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오(HYUKOH) - Help를 듣고
한낮에 길을 잃어버린 자가 있다. 길을 잃기에 적절한 시간은 아니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없어졌다. 분명 그와 함께 길을 걷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하느님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요? 그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사실, 그는 길을 잃은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만 혼자가 됐을 뿐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잠이나 자자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잠을 자기에 적절한 시간은 아니었다.
노래는 보사노바 리듬의 기타 연주로 시작한다. 그 위로 오혁의 나른한 목소리가 쌓인다.
제목과 달리, 이 곡에는 도움을 청하는 자라면 으레 가질 절박함이 없다. 오히려 느긋하다. 느긋하다 못해 무기력하다.
후렴 뒤에는 누군가의 숨소리가 섞여 나온다. 한숨보다는 호흡에 가까운 소리다. 명상하는 것처럼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는다.
심리학에는 무망감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 무망감이란 희망이 없다는 느낌으로, 절망과는 조금 다르다. 슬픔도 기쁨도 기대도 어느 것도 느끼지 못하는 심리적 마비 상태다.
한낮에 길을 잃은 그 자를 다시 떠올려보자.
무망감에 사로잡힌 그는 비명을 지르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다만 양지바른 곳에서 절망도 희망도 없이 누워 있다.
앨범 커버의 식물처럼, 어떤 이는 따스한 햇볕 아래서도 말라죽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