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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컴퍼스 Jun 04. 2020

#24. 크루즈의 포멀나잇이 달라진다

타이타닉의 저녁식사를 기억하시나요


나의 십 대 시절의 최고의 영화는 아무래도 타이타닉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스케일이 큰 영화는 처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커다랗고 화려했던 배가 속절없이 두 동강이 나서 사람들이 물속으로 풍덩풍덩 떨어지는 장면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날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돌려봤던 영화인데 배가 가라앉는 것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건 퍼스트 클래스의 사람들이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를 차려입고 빙 둘러앉아서 정찬 식사를 하는 장면이었다. 곱게 접힌 냅킨,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포크와 나이프, 하얀 정장에 검은 나비넥타이를 깔끔하게 매고 바쁘지만 질서 있게 움직이는 웨이터들의 풍경은 내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았다. 



영화 <타이타닉>



그 이후로 크루즈에서 일하게 되고 첫 포멀 나잇(formal night)에 나는 단번에 타이타닉의 그 식사 장면을 떠올렸다. 한국에서는 좀체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은 눈부신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들과 조금은 펭귄 같아 보이긴 하지만 사람을 몇 배는 더 기세 등등하게 보이게 하는 턱시도를 입은 남성들을 관찰하는 건 늘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포멀 나잇의 풍경은 내가 크루즈에서 근무했던 7년 동안에도 눈에 띄게 달라져왔으며, 지금은 포멀 나잇을 없애는 크루즈 라인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사실 이 드레스코드는 크루저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분분한 문제이다. 작가이자 크루즈 전문가인 Billy Hirsch의 말에 의하면 포멀 나잇은 대서양 횡단의 전성기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 같은 것이며, 주로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크루즈를 타는 3등석 승객들과는 달리 퍼스트 클래스 승객들은 그 안에서도 귀족사회의 일원으로서 매일 저녁 연회복에 이브닝드레스를 준수했다고 한다. 저녁식사 때뿐만이 아니라 데크에 있는 라운지체어에 누워있을 때도 할 수 있을 만큼 차려입었다고 하니 그 분위기가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40년대 큐나드 크루즈의 포멀 나잇 풍경 @출처 https://www.washingtonpost.com/



이제는 크루즈 또한 사회의 변화에 발맞춤 하여 대중적으로 변하고 있다. 물론 일반 호텔이나 항공사와 마찬가지로 스위트룸 승객들이 누릴 수 있는 추가의 혜택들이 있으나 이전의 계층 사회 때와는 달리 크루즈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휴가가 되었다. 여러 대형 크루즈 라인은 점점 젊어지고 있는 추세이며 자연스럽게 옷차림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 정장으로부터 해방되어 단지 휴가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여분의 짐가방까지 동원해야 하는 포멀 나잇은 매력보다는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일주일에 두 번은 포멀 나잇을 준수했던 로열캐리비안도 2019년 12월부터 5일 이하의 짧은 크루즈에서는 포멀 나잇 대신 ‘Wear Your Best”를 도입했다. ‘당신에게 최고인 옷을 입으세요’라는 말은 드레스코드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제안’ 정도로 바꾸었다는 뜻이다. 셀레브리티 크루즈 또한 포멀 나잇 대신 ‘이브닝 시크’ 드레스코드를 도입하여 전통적인 포멀웨어보다는 모던 럭셔리로 방향을 바꾸고 있으며,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의 ‘갈라 나잇’도 재킷과 넥타이가 더 이상은 필수가 아니게 되었다. 카니발 크루즈와 노르웨이지안 크루즈 라인은 좀 더 관대한 편으로 드레스코드를 승객들의 편의에 맡기는 식이다. 



@출처 royalcaribbean.com



아직까지도 드레스코드를 엄격하게 지키는 단 하나의 대중적인 크루즈 라인은 바로 큐나드 크루즈이다. 저녁 6시가 지나는 순간 모든 승객들은 적어도 스마트 캐주얼 이상의 옷차림을 준수해야 한다. 특히 포멀 나잇(갈라 이브닝)에는 정식 포멀 복장이 필수이다. 큐나드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각각의 드레스 코드에 대한 안내가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출처 https://www.cunard.com/



앞서 언급했듯 포멀 나잇에 대한 생각은 승객들마다 다르다. 70년대부터 크루즈를 해오셨다는 할아버지는 포멀 나잇이 없어지는 건 말세나 다름없다고 하시며 혀를 끌끌 차셨다. 그러나 이제 막 대중화된 크루즈를 즐기기 시작한 승객들은 휴가는 휴가답게 편하게 즐기자는 주의이다. 사실 어떤 옷을 입든 바다 위이기 때문에, 또 크루즈이기 때문에 특별해질 수밖에 없는 게 바로 크루즈 휴가이지 않을까. 그래도 크루즈에서 포멀 나잇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조금은 아쉬울 것 같은 마음이다. 




Written by Hong

@jayeon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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