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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Nov 17. 2022

살아있다는 건 인내하는 거였어.

다섯 살 무렵에 양치를 하다가 헹굼물을 삼켜서 엄마에게 크게 혼난 기억이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아이가 그럴 수 있는 거지, 그런 사소한 일로 어른이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가 되면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를 해보니 내가 얼마나 자만했는지 알게 되었다. 네 살인 딸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 위해 준비하다 보면 인내심이 필요한 상황이 자주 찾아온다. 등원 시간은 임박했는데 아이는 TV를 더 보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먹기 싫다던 요구르트는 왜 양치를 끝내고 나면 먹고 싶어지는 걸까. 체육수업이 있는 날이라 체육복을 입어야 하는데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입겠다는 딸을 어르고 달랜다. 겨우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해서 카시트에 태우려다 딸이 바지에 쉬를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순간 28개월, 아직 세 돌이 지나지 않은 딸에게 37살의 나는 자제력을 잃고 화를 내고 있다. 등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오면 조금 전 나의 밑바닥을 마주한 상황에 실망하고 우울해진다. 화를 낸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닌데 아이에게 좀 더 부드러운 태도를 유지할 걸. 아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것도 맞고 엄마도 사람이라 화가 날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나만 아이에게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쯤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잘하게 되는 걸까? 궁금했다. 모든 관계는 상호적인데 정말 그랬을까? 아이도 친절하지 않은 엄마를, 화로 가득 찬 엄마를 견디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이는 짧은 시간에 배우고 연습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걸음마를 성공하고 나면 계단을 오를 수 있어야 한다. 기저귀 없이 대소변을 변기에서 처리하는 방법을 익히는 중에 부모는 아이에게 젓가락을 사용해보자고 권한다. 아이도 엄마의 도움 없이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 당연히 서툴다.


아이가 커가는 속도만큼 나를 낳고 키워준 부모님은 중년을 지나 노년기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아이에게 나의 손길이 필요한 만큼 부모님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겨하는 하는 일이 생긴다. 자식들이 떠난 빈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에 외로움을 느끼시게 되고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이 소홀해지면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신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혼자서 잘하던 일을 이제는 아이처럼 도움을 필요로 한다. 엄마가 나를 키울 때처럼 나는 인내심을 끌어올리며 엄마가 핸드폰을 바꾸며 문자로 받은 커피 기프티콘을 어떻게 본인인증을 하고 다운을 받으며 사용하는 건지 알려주고 다시 알려주고 반복한다. 엄마는 어린 나에게 별로 인내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화를 많이 냈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엄마에게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엄마의 카톡 프로필에 있는 문구 “어린아이 너무 나무라지 마라 내가 지나온 길이다 노인 너무 나무라지 마라 내가 가야 할 길이다.”라는 말은 진리였다. 딸인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둔 것 같다. 나 키울 때는 생각하지 않던 말을 손주가 태어나고 할머니가 된 뒤 대문에 걸어두다니 반칙 아닌가? 언젠가 내 아이도 나에게 인내할 날이 올 것이다.


우연히 세바시 강연을 듣게 되었다. <정조를 통해 새롭게 깨닫는 효>라는 제목의 15분 정도의 강연이었다. 공자의 <논어>에 그런 말이 나온다고 한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3년 동안은 부모가 생전에 뜻하셨던 길을 그대로 걷고 바꾸지 말아야 효도를 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세상의 모든 부모가 공자처럼  바른 길을 걷지는 않지. 그러니 부모의 살아생전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자식이 부드럽게 일러드려야 한다고 한다. 또 부모가 잘못을 고치지 않아도 공경스럽게 대해야 한다고 했단다. 돌직구를 날리면 안 되고 부드럽게 일러드리는 게 핵심이며 부모가 변하지 않아도 자식은 엇나가면 안 된다. 자식은 열심히 배워서 부모님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부모가 살아생전에 옳은 길을 걸으셔야 내가 부모님을 추념할 때 의미 있다고 했다. 지금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 효란다. 부모의 싫은 모습을 참고 참고 참다가 한순간에 화를 터뜨리며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끊으려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잘못된 행동은, 모든 행동은 단번에 고쳐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배울 때도 그렇다. 그러니 달라질 때까지 부드럽고 상냥하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육아에만 인내가 필요한 줄 알았는데 나이 든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역시 인내가 필요했던 거라니. 배움에도 끝이 없듯 인생에서 쓴 인내도 계속된다. 열매는 언제 맺나? 언제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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