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살, 장래 희망은 스스로 정할게요.

by 이나은

나는 사람들과 만나 함께하는 시간보다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이 친구 엄마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게 더 편했다. 그건 엄마인 나만의 생각이었고 세 살이던 아이는 나와 달랐다. 아이는 하원 후에도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혼자서 킥보드를 타는 것보단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모래놀이하고 싶어 했다. 아이를 위해 엄마들의 모임에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친구들과 친구의 엄마들은 다행히 우리 모녀를 기꺼이 받아주었다. 하원 후 함께 키즈카페에 가거나 아파트 공용공간에 모여 젤리나 초콜릿 같은 간식을 함께 나눠 먹으며 아이들은 엄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함께 놀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이제 열 살이 되었고 더 이상 하교 후에 함께 모여 놀지는 않는다. 하지만 엄마들은 분기마다 한 번쯤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육아 해방’의 시간을 갖는다. 약속이 있는 날이면 남편이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집 밖으로 나선다. 가장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다른 엄마들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오랜만에 6명의 엄마 모두가 모이는 날이었다. 다수의 의견에 따라 양꼬치 식당에 모였다. 아이들의 근황 이야기가 이어진다. 학원은 어디가 좋더라. 한국사 학원에 보내야 한다. 학교 방과후 수업 중에 컴퓨터 수업이 가성비가 좋다는 유용한 정보를 얻는다. 나는 양꼬치를 입에 넣으며 네이버에서 한국사 학원을 검색하고, 그 화면을 캡처해 둔다.

아이와 남편, 시댁 이야기가 끝나고 난 후에야 우리는 조심스럽게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얼마 전 출간한 나의 전자책 이야기도 등장했다. 엄마들은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바쁜 상황에서도 감사하게 책을 구매하고 귀한 시간을 내어 읽어주었다. 카톡으로도 후기를 들었지만, 오프라인에서 만나니 온라인에서는 하지 않았던 감상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만나서 얼굴 보며 나누게 되는 이야기. 그래서 나 같은 내성적인 사람도 집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에세이 말고 그림책을 써보는 건 어때? 그게 더 돈도 많이 버는 거 아니야?”

물론 사람들을 만나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을 순 없다. 에세이를 통과해 소설로 나아가고 싶다는 사람에게 그거 말고 그림책을 써보라고 하는 사람은 왜 그러는 걸까? 글쓰기가 다 같이 보이지만 써보면 알게 된다. 나와 결이 맞는 글쓰기 장르가 무엇인지. 중요한 건 지금의 나는 그림책을 쓸 의지가 없다. ‘올해 만 42살. 장래 희망은 스스로 정할게요.’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타인의 말에 쉽게 물들고 싶지 않은 소중한 생각은, 뿌리가 튼튼해질 때까지 밖으로 꺼내지 않기로 한다. 내 안에 꼭꼭 숨겨두어야겠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툭 터넣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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