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아빠와 시어머니의 환갑이 연달아 있는 해였다. 아빠의 환갑은 친정 식구들과 함께 가족여행이 가고 싶다는 나의 욕망에 좋은 명분이 되었다. 남편에게 아빠 환갑에 친정부모님과 가족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하며 시어머니 환갑에는 무얼 하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시아버지 환갑에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남편도 시부모님과 가족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그 해 여름 우리는 친정부모님과 나의 남동생 그리고 우리 세 가족까지 일곱이 제주로 떠났다. 극성수기에 숙소를 예약하고 비행기 티켓을 구하고 7인승 이상의 렌터카를 빌리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가격도 부담스러웠다. 렌터카 금액을 확인하고는 전날 백화점에서 샀던 여름 침구를 비닐도 뜯지 않은 상태로 다시 들고 가서 환불했다. 여행에 동행하는 남동생은 본인의 비행기 티켓을 끊으면서 극성수기라 티켓이 비싸다며 불만이 많았다. 여행을 내켜하지 않는 동생까지 돈 들여서 끌고 가야 하나 싶었지만 부모님의 마음은 가족 모두가 함께하길 바랬다.
비행기에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여행객들이 많이 보였다. 제주에 도착한 엄마는 둘러보니 거의 다 친정식구와 함께 하는 여행 갔다며 요즘엔 시부모와는 여행을 잘 가지 않고 주변의 친구들을 봐도 친정가족과 여행을 자주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 말속에는 함께 자주 여행을 다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섞여있었다. 삼대가 모인 여행은 좋은 순간과 힘든 순간이 교차했다. 제주에 도착한 3살 아이는 갑자기 고열이 나서 밤에 응급실에 다녀와야 했고 병원에 다녀와서도 쉽게 잠들지 못해서 할아버지가 밀어주는 유모차에 누워 제주 돌담 골목을 새벽까지 배회했다. 부모님과 아이가 모두 만족할 만한 관광지와 식당 메뉴를 정하는 일에 나는 예민해지기도 했지만 절물자연휴양림에 도착했을 땐 한여름에 이렇게 시원할 수 있나 싶었다. 흙과 나무 그리고 하늘이 어우러진 자연이 보여주는 색의 조합에 감탄했다. 한동안 눈앞의 광경에 취해 완벽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시부모님과의 여행은 함께 하지 못했다. 어머니도 서울에 살고 있는 형님네까지 9명의 가족이 모두 모여 함께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낼 수 없는 형님 가족을 빼고 환갑여행을 가는 게 마음에 걸리셨던 것 같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두 분이서 여행을 다녀오셨다.
다음 해 여름 나는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첫째 때도 태교 여행으로 제주를 다녀왔고 이번에도 똑같이 제주 여행을 왔다. 캠핑을 좋아하는 남편은 텐트를 치고 싶었지만 임신한 아내와 아이를 생각해서 카라반을 예약했다. 좁은 침대에서 나와 아이가 자고 남편은 화장실 옆의 2층 침대에서 자기로 했다. 아이를 씻기고 재우기 전 친정엄마가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아이가 태어난 뒤로 양가 부모님과 연락이 잦아졌다. 그렇다고 대화가 늘어난 건 아니다. 아직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손녀와 영상통화가 주가 되었다. 아이와 영상통화를 하던 중 엄마는 우리가 제주 여행 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자 엄마는 흥분했다. 갑자기 아빠와 함께 경기도에서 전남까지 차를 운전해서 이동한 뒤 배를 타고 제주로 오시겠다고 했다. 나는 다급하게 엄마를 말렸다. 숙소도 좁고 다음에 다시 함께하는 여행 일정을 잡아보자고 했다. 남편의 일 때문에 바쁜 와중에 겨우 시간을 내서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제주. 이번에도 친정부모님과 함께 하게 된다면 엄마는 자연스럽게 내년 여행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흔쾌히 ‘얼른 오세요’라고 말하지 않는 나에게 엄마는 서운한 감정을 목소리에 듬뿍 담았다. 엄마의 제안을 거절하고 전화를 끊고 난 뒤 후 내 마음은 무거워졌다. 차리라 영상통화를 하지 말걸 그랬나.
“낄끼빠빠”라는 말이 있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를 줄여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모임이나 대화 따위에 눈치껏 끼어들거나 빠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원가족에서 떨어져 나온 딸에게 이제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걸 엄마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장인어른, 장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은 사위에게 편하지만은 않다는 걸. 단풍 진 부석사에 가고 싶어서 여행 파트너를 간절하게 찾던 때가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잘 요구하지 못하는 성격의 나는 “나랑 부석사 가자”라고 말을 꺼낼 수 있는 친구가 얼마 없었다. 가까운 친구에게 이야기를 꺼냈다가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동행자가 여행 당일에 취소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그때 마지막으로 엄마에게도 제안했다. 둘이서 부석사에 다녀오자고. 엄마는 귀찮음을 가득 담아서 나에게 친구랑 가라고 했던 걸 기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