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은 Dec 21. 2018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나의 기억

어떤 기억은 오래 간직하고 싶고 또 어떤 기억은 사라지면 좋겠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잊고 싶은 기억은 늘 내 마음 한구석에 존재하고, 좋은 기억은 떠올리는 그 순간뿐이다.


왜 잊고 싶은데 사라지지 않는 걸까? 좋지 않은 기억이지만, 지금의 내 성격을 형성한 사건이기 때문일까. 오늘 밤은 어떤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 전학은 하지 않아서 학교까지 가는 길이 멀었다. 일단 17층에서 내려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했다. 어느 날부턴가 엘리베이터에서 성인의 남자와 마주쳤다. 수줍음이 많고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높았던 나는 집에서 나오는 시간을 조금씩 다르게 했다. 그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지 않길 바랐지만 하강하는 엘리베이터는 계속 같은 층에 멈췄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아저씨는 나에게 인사를 했고 차츰 가벼운 농담도 건넸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끝내지 못한 날은 함께 20분 정도를 걸어서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열차까지 함께 타고 두 정거장을 더 가서야 환승역에서 헤어질 수 있었다. 혼자가 되면 편안해진 마음으로 열차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편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아저씨와의 대화가 재밌기도 했다. 하지만 동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아저씨가 오늘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차를 운전해서 이동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역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승용차에 단둘이 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저씨가 건넨 친절한 마음을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했다. 혼자 걸어가는 게 더 편하다고 이야기하고 1층에서 내려 빠르게 역으로 걸어갔다. 역으로 걸어가는 내 옆으로 그 아저씨가 운전하는 차가 다가왔다. 조수석의 창문을 내리고 차에 타라고 이야기했다. 걸어가는 내 속도에 맞춰 느린 속도로 운전했다. 타라고 하고 괜찮다고 하는 대화가 반복되었다. 왜 이렇게까지 차에 타라고 하는지 순간 짜증도 나고 무섭기도 했다.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안 탄다고!" 소리를 빽 질렀다. 잠깐 멈칫했던 아저씨는 창문을 닫고 출발했고 나는 그대로 계속 걸어 역에 도착했다.


학교 가는 아침마다 그 아저씨와 마주치게 될까 다시 불편했다. 한동안 마주치지 않던 아저씨를 한참 후 다시 만났을 때, 그날 왜 그렇게 화를 냈냐고 내게 물었다.


‘아저씨가 차에서 나에게 나쁜 짓을 할까 봐 그 차에 타기 싫었어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진심 대신 “그날은 아침에 엄마와 싸와서 제가 기분이 별로였어요”라고 말하며 화를 잘 내는 중학생으로 남는 선택을 했다.  


상대가 듣고 기분 좋을 대답이 아니고 혼자만의 오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오해를 푼다고 해도 나쁜 일이 없을 거라는 믿음은 생기지 않는다.


너는 왜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 질문에 대답을 하려면 또 다른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친구와 함께 피아노 학원 오전 반에 다녀오는 골목에서 낯선 아저씨를 마주쳤다. 그 아저씨는 우리 앞을 막아섰고 내 친구의 발목을 움켜쥐고 뽀뽀를 했다. 뽀뽀는 내가 알던 것과 달랐다. 너무 놀라고 무서웠던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 아저씨는 친구의 팔목을 놓아주고 대신 나의 팔목을 힘껏 잡았다. 나도 그 이상한 뽀뽀를 받았다. 아저씨가 손을 놓아준 후에야 집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그 일이 겪은 후부터 그 아저씨를 다시 마주칠까 굉장히 무서웠다. 그 공포를 이사 갈 때까지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아저씨가 이상한 뽀뽀, 그러니까 키스만 한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한 일이 있었다면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일 거다.




어쩌면 그 아저씨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20분 걸어가는 대신 편하게 차에 태워주겠다는데 왜 저렇게 사양하는 걸까. 내가 기억하기 싫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기억까지 꺼내서 구구절절 설명했다면 나는 친절한 이웃으로 계속 남을 수 있었을까?


나는 아직도 중학교 2학년의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능숙하게 대처할 방법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이제 확실히 안다. 싫다고 말한 뒤에도 계속된 권유는 더 이상 호의가 아니다.


이해까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선 넘지 않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다.






작가의 이전글 하고잡이 모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