주한 넬리 블라이(Nellie Bly)로 대중은 열광하고 있던 터였다. 연일 관심이 쏟아지자 후원을 받고 세계일주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폴 존스(Paul Jones)*는 애니와 비슷한 내기로 세계일주에 도전했다가 포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류에 발맞춰 애니 코프초브스키도 세계일주에 도전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한 백만장자인 설탕업자가 15개월 만에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하는 여성이 있는지에 내기를 걸었고* 자신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894년 6월 25일, 애니의 도전이 시작됐다. 콜롬비아 자전거를 만드는 포프 매뉴팩처링 컴퍼니(Pope Manufacturing Company)가 자전거를 제공하고,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애니를 응원하기 위해 나섰다. 기부를 받을 수 없다는 내기 조건에 따라, 애니는 그녀 자신을 광고판으로 사용할 참이었다. 생수업체인 런던데리 리티아 스프링워터 컴퍼니(Londonderry Lithia Springwater Company)는 100달러를 건네고 자전거의 스커트보호대에 플래카드를 설치했다. 또한, 애니의 별명을 런던데리로 사용할 것을 원했다. 이렇게 애니는 코프초브스키보다 외우기도, 발음하기도 쉬운 애니 런던데리(Annie Londonderry)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이외에도 그녀의 몸에는 리본을 꽂음으로써 홍보효과를 노리는 사업체와 사람들도 있었다.


애니는 세계일주 경비에 보태기 위해 자신이 나온 사진과 사인을 판매하기도 했다

세 아이와 남편을 두고 떠난 애니. 하지만 애니는 가족에 대한 미련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집중했다. 6월 25일 출발한 후에도, 도시를 뜨지 않고 보스턴에 남아 돈 벌 궁리를 했다. 자전거를 탄 프로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사진은 여행 중에 사람들에게 판매하여 경비를 충당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7월 2일에는 뉴욕에 도착했다. 애니는 강연하며 돈을 벌었다. 강연에서 애니는 후원을 더 받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거짓말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을 하버드대에서 2년 동안 공부한 의학도라 소개하고, 사람들에게 미혼이라는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의상에 변화를 주었다. 블루머(Blommers)라는 바지 종류를 치마 대신 선택했다. 부피가 크고 불편한 치마에 비해 바지는 애니에게 자유로움을 선사했다. 일반 여인들의 따가운 시선은 덤이었다.


애니의 세계일주 계획은 미국 동부에서 서부를 가로지른 후 태평양을 건너는 것이었다. 하와이와 일본을 거친 후에는 유럽으로 그리고 다시 동부로 돌아오는 게 최종 목표였다. 그렇게 애니는 뉴욕에서 시카고 여정을 떠났다. 아무리 돈을 벌어보려 한들 여건의 제약은 이겨낼 수 없었고, 길거리에서 유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애니는 사실 일주에 나서기 전까지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었다. 임무에 도전하면서부터 교습소에서 자전거를 배웠으며, 실전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 때문에 19kg에 달하는 자전거를 아마추어가 타야하는 고통은 어마어마했다. 식사하지 못하고, 소낙비를 맞으면서 고생을 한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시카고에 도착했다. 하지만 더운 여름, 시카고에서 서부로 넘어가는 것은 무리였다.


애니는 결국 뉴욕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한다. 그녀의 계획은 뉴욕에서 프랑스로 건너가 이집트와 인도를 거쳐 일본으로 간후 미국의 서부에서 다시 동부로 넘어가는 거로 바뀌었다. 그리고 새 마음으로 도전에 임하기로 했다. 시카고에서 그녀는 콜럼비아 자전거보다 훨씬 가벼운 스털링 자전거를 사용하고, 여러 후원처도 찾았다. 광고관련 업종에서 일한 덕택에, 그녀는 자신을 상품화하는데 최적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일례로 언론사를 이용해 자신을 알리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도시에서 도시를 이동할 때는 각 도시의 라이더들을 이용했다. 그들이 나서서 그녀를 호위해줌으로써 안전을 보장받은 것이다. 빵빵한 지지를 등에 업고 뉴욕에 다시 도착한 그녀는 이제 프랑스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대에 바지를 입은 이 복장은 여성들에게 충격과 공포였다

11월 24일 애니는 뉴욕에서 프랑스로 이동하는 배에 올랐다. 물 위에서도 그녀는 자신을 홍보하며 후원금을 쓸어담았다. 프랑스에 도착해서 지갑을 도둑맞고, 자전거를 세관에 압수당함과 동시에 언어의 장벽에 부닥치는 삼중고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애니의 능수능란함이 한 수 위였다. 미국 대사를 이용해 자전거를 되찾고, 프랑스 언론으로 유럽의 주목을 자신에게로 돌린 것이다. 자신을 법학도로, 의학도로, 상속녀로, 미국 홍보왕으로 꾸미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끈 그녀는 파리를 누볐다. 자전거 대회에 참관하며 라이더들의 초대에 응하기도 했다.


한 번 불어난 유명세를 이용하는 데에도 애니는 선수였다. 파리에서 호의호식한 그녀는 리옹, 마르세유 등 프랑스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 언론사에 자신의 도착을 알렸다. 세계일주에 도전하는 모험심 강한 현대적인 미국 여성에 대한 관심은 프랑스에선 더 뜨거웠고, 사람들의 환대와 집중은 더 거셌다. 도시에 들어서면서 그녀는 환영을 받음과 동시에 각종 팬레터에 시달렸다. 이에 더하여 애니는 그녀 자신의 영웅적인 면모를 꾸며내는 데 일조했다. 아메리카에서 라이딩 도중 흑인의 총격을 받았는데, 가까스로 피하고 자신의 진주 리볼버***로 그를 해치웠다는 게 그녀의 설명. 대중은 애니에게 더욱 빠져들었다.


프랑스 라이더들의 호위로 애니는 프랑스의 최종 목적지 마르세유에 무사히 도착했다. 역시나 환대를 받은 그녀는 그 곳에서 시드니호라는 증기선을 탑승함으로써 유럽에서의 자전거 일주를 끝냈다. 뜬금없이 자전거가 아니라 배를 이용하는 게 야비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동안 수없이 사기를 쳐왔던 애니였기에 별문제는 아니었다. 그녀의 눈앞에 남은 것은 어떤 수단을 정직하게 이용하느냐가 아니라 아시아 횡단에서 어떻게 돈과 사람들을 끌어모으느냐는 것이었다. 


고민과 동시에 그녀의 얍삽한 일주는 유유히 흘러갔다. 증기선을 타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스리랑카, 싱가포르 등 어쩌면 자전거 일주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위험한 장소들을 통과한 것이다.* 대신 그녀는 짬짬이 들리는 도시에서 사진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의 세계일주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자전거로 돌진 않았어도 사진과 함께 자전거로 일주를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반증할 수 없을 터. 이 매력적인 사기꾼은 이에 새로운 스토리를 첨가했다.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독일 왕족을 만나 함께 호랑이를 사냥하고, 인도인들이 자전거를 탄 그녀를 외계인으로 착각해 혼비백산을 일으켰다는 게 그녀의 전언이었다. 대중들은 이러한 젊은 여성의기막힌 모험에 열광할 것이다.

애니의 세계일주 포트폴리오에 있는 사진들 중 일부. 이 사진들로 애니는 영웅담을 써내렸다

애니의 자전거가 장식용으로 변모했을 지라도, 그녀만의 돈버는 방식은 유효했다. 베트남에 도착하기 전, 그녀는 한 언론에 자신은 세계일주를 하는 헤로인이니 환영해줄 것을 요청했다. 나라마다 언론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베트남 언론은 그녀를 환영함과 동시에 그녀가 무사히 여정을 완수할 수 있도록 기부금을 모으는 데도 앞장 섰다. 한 연극 공연에서는 애니가 그녀의 자전거를 끌고 나와 등장하며 관객들로부터 기부금을 얻어가기도 했다. 물론 관객들은 흔치 않은 모험에 도전하는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고, 오히려 어서 그녀가 등장하기를 고대할 정도였다.


베트남에서 시드니호가 출항함과 동시에 애니의 여정도 재개했다. 홍콩을 통해 중국을 거친 그녀는 또 하나의 근사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1895년 초 애니가 청나라에 도착했을 당시는, 조선을 먹잇감으로 기싸움을 벌이던 청일전쟁에서 청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던 찰나였다. 애니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는 미국인으로서 청일전쟁을 몸소 겪기 위해 전선에 갔다. 그 곳에서 한 영국인 선교사와 일본인 가이드를 만난 애니. 이들은 어쩌다 청과 일본군의 전투에 휘말리게 됐고, 무자비한 청군들은 강을 건너며 도망치는 그들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영국인과 가이드는 죽었지만 애니는 어깨에 총을 맞고 일본군에 포로로 잡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애니를 엄청나게 환대했던 프랑스인과 프랑스 대사가 나서서 애니를 구출하여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게 애니의 청일전쟁 스토리였다.


청 다음은 일본이었다. 애니가 애용하는 시드니호를 따라 일본의 여러 도시를 거쳐 미국으로 가는 벨직호를 타기 위해 요코하마에서 애니는 하선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홍보하면서 돈 좀 벌어보려 했지만, 합리적인 미국 대사는 들은 체 만 체 했다. 당연히 그는 후에 있을 애니의 강연에서 악역으로 등장하여 애니의 여정을 괴롭히는 역할로 등장하게 된다. 대신 언제나 매너 넘치는 프랑스 대사 덕에 그녀는 일본에서도 무사히 배를 탈 수 있었다. 자전거는 여전히 장식용이었다.

애니 런더데리, 절체절명의 위기에 부닥치다? #연출

그렇게 애니는 벨직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내기의 기한인 15개월까진 아직 반년이나 남은, 넉넉한 시한이었다. 서부에 도착하자 애니는 자신이 자전거로 세계를 일주한 최초의 여성이라 주장하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이 때 주목할 만한 것은 애니의 체형이다. 그녀는 이 내기에 도전하면서 처음 자전거를 탔는 지라 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렇기에 보스턴에서 시카고까지 9kg이 빠졌던 애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의 한 언론에 묘사된 애니를 보면 자전거로 모험을 즐겼을 여성이 아님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키가 작고, 뚱뚱하고 여행의 편의를 위해 외모를 희생했다"는 대목에서 외모의 희생은 감수했지만, 배를 주로 이용하면서 편리하게 세계일주를 진행했기에 몸무게는 오히려 불어난 상황임을 알아차릴수 있다.


한편, 애니는 자신의 화려한 등장에도 시큰둥한 샌프란시스코의 반응에 실망했다. 그녀는 청일전쟁에서 겪었던 일, 인도에서의 위험천만했던 순간을 청중들에게 설명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줄거리에는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법.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극적인 일화를 끌어내기 위해 위의 사진과 같이 도둑질을 당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저 남은 여정을 소화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나섰다. 전체적인 반응은 미적지근 했을지라도 여러 도시에 산재한 라이더클럽 회원들은 자전거로 세계일주에 도전하는 여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이 때문에 라이더들은 도시와 도시를 잇는 구간에서 서로 애니를 호위하려 했다.


자전거를 제법 타기 시작한 아메리카에서 애니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커브 길에서 마차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애니와 동행 라이더를 철조망에 튕겨내버린 것. 부상으로 애니는 얼굴에 심한 피멍이 들었다. 이 사고는 후에 실신과 피를 토했음에도 여정을 떠나는 강인한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로 각색된다. 최종 목적지인 보스턴에 도착하기 직전에도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애니가 탄 스털링 자전거는 당시 자전거로는 획기적이게도 브레이크가 달려있었다. 하지만 내리막길에서 속도조절에 실패한 그녀는 결국 떨어졌고 손목이 부러졌다. 그래도 그녀는 내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악바리로 깁스를 한 채 마지막 완주를 이어나간다.


황량한 미국 서부를 자전거로 횡단하기 위해 애니는 철로를 자주 이용했다

아무튼 간에 애니는 세계일주의 마지막으로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이어지는 횡단에 도전한다. 모래로 가득찬 서부를 자전거만으로 횡단하는 것은 무리였기에, 애니는 철로를 자주 이용했다. 그리고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애니는 도착하기 전에, 자전거로 세계를 완주할 최초의 여성이 도착할 것이란 전보를 언론사에 미리 보냈다. 소도시에서는 환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웬만한 도시들에서는 애니의 과장된 여정에 의심을 품었다. 애니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반응이 좋지 않으면 잽싸게 다른 도시로 떠나버렸다. 그렇게 1894년 6월 25일, 보스턴에서 출발하고, 제멋대로 시카고에서 재시작한 세계일주는 1895년 9월 12일 시카고에 도착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세계일주에 사용한 자전거를 제공해준 스털링 자전거사에서는 400달러와 새로운 자전거를 주고, 애니가 사용한 자전거를 기념으로 받아간다. 덕분에 애니는 미션 중 하나였던 5000달러 벌기에 성공한다* 


일주를 마친 애니는 곧 가족과 돈을 지급해 줄 미지의 설탕업자가 기다리고 있는 보스턴으로 돌아간다. 애니는 10,000달러 뭉치를 받았다고 인터뷰했지만, 설탕업자를 알 수 없는 것처럼 그 진위여부 역시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남편 맥스와 세 아이는 끈기있게 애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애니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몇 차례 강연을 진행하고, 책을 펴낸다는 소식도 있었지만 잠시뿐이었다.


미스 런던데리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하다!

이후 애니의 삶은 자전거 일주만큼은 아니었지만 꽤나 다채로웠다. 먼저 그녀는 직업으로 저널리스트를 선택했다. 저널리스트로서 그녀는 미국 동부에 있었던 야성인간 사건이 자작극임을 밝혀내는 등 승승장구를 했지만, 수 년 만에 기사란에서 자취를 감춘다. 대신 판매원을 하고, 의류업체를 운영하기도 한다. 그러다 의류 공장이 불이 나고, 화재보험금으로 새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남편과 세 아이를 두고 세계일주를 떠났듯이, 아이들을 기숙학교로 보내는 등 당대에는 가족애가 없어 보이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 맥스와는 1946년 그가 죽을때까지 함께하는 의외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7년, 77세의 나이에 애니는 발작으로 세상을 등진다. 


이렇게 19세기 말을 뒤흔들었던 애니 런던데리의 생고생과 발랄함으로 가득찬 사기극은 끝이 난다. 진위가 상당히 의심되는 내기로 시작한 세계일주였고, 증기선을 애용하는 부정행위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애니는 그녀만의 발랄한 과장으로 대중을 매료시켰다. 이에 더해서 어떻게든 세계일주를 완수한 그 끈기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간혹 있다.


각주, *= 폴 존스는 파이퍼(E. C. Pfeiffer)의 가명이다. 그는 내기가 걸린 일주에 도전했다고 천명했으나 곧 포기했다. 그리고 자신이 유명해지기 위해 벌인 사기극이라 고백했다. 덕택에 애니 코프초브스키의 도전 역시 사기라는 의심을 피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러하기도 했고.  *= 애니의 그간 행태로 보건데 믿을 순 없다. *= 1894년 아시아 대륙, 특히 오토만제국 근방은 혼돈의 소용돌이였다.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시도했던 프랭크 랜츠(Frank Lenz)는 이란의 타브리즈(Tabriz)에서 터키의 에르주름(Erzurum)으로 가는 여정에서 실종됐는데, 쿠르드족에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피츠버그에서 미주 동부, 캐나다, 일본, 중국과 인도를 거쳐 세계의 절반을 돌았던 그는 죽음과 함께 여정을 종료해야 했다. *= 일례로, 싱가포르 언론은 애니의 진위를 의심했다. *= 시드니호의 출항기록과 애니가 겪은 일들에 걸리는 시간을 대비해보면 애니의 주장은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참고,

(인터넷)

애니 런던데리 사이트. www.annielondonderry.com 

Annie Kopchovsky Londonderry(1870?-1947) Rode A Bicycle Around the World, Debbie Foulkes(2010, forgottennewsmakers.com)

The Outspokin' Cyclist: Women's Liberation through bicycling, Phillip Barron(2008, Nicomachus.net)


(기사)

Chasing Annie, Peter Zheutlin(2005, Bicycling)

A Woman to Rival Paul Jones(1894. 2. 25, New York Times)


(도서)

1894년 애니 런던데리 발칙한 자전거 세계일주, 피터 쥬틀린(2010, 미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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