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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Apr 19. 2022

알쓰의 삶


먹지 않아도 삶을 유지하는데 하등의 상관이 없는 커피를 나는 사랑한다. 40이 된 지금까지 담배는 한 번도 피워본 적 없고 술은 싫어한다. 일명 알쓰 한잔만 술을 마셔도 취기가 오르는 알코올 쓰레기이다. 열대야가 지속되는 밤이면 차가운 맥주가 생각날 때도 있다. 과거의 기억이 미화되는 건 헤어진 옛 연인과의 추억만이 아니다. 더위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에 떠올려보는 과거 맥주의 맛은 시원하고 구수했다.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꺼내 두 모금을 마시는 순간 고민이 시작된다. 이미 뜯은 캔맥주를 버릴까 아까운데 조금만 더 마실까? 누군가는 술 못하고 비흡연자인 나에게 살면서 찾을 수 있는 재미 중에 몇을 잃었다고 한다. 20살,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던 대학시절 동아리 모임이 끝난 뒤 술자리에서 내 옆에 앉은 동기는 자신의 따귀를 때려달라고 했다. 당황한 나는 와 때려야 하는지 물었다. 술을 더 마시고 싶은데 잠이 온다는 이유였다. 도대체 술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이 무엇이기에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걸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세계였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는 취한 사람들의 도돌이표 같은 대화가 지겨웠다. 동아리 전체 MT에서 술에 취한 선배와 동기들은 나무로 만든 평상에 올라가 흥에 겨워 몸을 흔들어 재꼈고 평상은 버티지 못하고 다리가 부러졌다. 부러진 평상을 수습하는 일은 술이 깰 내일로 미룰 수 있었지만 숙소에서 술을 마시다 앉은자리에서 먹을 걸 다 게워낸 일행의 뒤처리를 하는 건 정신이 말짱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인사불성이 된 그들은 즐거워 보였고 술을 마시지 않은 나는 수습을 하며 괴로웠다.


아이들을 재우고 육퇴 후에 찾아오는 황금 같은 자유시간. 궁금한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치킨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소화기간이 좋지 않아서 잘 체했고 특히 기름에 튀긴 음식은 소화를 잘 시키기 못했다. 남들이 육퇴 후 치맥을 할 때 나는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을 배달시킨다. 과일 토핑을 추가해서 배달료까지 붙으면 치킨값과 별 차이가 없다. 토요일 밤 10시였다. 아이들은 잠들었고 남편과 아이스크림이나 먹어볼까 배달앱을 켰는데 친정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이들이 태어난 뒤로는 아빠와 음성통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주로 영상통화를 하며 아이들 얼굴을 보신다. 아이들이 잠든 이 시간에 전화라면......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구급대원이 아빠의 통화목록에서 가장 최근에 통화한 사람인 나에게 전화를  것이었다. 충남 공주의  초등학교에서 만취한 아빠가 넘어졌고,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고 했다. 피의 양의 봤을  병원에 가서 처치가 필요한 상태라고 했다.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엄마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허리 수술을 앞두고 서울의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전화를 받고 있는 나는 마산에 살고 남동생은 창원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게다가 남동생의 차는 현재 엄마가 가지고 있었다. 마산에서 공주까지 네비를 찍어보니 최소 3시간이 걸렸다. 일단 출발해야 했다. 서둘러 외투를 입고 외출 준비를 했다. 남편은 운전 경력이 짧은 나의 밤길 운전이 걱정된다며 본인이 가겠다고 했다.  취한 아빠의 주정을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남편이 남동생을 태워 가게 되었다.


공주에 도착하기 전 구급대원과 병원에서의 걸려오는 전화로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나는 술 취한 환자를 보호자 없이 받아준 병원이 고마울 따름인데 만취한 아빠는 의료진에게 주정을 하고 있었다. 상처가 깊어 찢어진 이마를 꼬매야 하는데 꿰매지 않겠다며 진상 환자로 변해있었다. 심지어 욕도 한 것 같다. 행패는 아빠가 부리고 부끄러움과 죄송한 마음은 나의 몫. 아이들은 잠든 집을 지키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죄송하다는 거듭되는 사과뿐이었다. 남편과 남동생이 도착할 때까지 제발 병원에서 쫓겨나면 안 되는데.….. 보호자가 병원에 도착했지만 아빠는 결국 이마를 꿰매지 않고 퇴원했다. 남편은 동생과 아빠를 집에 태워다 드리고 다시 3시간이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남편이 도착할 때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몇 시간 눈을 붙이고 나면 아이들이 우리를 깨울 테고  다시 육아 출근이 시작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동생과 둘이 대화할 때 알게 되었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동생과 남편도 계속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아빠는 동생에게 올 필요 없다고 돌아가라는 말은 반복하며 전화를 끊으면 또 전화를 걸어왔다. 동생은 아빠의 주정에 짜증을 참을 수 없었는데 매형은 그 상황에서도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답을 했다며 놀라워했다. 술이 깬 뒤 다시 순한 양으로 변신한 아빠는 동생과 다음 날  병원으로 갔다. 이마를 꿰매 줄 의사를 기다렸지만 의사는 오지 않았다. 일요일이니까 의사도 쉬는 날이겠지. 혹시 새벽에 진상을 부린 환자를 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상황이 종료된 뒤에야 병원에 있는 엄마에게 소식을 전했다. 아내의 수술을 앞둔 아빠가 걱정되는 마음에 술을 마셨을 거라면서 엄마는 너무 화내지 말라고 나를 달랬다. 엄마의 수술을 앞두고 나도 동생도 걱정이 없는 건 아닐 거다. 술을 마시며 잠시 걱정을 잊고 싶은 아빠를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술을 마신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덧붙이자면 술 취한 아빠의 보호자가 되지 위해 공주에 다녀온 남동생은 일요일 밤 급하게 병원에 입원했다. 두통이 계속되어서 병원에서 MRI 검사를 받았는데 혈전이 발견되게 급하게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오는 대로 입원했다. 동생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혈관을 가지고 술 취한 아빠의 보호자가 되었던 것이다.


어릴  아빠는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날이면  나와 동생을 깨웠다. 잠에서  우리를 세워놓고는 쓸데없이 차렷 열중쉬어를 시켰다. 술에 취한 아빠는 기분이 좋다가도 금세 기분이 나빠져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했다.    상황이 반복되고 내가 커가면서 나는 아빠가  마시고 오는 날이면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만취한 아빠가 나를 깨워 눈을 뜨지 않았다. 아빠가 나를 흔들어 우면 업어가도 모르게 잠든 연기를 했다. 아무리 깨워봐라 내가 일어나나.  풀에 지친 아빠는 대신 동생을 깨웠고 나는 아빠의 차렷 열중쉬어 구령에 맞춰 동생이 기민하게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술도 싫었지만 술이 취한 상태에서 하게 되는 행동들이 싫었다. 나도  번은 내일의 나를 생각하지 않고 술로  몸을 가득 채운 적이 있다. 술에 취해 모든 걱정을 잊고 정신적 해방을 맛보기 전에 두통과 속의 부대낌이 먼저 찾아왔다. 그 후로  독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후보에서 제외했다. 저녁으로 삼겹살을 먹으면 소주를 주문하는 사람보다는 콜라를 주문하는 사람을 선택했다.


알쓰, 알코올 쓰레기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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