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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Dec 25. 2018

이사하니 좋나?

서울처녀 마산댁 되다


1박2일에 걸친 장거리 이사를 하고 잘 지내고 있는지, 이곳에서의 생활은 어떤지 서울 친구들도 물어보고 마산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도 물어본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함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인 순간부터 나는 단점보다 장점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서울이 아닌 마산에서의 생활에서도 그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며칠 전 용재오닐-꼬니니꼬 크리스마스 더 클래식 공연에 다녀왔다. 용재 오닐을 알게 된 건 2008년  무렵이었다. 용기와 재능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한국계 비올리스트. 꼭 한번 공연장에 가서 연주를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야지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는 못했는데 결국 마산에서 ‘Les Larmes de Jacqueline (자클린의 눈물)’을 들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라면 기회가 많으니까 다음에 하자고 미루던 일들을 마산에서는 기회가 생기면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꼭 붙잡게 되었다. 마산은 나를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마산은 여러 면에서 불모지다. 집 근처에는 맛있는 식당도 없고 가고 싶은 카페도 별로 없다. 글쓰기 수업이 듣고 싶었는데 마창(마산과 창원)에서는 클래스를 찾기 힘들다.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욕구가 더 강해진다.


사실 용재 오닐의 공연도 그랬다. 딸이 구내염에 걸린 상황에서 공연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치 않아 티켓도 미리 구매하지 못했다. 딸이 아프지 않았다면 시부모님께 몇 시간 육아를 부탁드리고 남편과 함께 공연장에 가려 했지만, 결국은 남편이 아픈 딸을 간호하고 나 혼자 공연장에 다녀올 수 있게 배려해줬다. 공연장에 정말 가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남편도 모른척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공연일자도 공연시간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딱 하루, 딱 한 타임의 공연. 내겐 선택지가 하나뿐이었다. 이렇게 심플할 수가.


경남도립미술관에선 여유롭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단 돈 천 원으로. 새로운 전시가 자주 있는 편도 아니라 마음이 바쁘지도 않다. 한번 봤지만 좋으면 다시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형님댁이 놀러 오신 적이 있다. 우리 사이에 빈손으로 오셔도 되는데 감사하게도 조말론의 바디워시를 선물로 들고 오셨다. 향을 교환해야겠다며 기쁜 마음으로 마창에 있는 백화점 입점 브랜드를 검색했다. 3개나 있는 백화점 어느 곳에도 조말론은 없었다. 견물생심이라고 나는 물건을 직접 봐야만 사고 싶어지는 편이라, 마산에서의 생활은 내게 미니멀라이프를 안겨줬다.


이렇게 써 놓고 살 건 다 사고 있긴 하다. 얼마 전에 조말론도 백화점에 입점했다.


앞에서도 말했듯 맛집도 별로 없고 가고 싶은 카페도 별로 없다 보니,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나는 그곳의 단골이 되었다. 서울에서는 사실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맛집도 많아서 딱히 단골집이 없었는데 단골집이 생기다 보니 장점도 있다. 뜨내기손님 일 땐 받지 못했던 서비스가 있다.

아직 마음에 드는 헤어샵은 찾지 못했다.


겨우 찾은 5주간 글쓰기 수업을 듣고, 어렵게 찾은 독서모임을 이어가며 지인들이 생겼는데 마창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면 그 지인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래서 뭔가 마창의 인싸가 된 것 같은 혼자만의 착각으로 흐뭇한 날도 있다.


마창은 공업도시라 바다가 부산과 같은 느낌은 아니라 아쉽지만, 1시간만 달리면 부산도 갈 수 있고 밀양도 갈 수 있다. 굳이 캠핑을 하지 않아도 자연과 가까워진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 마산에 내려오기로 결정되고 면허만 있고 운전을 못했는데 운전연수를 받고 운전도 하게 되었다. 가끔 좁은 주차장에서 빠져나가려면 식은땀이 나고 남편이 너무 보고 싶어지지만, 마산, 창원 그리고 진해까지 어디든 혼자 운전해서 갈 수 있다. 아직 부산은 운전해서 갈 수 없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마산에 1년 가까이 살면서 찾은 장점이다. 앞으로 더 찾으면 후속 글을 남겨보겠다. 기다리는 사람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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