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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컴퍼스 Jun 17. 2020

#25-하. 저희 너무 잘 지내고 있어요

스펙트럼호에서 지내는 3명의 씩씩한 한국인 선원들과의 인터뷰

6월 5일 스펙트럼호가 부산에 입항했던 날. 이른 아침부터 한 선배로부터 카톡 한 통을 받았다.  


“나영아, 너 지금 부산이니? “


카톡과 함께 날아온 사진 한 장은 낯선 크루즈의 모습이었다. 바로 스펙트럼호였다.

부산항 가까이에서 근무하는 선배가 회사 창가에서 찍은 스펙트럼호


부두 근처에서 근무하는 선배는 웅장한 크루즈 한 척을 보고 입을 다물수가 없었고 너도나도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창가로 몰려든 사람들 사이로 사진 한 장 찍으며 크루즈사에서 근무 중인 나를 떠올렸다고 했다.


“아니요, 제가 하선한 지가 언젠데요. 하하하 ”


나의 주변 사람들은 크루즈만 보면 제일 먼저 나를 떠올린다. 그래서 오랜 시간 해외 생활하며 잦은 연락은 못하지만 크루즈와 연관된 소식이 들리면 나를 찾는다. 그러나 이번은 마음이 뭉클해졌다.

마치 크루즈가 나의 분신이 되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 같달까? 특히 부산은, 나의 고향이기도 하니까.   


나의 주변 사람들이 크루즈를 보면 나를 떠올리듯이 나도 크루즈를 보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선배가 보내준 스펙트럼호 사진을 보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생각났다. 바로 스펙트럼호에 근무 중인 사람, 그리고 2011년 나와 함께 레전드호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젠(ZEN)이었다.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전 혹시나 해서 인스타를 먼저 들여다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인스타 그램에도 낯설지 않은 사진 한 장이 인스타에 올라와 있었다. 바로 크루즈 안에서 바라본 부산 항구의 모습. 사람 한 명 없는 한적한 부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부산에 잘 도착했냐며, 입국 축하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영, 나 안 내리기로 했어. “


그렇다. 6월 5일 스펙트럼호에는 4명의 한국인 선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 1명만 하선을 했고, 나머지 3명은 크루즈에 머물기로 결정을 했던 것이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젠이고, 또 다른 두 명은 린, 선샤인이라는 사실을 젠을 통해 알게 되었다. 왜 안 내렸을까? 하선만 하면 바로 집으로 갈 수 있는데 왜 배에 머물기로 했을까?  크루즈의 생활을 너무 좋아하는 나지만, 만약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배에서 내리지 않았을까?


나는 갑자기 왜 그들은 크루즈에 머물기로 결정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그들을 직접 만나 물어보고 싶어 졌다. 그래서 그들에게 영상통화를 요청했고, 이렇게 우리 넷은 처음 만났다. (물론 젠은 이미 익숙한 사람이지만, 오랜만에 만났다.)  




나영 : 안녕하세요? 다들 잘 지내죠?


젠, 린, 선샤인 : 안녕하세요. 하하하하하하. 너무 반갑습니다 하하하하하.


웃음이 넘치고, 세명 너무 밝은 성격을 가진 사람들임을 웃음소리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영: 셋 다 왜 이렇게 성격이 밝아요! 그리고 젠한테 들었는데 맡은 업무도 없으면서 스케줄이 너무 바쁜 거 아니에요?  하하하하하


젠, 린, 선샤인: 하하하하 네 저희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안 그래도 저희 엔진 투어를 신청해놔서 이 전화 마치고 엔진 투어 가야 해요. 하하하


나영: 하하 그럼 바쁘신 분들이니 시간 많이 뺏지 않을게요~  어색하겠지만 먼저 각자 자기소개 간단하게 해 주시겠어요?


스펙트럼에서 엔진 투어를 즐긴 선샤인(왼쪽), 젠(가운데) 그리고 린(오른쪽)


나는 그녀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젠 (Zen, 윤혜진)

디지털 콘텐츠 스페셜리스트(Digital Contents Specialist) 로서 근무 중이며 크루즈 안에서 디지털로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를 관리, 작업한다. 2010년에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사에 입사했고 12척의 다양한 크루즈선에서 근무했다. 2019년 12월에 스펙트럼호에 승선했고, 육지 땅을 못 밟은 지 84일째가 되었다고 한다.   


선샤인 ( Sunshine, 박서진)  

유스스테프 (Youth staff) 로서 근무 중이며 각국에서 크루즈로 여행 온 1살부터 18세까지의 아동, 청소년들을 위해 짜인 선사 내의 학습, 활동 프로그램들을  시행하고 참여 아동, 청소년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첫 컨트 렉은 세계 최대 선박 심포니호에서 시작했고, 두 번째 컨트 렉은 작년 11월 오베이션호로 배정받았다.  4월 11일이 하선일이었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국경이 막혀있어 하선하지 못하고, 한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스펙트럼으로 옮겨와 하선 기회를 찾고 있었다.  


린 (Linn, 배효정)  

시큐리티 스태프 (security Staff)으로 크루즈선안의 보안,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부서에서 근무하는 중요한 직책이다. 작년 11월에 오베이션호로 첫 컨트 렉을 받아 승선했으며, 3월에 스펙트럼호로 넘어오게 되었다.  



나영: 먼저 전화 통화에 응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다들 뉴스를 봐서 알겠지만 지난 5일 스펙트럼호의 부산항 입항 소식을 기사들이 보도를 했었는데  4명의 한국인 중에 단 1명만 하선을 했다는 소식을 담았거든요.  그 뉴스를 보고 제 주변 지인들도 나머지 3명은 왜 안 내렸냐고 묻기도 했고, 저 역시 꽤 오랜 시간 배에서 보냈을 텐데 하선만 하면  바로 집에 갈 수 있는데 왜 하선을 하지 않았는지 어떤 사연을 다들 가지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정말 만나보고 싶었고요.


젠, 린, 선샤인: 하하하하


린: 배에서도 동료들이 저희 보면 너무 잘 지내고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보기 좋다고 할 정도로 재밌게 시간 보내고 있어요.


젠: 주변에서 왜 안 내리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배에서 안 내린 이유는 간단해요.


나영: 그 이유가 뭐예요?


젠: 배에서 지내는 게 즐겁기도 하지만 안전하다고 판단했거든요.  


나영: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어요? 어떤 부분에서 더 안전하다고 느낀 거죠?


젠:  사람들이 크루즈 안이 실 내고 갇혀 있는 공간이라 생각해서 더 안전하지 않고, 바이러스 전염이 빠르다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몇 년을 배에서 일한 사람으로서 육지 어느 쇼핑몰을 가도 여기처럼 손님들한테 손 자주 씻으라 하고, 곳곳에 소독하는 곳을 못 봤어요.  

그리고 코로나 이후로는 방역, 소독 절차가 더 강화돼서 더 자주 소독하고, 청소하고, 철저하게 관리를 하고 있어요.  


나영: 선원들은 약 지금 스펙트럼호에 몇 명이 있나요? 다들 건강한가요?


젠: 네, 코로나 이후로 배에서 모든 선원들은 매일 두 번씩 체온을 재고 있어요. 코로나 발생한 이후 초반에는 객실 안에서 14일 동안 격리하고, 각자의 몸 컨디션을 체크하는 시간을 보냈었어요. 그리고 다들 아무 증상도 없고, 건강하다고 배 안의 의사가 판단을 한 뒤로는 객실 밖을 나올 때는 무조건 마스크를 착용하고, 선원들끼리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배 안에서 움직임을 조금씩 넓혀가기 시작했어요. 지금 저는 육지 땅을 못 밟은 지 84일째인데 그동안 한 명도 의심증상자가 없었어요. 그리고 5월 29일에 상하이에서 402명의 중국인 선원들이 하선을 했거든요. 듣기로 그때 핵산 검사를 하선하자마자 진행했고, 전원 음성이 나왔다고 알고 있어요.


나영: 맞아요. 전원 음성 판정을 받았어요. 그리고 4월 23일에 퀀텀호에서 내린 353명의 중국인 선원들도 전원 음성 판정받았고요.


젠:  네, 그래서 한국에서 감염자 발생과 관련된 뉴스를 볼 때마다 오히려 배 안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물론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가족들도 걱정은 돼요. 나만 이렇게 안전하게 있어도 되나.  


나영: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부산에서 안 내렸는데


젠: 내리지 말라고 하하하하하하 배에 있으라고 하하하하하


린, 선샤인: 저희들도요. 너무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 보니 마음 놓인다고 오히려 더 좋아하셨어요 하하하하하 (그녀들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린: 정말이지 배에 있는 게 한국에 있는 것보다는 더 안전하다고 느껴요. 객실 발코니 방에 묵으면서 편하게 지내고 있고요. 그리고 저희 배에서 아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예요. 배에서 식사도 다 잘 나오고요. 그리고 저희 지금 일을 안 하는데도 불구하고 페이를 조금이지만 받고 있어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배에서 이렇게 지내는 게 경제적으로 훨씬 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푹 쉬다가 크루즈 운항이 재개되면 바로 업무로 복귀도 할 수 있고요. 아무래도 제가 만족한 생활을 보내고 있으니 부모님도 만족하셔요.


나영: 린이 그렇게 좋아하니, 제가 부모님이라도 만족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방금 배에서 아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는데, 뭘 하면서 바쁘게 보내요? 지금 일은 안 하잖아요?


린: 배에서 남아있는 승무원들이 지겹지 않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줘요. 어제는 노스스타(North Star)도 오픈해서 셋이서 노스스타 놀러도 갔어요.


*노스스타(North Star)는 스펙트럼호에 있는 전망대이다.  바다 위 가장 높은 전망대로 기네스에 오른 적이 있다.  

스펙트럼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


젠: 지난주에는 브릿지에서 와플을 만들어먹기도 했어요.


나영: *브릿지가 와플 맛집이 되었네요 이런. 하하하하하 


*마린 부서의 승무원이나,  높은 직위의 승무원이 아니면 브릿지를 가볼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을 정도로 브릿지는 모두에게 오픈되는 곳이 아니다.  


린: 면세점 오픈!


젠: 맞아요! 게다가 선원들한테 면세점 할인도 해줘서 화장품 떨어질 걱정은 안 해요!


선샤인: 아, 그리고 범퍼카도 탔어요!


린: 이탈리아 스페셜 데이 때는 피자도 엄청 먹었고, 최근엔 소렌토 피자 가게 오픈도 했어요!


젠:  피자 하면 스펙트럼 소렌토죠. 소렌토 피자 진짜 맛있어요.


젠, 린과 선샤인 세 명이서 신이 나서 크루즈 안에서의 모습을 설명해주는데 나도 덩달아 배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정도였다.


나영: 세명 다 좋은 성격이지만, 서로 성격이 잘 맞아서 배에서 시간을 더 재밌게 보내는 거 같아요.


젠, 린, 선샤인: 네 맞아요! 저희 너무 잘 맞아요. 하하하하하하


나영: 그럼 다른 선원들은 어때요? 아직 스펙트럼호에 집에 못 가고 기다리고 있는 선원들이 500명이 넘는다고 들었어요.  


젠: 네 중국인 선원이 200명 가까이 승선해 있고, 나머지는 유럽, 미주에서 온 선원들이에요.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회사에서 기회를 보고 있다고 들었어요.   


나영: 안됐네요. 모두가 젠, 린, 선샤인처럼 남아있고 싶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안 그런가요?


젠: 네, 내리라고 해도 안 내리는 저희가 특별한 거지, 대부분의 선원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해요.


나영: 맞아요. 자녀가 있다면 자녀가 보고 싶을 건데 아직도 하선이 자유롭진 않으니.. 너무 안타까워요.


젠: 네, 코로나 이후로 국경도 닫혀 있고,  부두도 닫혀있어서 외국인 선원들은 아직도 하선을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저희는 그래도 한국인이라서, 부산에서 내릴 수 있었고요. 물론 저희가 안 내리겠다고 했지만, 같이 여기 배에 있었던 다른 한 분은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서 하선을 결정하셨어요.  


나영: 아 그런 거였군요. 내리신 분이 그분이셨군요? 어서 나머지 선원들도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젠: 저희도요.


나영: 여하튼, 바쁘신 와중에? 하하하 시간 내서 인터뷰해주어 고마워요. 셋다 너무 건강하고 밝아 보여서 정말 제가 다 기분이 좋아지고,  안심이 돼요.


젠: 저희 너무 건강해서 문제죠. 하하하. 잘 챙겨 먹고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체력 유지하고 있어요.


린, 선샤인: 정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나영: 그럼 우리 다음에 만날 때는 꼭 배에서 함께 다 같이 만나요!


젠, 린, 선샤인: 네!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어요!!  



한 시간 가까이 에너지 넘치는 세명의 승무원과 실컷 떠들고 웃고 나니 잠시나마 나도 배에 올랐다곤 기분이었다.  


선원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삶이라니, 선원이라는 직업은 정말이지 누가 들어도 매력적인 직업이다.  나 역시 그 매력에 빠져 3년간 선원 생활을 했었고 스스로를 바다인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을 만나고 나니 진정한 바다인을 만난 느낌이랄까.


이 에너지 넘치는 세명의 한국인 선원 덕분에 스펙트럼호의 선원들은 다들 그 밝은 기운을 받고 있지만,  스펙트럼호에는 집에 있는 가족들이 그립고,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선원들이 500명 가까이나 된다. 대부분 유럽, 미주,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선원들이다. 이는 비단 스펙트럼호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 약 6만 명 가까이 되는 선원들이 하루빨리 부두와 국경이 열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비록 국경은 닫을 수 있어도 그리운 마음은 쉽게 닫을 수 없는 법. 어서 빨리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그리고 그날이 온다면 나 역시도 이 밝은 세명의 한국인 선원들을 어서 빨리 한 번 만나 보고 싶다!   


에너지 넘치는 그녀들과의 유쾌했던 화상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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