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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 Jun 09. 2021

나는 내 삶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는지 알 수 없다.

정처없는 길의 정처는 '외진 마음'이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흔히들 경험해봤을 '알바생'이라는 타이틀. 적어도 '90년생'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취준 활동을 하는 시간에 걸쳐 한 두 번쯤은 겪었을 법한 아르바이트. 나는 지금 알바생이다. 21년도 6월 기준, 본인은 만 24세이라 부르지만 남들에겐 26세라고 소개를 하곤 한다. 슬픈 사실이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분명 지금 내 상황이 더 멋있었더라면 혹은 10대 시절 생각했던 나의 20대 중반의 삶처럼 살고 있었더라면 지금 이 나이가 너무 멋있었을 것 같다. 안타까운 연민의 시선은 살짝 넣어둬라. 자존심이 강한 나는 그래도 아직 나를 사랑하고는 있다.


그래, 나이는 저 멀리 구석에 박아두자. 나는 종종 내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한다. 일부는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혹은 피하거나.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분명 어디선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는 사람 일 것이다. 철학계의 스타,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었기에 나는 단연코 확신한다. 돌아가서 내 존재는 지구보다 더 위에 대기권, 성층권을 넘어서 부-웅 떠있는 상태이다. 이 글은 환각제 혹 마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멀리서 보면 철학적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내 신세한탄이다. 서론이 길다. 그래도 한번 이하 필자의 삶에 대해 공감해주길.


3년제 대학 졸업 후 1년 조금 넘게 회사를 다녔었다. 입사 반년이나 되었을까, 야근에 치여 눈물이 흐르던 날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했다. 그날 밤이 마치 투명하고 촉촉한 젤리의 촉감 마냥 말캉말캉하고도 생생하다. 참고로 야근의 기본은 가히 밤 11시 30분 혹은 새벽 두시, 세시, 네시 할 거 없었고 아침 여섯시 통이 트고 첫차를 타기도 집 가서 샤워만 하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며 출근이 새벽 4 시인 경우도 있었다. 몸이 상함이 느껴졌다. 밤 12시가 넘으면 회사에서 택시비 지원을 해주는데 4만 원이 넘게 나오는 이유로 눈치가 보여 최대한 자제하거나 다음 날 첫차를 탔다. 참고로 야근 수당은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어김없이 야근을 하던 중 눈물이 나는 사건이 있었고 그 다음날 일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고 나에게 남은 속상함과 분노에 못 이겨 그간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워킹홀리데이'를 야근 도중 새벽 12시경 신청했다. 입사 전 대학 생활 중에 한 학기를 캐나다에서 지냈었다. 귀국 후 그때만 해도 다시 캐나다 갈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이라 하는 내 사람들이 좋았다. 하지만 회사 다니며 일을 하고 금세 숨 막혀 버리는 껍데기뿐이었던 시간 속에서 지난날 캐나다에서의 인턴 생활이 자꾸 맴돌았다. 그 당시 만족스러웠던 슬기로운 인턴 라이프에 되려 캐나다에 향수를 느꼈다. 다운타운, 바다와 숲, 대자연, 친절한 사람들, 스몰토크와 같은 일상 속에 녹아들어 있는 작고도 커다란 것들 또 나를 채워 주는 많은 것. 문화, 정서 등 상당 부분에서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 참을 수 없는 목마름에 결국 팀장님과 팀원들을 뒤로한 채 캐나다 정부에 워킹홀리데이 지원서를 제출했고 이듬해, 합격 통지와 함께 회사에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후 여행을 많이 다녔었다.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그리고 캐나다로 떠났다.


1년간의 계약된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많고 다양한 것을 보고 겪고 배우며 습득했다. 이 기간 중 반은 팬데믹과 공존했었는데 인류가 닥친 생명•윤리적 긴급 상황과 버무려진 온갖 사회적 이슈와 정치적 파장의 한가운데에 포기하지 않고 버텼었다. 캐나다의 밴쿠버는 특히, 소수자로 불리는 이들이 이곳에서는 그들은 대체적으로 공감과 존중을 받는 사회였고 그 덕분에 나는 삶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있어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전 나는 분명 역사와 전통에 공감하고 존중하는 사람이지만서도 변화하는 세상 속에 다각도로 바라보며 시대에 맞춰 발걸음 하며 전통이나 권위에 맞서 혁신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인 '이단아'가 줄 곧 '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곳에서 나는 그다지 혁신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더 큰 변화를 맞이하고 진실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에 비해 내 삶은 논리 하에 더 개인적이고 솔직해질 필요가 있었다. 삶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살아온 방식과 현재 살아가며 존재하는 주변의 삶에 대한 이질감. 그 안에서 나는 갈팡질팡하며 노심초사했다. 흔들림에 틀림없었다.


"BLACK LIVES MATTER" 운동과 "STOP ASIAN HATE" 캠페인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의 불공정함과 차별은 곧 이단아들을 만들어 낸다. 결국은 자유와 행복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용기가 있다. 자신의 소리에 힘이 있는 사람들 곁에서 나도 힘이 났었다. 어떤 일에도 불구하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늘 자신감에 드디어 나는 진정한 어른인가 싶어 스스로가 대견했었다. 돌아보면 그 시간 속,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며 진귀하고 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COVID-19이 지구 상에 인간과 공존하지 않았다면 나는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고 2개월에서 3개월 정도 남미 혹은 독일 여행을 했었을 것이다. 혹은 발이 닿는 데로 어딘가에 소속이 되었다가 금세 헤어지며 세상 속 어딘가에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내 스스로 멋진 사람이라 생각하며 말이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했던가. 인간은 간사하다 했던가.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고 귀국한 지 넉 달이 될 때에 다시금 마주한 반복된 지난 과거의 나. 내가 선호하는 가치와 논리의 근거에 문을 열지 않고 타인의 뒤에 숨어버리는 모습. 게다가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앞에선 내 의견을 숨겨버리는 등 모순적 언행을 취하고 있었다. 맞서기보다는 피곤함에 지쳐서 또는 달라 보이는 게 싫어서 그저 존중하는 척, 이해하는 척해야 했었다. 과거인 듯 말하나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나의 대화법과 비언어적 요소가 달라짐을 느꼈고 가끔은 그 모습에 속상했다. 진짜 내 모습은 어디에 있나. 궁금하다.


그렇다고 내 나라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나의 고국, 대한민국에 귀국 후 몇 달간 아름다운 강산에 감탄하며 국뽕에 취했었다. 이 나라를 사랑한다. 간혹 아니 꽤 많은 사회문제와 정부, 대기업에서 일으키는 정치를 달가워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아쉬울 뿐. 내가 하는 생각과 삶의 가치관이 정답만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이야기가 있고 배경지식이 있으며 이는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많은 어린이, 청소년, 청년, 중장년층 그리고 삶의 농도가 짙어지신 노인들 모두가 거울에 비친 모습뿐만이 아닌 진정한 자신 내면의 모습과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지길 바라고 그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화하기를 바란다. 삶에 치여 깊은 대화가 어려워진 현실이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철학적 대화들이 많이 사라졌다. 삶을 토론하고 공유함으로써 공감하고 싸우며 극복하는 과정에서 단단해지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지 않은 이 곳, 이 사회 속 세상에서 더욱 이단아가 된 것 같다고 느낀다. (모든 시민을 일반화하려는 태도는 아니다. 단지 내가 겪은 주변에서 많이 발생된 이야기다. 그 범주가 넓은 것 같아 아쉬울 뿐)


호시탐탐 해외에 나갈 기회를 노리고 있다. 부족한 어학 능력 즉,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렇다고 지독하게 애쓰는 것은 아니다. 잊혀지지 않을 만큼 그들의 문화에 익숙해질 만큼. 떠날 궁리를 하는데 이 곳에 마음이 잡힐 리가 없다. 안정적이고 싶지만 세상만사 불평하며 안정적인 것 말고 적어도 나라는 존재를 이해해주고 헤아려주는 곳에서 마음 두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 발버둥을 치는 중이다. 과연 지금 이 시간에 알바생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도 의문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욱이 일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지금도 여러 갈림길 앞에 놓여있다.




마음 둘 곳 없이 떠다니고 있다. 나의 마음은 우주 어딘가에 부-웅 떠있다. 그저 내가 존재하는 곳이 살갗 부딪히며 희로애락과 온기가 진정하게 느껴지는 오롯한 삶의 터전이고 싶다. 솔직히 이 곳에서 나는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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