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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Dec 14. 2018

하고잡이 모리나?

서울처녀 마산댁 되다


마산에 내려와 처음 듣는 말들이 있다. 독서모임에서 한 분이 어떤 책의 작가를 <하고잡이>라고 소개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 검색해보니 [뭐든 하고 싶어 하고 일을 만들어 하는 일 욕심 많은 사람. 영어로 ‘워커홀릭’, 한자말로 ‘일 중독자’를 갈음할 우리말.]이라고 했다.


낯선 단어라 그런지, 그 의미 때문인지 한동안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몇 달 뒤 독서모임에서 이번에는 내가 하고잡이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이 나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올해 3월부터 12주간 문화센터에서 꽃꽂이 수업을 수강했고 두 달간 공방에서 접시와 컵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 일러스트 클래스를 다닌다. 그 중간중간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일주일에 2번 필라테스를 배우러 간다.  


새로운 것을 배우러 다니는 걸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시작한다. 그렇지만 일 욕심이 많거나 워커홀릭은 전혀 아니다. 부끄럽지만 한때 내 꿈은 유한마담이었으니까.
 



내가 나를 소개할 기회가 생긴다면 ‘다양한 관심을 가진 사람-다능인’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내가 다능인으로 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곧이어 출산, 육아를 하게 되었고 남편의 일 때문에 지방으로 이사를 했다. 이런저런 변화에 적응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경단녀가 되어있었다. 막상 경단녀가 되어보니 결혼 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편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까지 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좋아하는 일 주변을 기웃거리며 내가 그 일을 생업으로 잘 할 수 있을지 가늠하고 있다.
 
그런 내게 주변에서는 쇼핑몰을 운영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추천했다. 운영을 잘한다면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잘 할 자신도 없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만족감도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흥미를 느꼈던 일을 배우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된다. 좋아하지만 내게 재능은 없다는 걸. 더 잘하고 싶은데 생각처럼 되지 않으면 괴롭다. 하고 싶은 마음보다 괴로움이 커지면 그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직업으로 삼지 않고 계속 좋아하는 취미로 남기게 된다.  

그런 과정을 여러 번 경험하며 시작은 잘하는데 왜 끝을 보지 못하는 건지 자책하는 시간도 있었다.


글을 쓰는 일 만큼은 계속하고 싶었다. 친구를 만나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왜 재능 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 건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했다. 글쓰기에도 역시나 재능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계속 써보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자 친구는 내게 “계속하고 싶은 마음도 재능이야. 너에게 글 쓰는 재능이 있다는 거야”라며 위로해 줬다. 그 위로가 진짜라고 믿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꾸준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비난이 두려워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계속 붙잡고 있기엔 나의 시간과 체력이 충분하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일단 시작해보고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확실해지면 멈추는 일도 미루지 않으려 한다.
 
살면서 엄마/아내/딸/며느리/친구 상황에 따라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다양하듯 나의 직업에도 슬래시를 사용해 보고 싶다.
 
주부/작가/일러스트
 
앞으로도 추가했다가 삭제하는 경우도 물론 있을 것 같다. 플로리스트, 성우처럼.
 
지금 내가 가진 직업 중에 주부만이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이 가능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다른 직업에서도 만족할 만한 수입이 생길 거라 믿고 있다.

제발.
 
평균 수명 100세 시대 살면서 나의 직업에 얼마나 많은 슬래시를 추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는 되기 힘들겠지만
나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길지 않은 인생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다능인은 <모든 것이 되는 법, 에밀리 와프닉>을 참고했습니다.


공방에서 만든, 브런치트레이와 소스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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