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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얏 Sep 04. 2019

도시사(都市史)

01. 오, 로데오

도시사(都市史) 

대구, 서울, 교토, 울산을 거쳐 다시 서울.  


2019.03~현재  

서울, 목동 로데오



어디에나 있는 로데오


대도시라면 로데오 거리가 꼭 있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광주 울산 인천 모두 로데오 거리가 있다. 제주에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2011년 9월 중국 건강용품 업체 바오젠 그룹 임직원 1만 1,000명이 방문한 후 바오젠 거리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내가 사는 서울에도 몇 군데의 로데오 거리가 있다. 압구정, 건대, 목동 등등. 


그런데 이 로데오란 말의 유래를 아시는지?


나는 몰랐다. 뭔진 몰라도 카우보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긴 했다. 네이버 검색 결과에 따르면, 로데오라는 말은 스페인어에서 유래했는데, 가축을 모으는 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미국 서부에서 흩어진 가축을 모으던  카우보이들이 안장 없는 난폭한 말이나 소를 타는 재주를 선보이는 경기로 발전시킨 거다.


가취가욥


로데오 거리라는 이름도 미국이 원조다. 


LA 베벌리 힐스에 위치한 유명 패션 거리인 로데오 드라이브에서 따왔다고 한다. 1950년대 미국 젊은 층 사이로 유행한 로데오 경기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경기장에 몰려들었고, 자연스레 음식점이나 옷가게 같은 상권이 형성됐다는 거다. 한국에선 압구정 로데오 거리가 가장 먼저 생겼다.



길들여지지 않는 밤

이처럼 로데오라는 이름은 번화가나 그 지역 중심 상권에 붙는 이름이다. 


내가 사는 목동 로데오 거리 역시 주점과 유흥거리로 즐비한 곳이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나보다 더 일찍 퇴근한(비법을 알고 싶다) 사람들이 벌써 술에 취해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붉고, 눈은 맛이 가 있다. 사람이 지나가건 말건, 보도에서 담배를 뻑뻑 피운다. 

퇴근 시간이 평소보다 늦어질 때면 더 세밀한 광경을 보게 된다. 전체라기보단 부분이다. 


그들이 이상하게 움직이거나 이상한 곳에 멈춰있을 때면 한 사람의 전반적인 실루엣보다는 어떤 특정 부분에만 눈길이 간다. 


예를 들어, 보도블록 위에 쓰러진 사람은, 죽은 슬라임 같은 그 실루엣보다는 티셔츠가 말려 올라간 등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는 말이다. (이 점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나도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이 내가 가는 길에 자꾸 쓰러져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눈을 뜨고 걸어 다녀야 했다) 


이렇듯 로데오의 밤은 각기 제멋대로인 부분들의 총합이다. 참으로 큐비즘스러운 야경이다. 

피카소가 목동 로데오를 봤다면 박수를 쳤을 것


로데오의 결계

나의 집은 로데오 거리 골목 안쪽에 있다. 


왁자지껄한 도로변에서 골목으로 꺾어 들어오면 조용한 원룸촌이 나온다. 다양한 높이와 면적의 원룸, 빌라, 빌딩들이 세워져 있다. 내가 아직 못 본 걸 수도 있지만, 이 안으로 들어오는 취객들은 거의 없다. 결계라도 쳐있는 것처럼 주거지역과 유흥가가 훌륭히 분리되어 있다. 


나와 함께 집을 보러 다녔던 부동산 중개인은 이 일대가 비록 유흥가이긴 하나, 오목교, 화곡, 가끔 광화문 등 5호선 라인의 직장인들이 많이 살아서 치안 괜찮죠, 좀만 걸으면 지하철역도 나와요, 근처에 이마트도 있고 하이페리온도 있어요 네, 생활하기 참 괜찮아요 여기. 라고 설득했다. 

가뜩이나 낯선 서울, 새로운 동네를 돌아다니며 집을 구하는 일이 너무 피곤했던 나는, 좁은 부엌과 낡은 세탁기가 불만스러웠지만 탁 트인 전망이 돋보였던 (이 동네에서 이 정도면 신축이라고 칭찬 일색이던 중개인의 꼬드김에 넘어가) 원룸 꼭대기층에 자리를 잡는다. 


앞으로 1년은 살아야 하는데 피곤하다는 이유로 몇 시간 만에 결정을 내려도 되는 걸까, 과거의 나를 원망하게 되진 않을까, 이사오기 전날 까지도 걱정했다.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나는 이 집의 삶에 완벽 적응했고, 여기서 보는 야경도 마음에 든다. 


요즘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노을이 아름다워서, 종종 창문 바로 앞에 의자를 두고 해가 저무는 걸 구경한다. 다만 축구 경기가 있을 때면 동네의 텐션이 평소보다 더 올라간다. 술집마다 누가 더 데시벨이 높은 함성을 지르냐를 두고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축구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경기에 관심이 없는 나는 괴롭기만 하다. 


자랑1
자랑2


오, 로데오 

인생에 성나고 술에 흥 난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 


오, 로데오. 왜 그대는 로데오인가요. 당신의 이름만이 내 원수예요. 

아무리 노을이 아름답게 지는 하늘이 보여도 그 아래 땅까진 사랑할 수 없는 노릇이다. 기본적으로 로데오는 나처럼 여기 사는 주민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로데오 경기의 말과 소처럼 마음껏 풀어지고 싶은 사람들이 들리다 떠나는 공간이다. 


어중이떠중이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동네에 정을 좀 붙이고 싶었는데 여기서도 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도 1년 계약이고, 집도 1년 계약이니 여기서 남은 계절 아프지나 말고 잘 버티다 얼른 탈출하자고 다짐했다. 

고양이가 없으니 마지막으로 야경 자랑 한번 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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