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첫 상사 이야기
서랍을 정리하다가 나의 옛 상사의 짧은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아기 같던 네가 어느새 시집을 가네, 축하해! 앞으로도 우리 늘 했던 것처럼 잘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현재 그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다.
떠난 지 2년 반 정도가 되었는데, 건너 건너 간간이 소식을 들을 정도일 뿐 연락도 끊긴 지 오래다.
내 첫 상사는 여자분으로 성격은 나빴지만 능력 하나는 뛰어났다. 다른 팀장이 1년에 3개 정도 사업을 운영한다면 이분은 7개 정도를 담당하셨다. 그만큼 우리 부서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덩치도 커졌고 나는 나름 이분 밑에서 일하는 게 자랑스럽고 좋았다. 하지만 성격적인 부분은 늘 문제가 되었는데, 한마디로 '찍히면' 일을 아무리 잘해도 욕받이 대상이 되었다. 다행히도(?) 나는 그분의 총애를 받는 직원 'Best 4' 중 1명으로 혼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언젠가 한 번은 다른 직원이 나에게 "네가 업무 보고해, 내가 얘기하면 분명 화내실 거야"라고 한 적이 있다. 이 정도로 직원 '차별'이 심하셨다.
그렇다면 대체 왜? 우리는 무슨 차이였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몇 개 짐작이 가는 이유들이 있는데, 우선 첫 번째로 본인을 무서워하지 않는 직원들은 좋아했다. 이게 무슨 "나에게 막대한 녀석은 네가 처음이야" 같은 짜증 나는 말인가 싶겠지만 사실이다. 대부분 직원들은 그분을 무서워하고 경계하지만 회사에서 업무보고는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 아니겠는가? 그 과정에서 80% 이상은 혼이 나지만 주눅이 든다면 '탈락'이고 아니라면 '합격'이다. 비록 업무적으로 혼나는 게 아닐지라도 말이다.
또 하나는 앞서 얘기한 총애 직원 'Best 4' 한테 잘못하거나 밉보이면 '탈락'이다. 이게 참 나에게는 괴로운 일이었는데, 그분과 같이 외근을 나가는 길이면 어김없이 물어보신다 "지난번에 들어온 OOO 어떠니? 너 말 잘 듣니?" "OOO이가 너한테 이렇게 얘기했다며?" 왜 직원들의 평가가 나의 대답에 달려있을까? 지금 생각해도 항상 긍정적인 대답으로 답한 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정말 미스터리한 일은 그분은 마음은 여린 분이라는 것이다. 앞서 나쁜 점만 써놓고 이렇게 얘기하는 게 웃기지만, 확실히 마음은 여리고 상처도 잘 받는 분이셨다. 다만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한테만'이라는 게 문제다. 솔직히 나도 내가 싫어하거나 관심 없는 사람이 뭐라 하면 상처는커녕 무시해버리지만 좋아하는 사람한테 가시 돋친 말을 들으면 상처 받는다. 하지만 회사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그런 감정을 대놓고 드러낸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고, 심지어 '나는 쟤가 싫어'라고 공공연하게 알리는 게 흡사 11살 정도 여자아이의 감성?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본인이 상처를 받으면 '역지사지'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법도 한데, 왜 모르실까? 참 안타깝다.
결혼으로 퇴사를 하고 3번 정도의 이직을 통해 몇 명의 상사를 더 만났지만 아직 그분만큼 강한 인상을 남기는 상사는 없다. 세상에 여러 성격을 가진 상사들이 있겠지만 이렇게 너무 '인간적(?)'인 분은 앞으로도 만나기 힘들지 않을까... 그분의 총애를 받던 'Best 4' 직원들은 모두 나랑 비슷한 시기에 퇴사를 했다. 지금도 친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 만나면 꼭 그분 얘기는 빠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 예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떠오르는 기억들은 다른 직원들에게 못되게 군것들, 너무했던 일들...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끝난다.
비록 내 첫 상사는 미스터리했지만, 만약 다른 직원들한테도 똑같이 대했더라면 충분히 좋은 상사가 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솔직히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그분은 편지의 내용처럼 내가 앞으로도 옆에서 묵묵히 잘해줄 거라고 믿었을 테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도 날 원망하며 지내고 계시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과거는 잊고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