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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ng Sep 20. 2020

정보 입력 업무를 아십니까?

나의 직업 이야기 

 나는 보험회사를 다니고 있다. 정확한 나의 업무는 '병원 영수증 안에 있는 특정 정보를 전산에 입력'하는 일이다. 단순 사무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리 단순한 일은 아니다. 물론 출근해서 퇴근하기까지 한마디 말도 없이 컴퓨터 작업만 하다가 가는 일이라, 보기엔 단순하지만 정확한 매뉴얼에 맞춰 특정 정보를 빠르게 입력해 넘겨야 하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업무가 끝나야 심사자에게로 넘어가며 그곳에서부터 심사가 시작되고 최종적으로 피보험자(손해 보험에서, 계약에 따라 손해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_출처:국어사전)가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직종이 생긴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프로세스를 다시 쉽게 설명드리자면, 병원을 간다. -> 영수증이 발생한다. -> 보험회사에 청구한다. -> 영수증 정보를 전산에 입력한다. -> 해당 보험 심사자가 확인&심사한다. -> 보험금이 지급된다. 이 과정에서 나는 영수증 정보를 전산에 입력해주는 '정보 입력자'이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냥 보이는 그대로 입력만 해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보험회사마다 요구하는 매뉴얼이 달라서 거기에 맞춰 입력을 해줘야 했고, 양도 어마 무시했는데 심지어 매뉴얼이 수시로 바뀌곤 했었다.(지금도 여전하다.) 그리고 업무시간 동안에는 일이 계속 배당이 되는데, 3분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끊임없이 들어오기 때문에 시간에 쫓긴다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하필 또 가장 바쁜 성수기인 겨울에 입사를 해서 더 스파르타식으로 업무를 익혔고, 아침 7시 정도 출근해서 밤 9시까지 정신없이 일을 했었다. 지금은 셧 다운 제도가 도입이 돼서 오후 7시면 컴퓨터가 꺼지지만 처음엔 참 심신이 만신창이였다.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을까? 그래도 난 잘 버텼고 지금은 어느새 2년 차가 되었다. 업무적으로 힘든 것은 그럭저럭 버틸만하고, 지금 주로 느끼는 것은 세상엔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이다. 특히 암환자, 정신질환자들이 많고 생각보다 많이 접수되어 들어온다. 하지만 어쩌면 훨씬 이전부터 그랬는데 내가 이제 느끼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경우는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사망한 건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겪는 건인데, 가끔 감정이입이 된다. '내가 이 아이의 부모라면..' '나의 부모님이 이 병에 걸렸다면..' '내가 이 사람이라면..' 

종종 남편한테도 얘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네가 아직 일이 덜 힘들구나?"이지만 남편도 보험심사 일을 하고 있기에 어느 날엔가 한 번쯤은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코로나 19도 그렇고 시대가 발전할수록 질병은 강해지고 사람들은 더 아파지는 것 같다. 그렇기에 나는 이 일을 통해서 아픈 사람들을 보며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하루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설령 보험회사 매출이 줄고 나의 업무가 줄어들더라도 모든 이들이 아프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고, 내가 정보 입력자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환자들의 영수증을 정확하게 잘 입력해서 누락되는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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