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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Dec 24. 2018

지달리다

서울처녀 마산댁 되다


2016년 34살이 된 나에게 처음의 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결혼,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 출렁이는 하나의 물결을 넘고 숨을 고르기도 전에 또 다른 처음들이 몰려와서 내 모든 체력을 소진했다.  


아기가 태어나 행복했지만 내 정신은 온전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어떤 지인은 딸에게 동생을 낳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그 지인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둘째를 낳아 키워본 사람만이 그런 말을 꺼내도 되는 거라고. 친정엄마는 한 술 더 떠서 셋째를 낳아야 나의 가정이 더 행복하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진다고 점쟁이가 그랬다고 했다. 엄마에게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엄마도 낳지 않은 셋째를 왜 나한테는 낳아서 키우라고 하느냐고. 둘째는 없을 거라고 다짐 같기도 하고 결심 같기도 한 선언을 남편에게 반복해서 했다. 그런데  17년 7월에 생각지도 못하게 다시 임신이 되었다.




내게 사람은 언제나 책을 남겼다. 친구가 좋아했던 책, 헤어진 연인이 약속 장소에서 나를 기다리며 읽던 책, 믿고 따르던 사람이 추천했던 책.

책과 함께 그 사람이 내 기억에 오래 남아있었다.


작년 여름에 잠깐 내게 찾아왔던 아기를 가능하면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우울한 마음에 서점에 갔다가 제목만 보고 골랐던 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책장에 꽂아두고 읽지 못하다가 일 년이 지난 올해 여름에서야 읽을 수 있었다.





아빠에게도 더 이상 너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책장에 있는 이 책을 볼 때면 늘 네 생각이 날 거야. 내 느낌에 넌 아들이었는데...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네가 내 아들로 태어나 건축가로 성장하고 나는 호호 할머니가 되어 있는 상상을 해봤어.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참 따뜻해지고 행복했어.


엄마가 그때는 첫째를 출산한지 7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서 네가 찾아왔을 때 당황스럽고 우울했었어. 그래서 널 건강하게 지키지 못한 것 같아서 아직도 너무 미안해. 이제 엄마는 네가 다시 찾아오면 온전히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준비가 끝났는데 다시 와주지 않을래? 마음이 풀리지 않아서 다시 와주지 않아도 엄마는 너를 잊지 않을게.

그리고...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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