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작가라는 부캐를 갖게 된 이유
2020년 12월 24일 약 5년 만에 드디어 내 첫 책이 세상에 나왔다. 꽤 그럴듯한 표지와 이름을 가지고 나에게만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말이다.
100쪽 남짓한 중편소설에 이렇다 할만한 프롤로그는 필요치 않아 생략하고, 대신에 알리고 싶었던 부가설명과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서 에필로그에 간략히 써넣었다.
독립출판이었고 100권도 채 팔리지 않은 책이다 보니 당연히 99퍼센트도 아닌 정말 100퍼센트에 가까운 사람들이 에필로그를 아니 내 책을 더 나아가 나에 대한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브런치 글을 통해 내가 책을 쓰는 작가가 되기로 한 이유를 조금 풀어볼까 한다.
때는 책이 출판되기 5년 6개월 전쯤으로 돌아간다.
2015년 대학을 졸업하고 1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취준생이자 백수인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카페로가 59번째쯤 되는 회사에 자기소개서를 써서 복사해 넣었고 다음 지원 공고를 뒤적여보다가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왔다.
텅 빈 집은 참으로 고요했다.
동생들은 고등학생이라 아침에 나가 저녁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부모님 역시 자영업을 하시느라 아침에 집을 나서 늦은 저녁이 돼서야 돌아오셨다. 아무도 없는 집에 널따란 침대 정 가운데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전 10시까지 늦잠을 잤기때문에 잠은 오지 않았고 나에게 망상의 시간은 무한대처럼 주어졌다.
누군가 인간이 가장 철학적이게 되는 시간이 화장실에 있을 때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간이라 했던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가장 창의적이고도 가장 쓸데없는 사유가 온 정신을 지배하게 둘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통적 순간이 있다. 나한테는 그게 낮시간 침대였다. 남들이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며 바쁘게 보내고 있을 때 비생산적임의 끝에 서있는 게 나 자신 같았기 때문이다.
비록 말도 안 되는 이유일지라도 모든 인간은 태어난 이유가 있다는데 신은 나에게 그 이유를 깜빡하고 못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산타가 전 세계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면서 한 두 박스 정도는 비어있을 테니 그게 나일 수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에겐 인생의 목표 같은게 없었다.
우선 나의 막연한 꿈은 부모님에 의해 두 번이나 좌절되었었다. 고1 때는 호텔리어가, 고2 때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 부모님의 반대로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정확한 목표 없이 일단 어느 정도는 하고 보자라는 마음으로 했던 수능 공부는 꽤 괜찮은 결과를 냈다. 일단 대학은 점수를 맞춰서 부모님이 원하는 국립대로 진학했다. 전공은 하기 싫은 거 빼고 할 만하겠다 싶은걸 골라서 선택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꿈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학교생활, 학업에만 충실했다. 스펙에 도움 될만한 토익, 자격증, 교환학생, 인턴 그리고 대외활동까지 모든 걸 섭렵했다. 덕분에 내 이지미는 쭉 모범생이었다. 성적도 꽤 좋아서 과탑을 했던 적도 있었다.
부모님과 교수님은 내 미래에 기대를 걸었고 친구들도 내가 가진 표면적인 것들을 부러워했다. 내 노력으로 얻은 것들에 대해서는 뿌듯했지만 목표가 없는 내게 그것들은 그저 허울 좋은 간판에 불과했다.
졸업하고 1년이 지났지만 내겐 부스터가 되어줄 목표가 없었다. 정말 쉼 없이 열심히 살아오긴 했는데 방향키를 설정하지 않고 달리기만 해서 그런지 졸업과 동시에 멈춰졌을 땐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전혀 모른 채로 손을 놓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라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게 생기지 않을까? 했지만 꿈이란것른 저절로 찾아오는 손님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에게 의구심이 마구 솟아났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진짜 잘하는게 맞는지,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진심으로 좋아한 게 맞는지 그리고 내 성격이라고 생각해왔던 부분이 사실은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들은 아닌지 또 나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도, 또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또 대한민국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다.
명확한 해답이 없는 생각의 구렁텅이는 정신건강에 아주 해롭다는 것을 경험으로서 증명해내고 말았다.
뇌에 사용 가능 용량이라는 게 있다면 그 여유공간이 단 1도 남지 않아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하루가 다르게우울해져 갔다. 스트레스와 우울감은 해소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했지만 돈이 들어가는 운동이나 여행과 같은 취미를 감히 가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곱씹는 일련의 제련과정을 거쳐 나오게 되는 글을 통해 지쳐 타버릴 것 같은 머릿속과 마음을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책의 내용이 공감받고 또 위로를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뭔가 대단할 것 같지만 사실상 별거 없는 이유로 시작된 두들김이 한 권의 책을 쓰이게 했다.
그리고 짐작보다 꽤 많이 자주 나를 번거롭게 했고,
더 나아지기 위한 채찍이 되기도 했다.
사소한 계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결과로 귀결되는그런 알 수 없는게 인생의 묘미인가 보다.
그런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