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은 Dec 29. 2018

운동할 게 천지빼까리

서울처녀 마산댁 되다


오늘 오전엔 가야지 생각만 하던 목간에 다녀왔다. 다녀오면 이렇게 개운하고 좋은데 왜 그렇게 가기 귀찮은지 모르겠다. 때를 미는 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겐 시작은 힘들지만 막상 끝내고 나면 좋은 일들이 많다. 읽고 싶어 사둔 책은 많지만 새 책을 집어 들고 책의 중반까지 읽는 일은 너무 힘들다. 여러 등장인물의 이름에 익숙해져야 하고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책의 중간까지만 힘들게 읽고 나면 그 뒤부터 끝까지는 술술 읽힌다. 뭐니 뭐니 해도 하기 싫지만 하고 나면 뿌듯한 일 중에 끝판왕은 운동이 아닐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 때 어느 날이었다. 보통은 엄마가 옷을 사주셨는데 그날은 아빠가 옷을 사주신다고 남동생과 나를 대형 마트로 데려가셨다. 동생은 뭘 입어도 태가 났다. 반면 나는 탈의실에서 스키니 청바지를 입고 나왔는데 뭔지 모르게 이상했다. 그런 나를 본 아빠는 한동안 말이 없으시다가 "다리가 이상하다"라는 한마디만 하셨다. 그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탈의실로 들어가 입고 왔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날 동생만 청바지를 사고 나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새 옷을 산다고 들뜬 마음으로 외출했던 나는 기분이 상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봐도 내 다리는 이상했는데 왜 그때 아빠의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알게 된 건 성인이 된 후였다. 친구와의 대화를 나누다가 알게 되었다.


친구는 호르몬의 문제로 사춘기 때부터 종아리와 허벅지에 남자처럼 털이 많았다고 했다. 본인은 그걸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엄마가 피부과에 데려가 그 당시 비싼 돈을 주고 제모를 해주셨다고 했다.


대형 마트에서의 나는 스스로도 알고 있는 이상한 다리를 아빠를 통해 또 한 번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아빠가 내 다리를 이상하지 않게 만들어줄 방법을 고민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부모의 바른 자세였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몸의 통증을 느끼고 나서야 내 자세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 다리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고 자세를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녔다. 카이로프랙틱과 롤핑이라는 근육 마시지도 받아보았고 정형외과에 가서 진료를 보고 도수치료와 운동치료도 받았다. 이런저런 치료를 받아보고 운동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요즘은 딸을 어린이집에 보낼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나도 운동 갈 준비를 한다. 등원을 시키고 바로 9시 30분 1:2 필라테스 수업에 참석한다. 화요일, 목요일은 그렇게 운동을 한다.


운동 시간을 상담할 때 너무 이른 시간이라 등록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그런 나에게 강사님은 집에서 나온 김에 운동하러 와야지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려면 안 나오게 된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옳았다. 특별한 일 외에 빠짐없이 운동한지 5개월이 되었고 몸의 변화도 차츰 느껴진다.


가끔 수업에 혼자 참석한 날이면 운동 강도가 높아서 운동 후에 집에 와서 딸 하원 전까지 끙끙 앓으며 낮잠을 자기도 한다. 살살해달라고 말씀드리면 강사님은 지금 내 몸은 운동할 게 천지빼까리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이렇게 힘들고 아파서 곡소리가 나는데 왜 계속 재등록하냐고 놀리신다. 통증을 없애려 고통의 시간을 견디는 중이라고 할까?


가끔은 '그냥 생긴 대로 이대로 살아'라는 유혹이 있지만 지금보다 바른 자세를 갖고 통증을 없애려 운동을 쉬지 않는 게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바른 자세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이사하니 좋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