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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Aug 10. 2022

이 사람이 내 엄마다


엄마와 둘이 시간을 보낼 때면 엄마는 아빠와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4인석 테이블의 빈 의자에 아빠와 동생도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다.

“나준이 그러더라 아빠 부를 때 ‘너네 아빠’라고 하지 말라고”

엄마는 나의 어떤 반응을 기대하며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때로는 침묵도 어떤 대답이 된다. 나는 동생의 말에 격하게 동의한다. 나도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다. 동생이 나보다 낫다. 엄마가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을 꺼낼 수 있다니. 엄마는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이다. 엄마는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아빠를 남처럼 불렀다. 마치 당신과는 상관없는 사람처럼. 그저 우리들의 아빠인 것처럼. 한 때 서로가 좋아서 죽고 못 살아 연애결혼했으면서. 지금도 헤어질 마음이 없으면서.


엄마는 내가 엄마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이야기하곤 한다. 아빠를 빼닮았다고. 인정머리 없는 것도 아빠를 닮았고, 융통성이 없는 것도 아빠를 닮았다고 한다. 내가 아빠를 닮았다고 할수록 나는 아빠 편에 서고 싶다. 나도 엄마의 단점을 하나씩 꺼내 들고 아빠를 대신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어 진다. 엄마의 싸움의 대상이 아빠에서 나로 바뀐다. 엄마에게 자식이 둘이듯, 나에게도 부모가 두 명이라는 사실을 엄마는 종종 잊는 걸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하는 데 그건 자식에게만 적용되는 속담이 아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를 생각할 때도 그렇다. 엄마 말처럼 아빠만 일방적으로 못된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내 세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아빠를 저버릴 수 없다. 오히려 아픈 손가락에 더 마음이 쓰이고 챙기게 되겠지.  


전기감리 일을 하는 아빠는 연세가 많아지며 더 이상 서울의 일자리를 고집할 수 없었다. 10년 전부터 건설현장을 따라 이사를 하셨다. 칠곡에서 주중에 일을 하며 원룸에 머무르고 공주에서 전세를 얹어 살고 그러다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새로운 건설현장을 찾았다. 2주 전 주말에 손주들을 보기 위해 마산에 오신 아빠는 갑작스럽게 해외 건설현장에 나갈까 생각 중이라고 하셨다. “앙골라” 그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동남아 어디인가 생각하다 검색을 해보니 아프리카였다. 환갑을 지나 고희로 달려가고 있는 아빠가 아프리카까지 가셔야 하는 건지 내키지 않았다. 대구 현장과 르완다 중에 고민 중이라는 아빠는 내 생각을 물었다. 나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대구였다. 아빠는 덧붙였다. 앙골라로 가면 급여를 두 배로 받게 된다고. 갈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가서 돈을 좀 더 버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그 순간 느껴졌다. 지금 아빠에겐 두려운 건 아프리카 내전도, 낯선 환경도 아니었다. 돈 없이 보내는 노후였다. 그 두려움은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로 느껴졌다.


로또 1등이 되지 않으면 죽는 길 밖에 없을 것 같던 시기를 어찌어찌 잘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또 나는 로또 1등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로또 1등 당첨금 없이 가족 모두 어려운 시간을 걸어온 과거의 경험을 통해 안다. 이번에도 아주 조금씩 더디게 상황은 나아질 것이다. 아빠의 말처럼 르완다에서 1년을 보내고 나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나의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며 아빠의 건강을 바라는 일이다.


대구와 르완다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아빠 옆에서 엄마는 대구로 가기 싫다면서 아이처럼 징징거렸다. 아빠가 대구보다는 르완다로 가길 바라는 엄마가 싫다. 엄마는 아빠가 없는 틈에 나에게 말한다.

"르완다로 가게 되면 머무르는 숙소 밖으로 돌아다닐 수도 없데. 밖에서 딴짓거리도 못하고 더 좋아"

아빠가 좋아하는 탁구를 지금처럼 칠 수도 없고, 가벼운 산책도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일 아빠.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김치찌개를 먹을 수 없게 된 타인의 불편한 생활을 공공연하게 당신은 더 좋다고, 잘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그런 사람이 내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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