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단 한 번도 부모님께 내색한 적은 없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이 정말 싫었다. 도대체 결혼을 왜 했을까 싶을 정도로 뭐 하나 맞는 게 없는 엄마와 아빠는 숨 쉬듯이 싸워댔다. 이유 없는 싸움이 어디 있겠냐마는 어린 내가 그 사정을 헤아려 중재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짜증 섞인 엄마의 목소리가 집을 채우기 시작하면 최대한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내가 너희 아빠랑 더는 못 살겠다 싶어서 이혼하려다가도 너희 때문에 참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지금도 엄마는 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한다. 나 때문에 이혼을 안 하고 참고 살았다니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이혼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와 엄마 아빠가 매일 싸우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 중에 어떤 아이가 더 불행할까? 부모가 행복하지 않은데 같이 사는 아이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겠다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가정을 해체하는 게 맞는 것이다. 왜 당신이 선택한 불행을 자식에게 책임 지우려고 하는 것일까? 70대가 된 지금까지도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엄마 아빠를 보면 차라리 가족이 없는 편이 낫겠다 싶다.
가족[家族] -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가족은 무조건 내 편이고 사랑, 행복 따위의 단어와 결을 같이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이 같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내 기준에서 가족이란 잘라내고 싶어도 핏줄로 엮여서 그러지 못하는 존재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 본 적은 없었다. 그 누구도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내 생각에 확신을 갖게 해 준 두 편의 영화가 있었는데,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었다. 이 영화 속에는 남보다 못한 가족도,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남도 존재했다. 어쩌면 이 영화 같은 이야기가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가족 해체론자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나는 가족에 대한 별다른 애정이 없다. 내 피를 다 뽑아내서라도 피를 나눈 가족과 연을 끊을 수 있다면 백번도 더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저 지금처럼 아내와 함께 우리 둘만 행복하면 그만이고 소중한 내 가족은 아내뿐이었다. 시골살이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시골살이하면서 얻게 된 생각지 못한 소소한 행복이 있었다. 택배 기사님 말고는 아무도 찾지 않는 한적한 시골집에 하루에도 서너 번씩 드나드는 녀석, 고양이었다. 이곳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길냥이가 살고 있었다. 동물이라면 두루두루 좋아하는 나와 고양이를 특히 좋아하는 아내는 자연스레 마당에 길냥이 밥을 주기 시작했고 어느새 우리 집 객식구들이 어림잡아 대여섯 마리 이상 되었다.
시골이 원래 다 그런 건지 우리 동네가 특이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집뿐만 아니라 앞집과 뒷집, 뒷집의 옆집, 옆집의 건넛집까지 길냥이 밥을 챙겨주는 집이 많다. 그러다 보니 같은 고양이라도 서로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우리 집 까망이가 옆집에서는 코쩜이로 불렸고, 옆집 야옹이는 우리 집 아지라엘이었다. 고양이가 많은데 이름이 두세 개이다 보니 가끔 이웃이랑 대화하다 보면 헷갈리기 일쑤였다. 그 녀석들은 어떤 이름이 입맛에 맞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마다 입맛에 맞는 밥집을 찾아 배를 채웠다.
우리 집에서 밥을 먹고 다니는 녀석 중에 사고로 뒷다리 하나를 잃은 암컷 냥이 한 마리 있었는데(우리 부부가 부르는 이름은 삼색이다) 이 녀석은 수시로 임신해서 새끼를 낳았다. 해마다 봄이 되면 길고양이 보호 협회의 도움을 받아서 대대적인 길냥이 중성화 수술을 하지만 도통 이 녀석은 예민해서 포획 틀에 잡히는 법이 없었다. 번번이 중성화에 실패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 동네 고양이 중 절반 정도는 삼색이 새끼인 걸로 추정된다.
작년 봄에도 어김없이 삼색이는 임신을 했고 새끼 네 마리를 낳았는데 언제부턴가 가장 작은 치즈냥이 한 마리를 떼 놓고 다니기 시작했다. 삼색이와 새끼 네 마리가 줄줄이 밥을 먹으러 왔다가도 치즈냥이만 떼어 놓고 사리지거나, 치즈냥이 혼자서 밥을 먹으러 오기도 했다. 아직 독립시킬 때는 안 되었는데 그러는 걸 보니 네 마리를 다 돌보기에 버거워 가장 약한 새끼를 버리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사실 삼색이는 재작년 가을에도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언제부턴가 가장 활동성이 떨어지는 새끼 한 마리를 떼어 놓고 다녔었다. 그리고 그 새끼는 겨울 어느 날 우리 집 마당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었다. 모두를 책임질 수 없으니 확실히 살릴 놈만 살리겠다는 본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 새끼이고 가족인데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삼색이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혼자 돌아다니는 치즈냥이가 더욱 눈에 밟혔다.
한 번은 외출하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밥을 먹던 치즈냥이가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차 밑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엎드려서 치즈냥이를 찾는데 도무지 이 조그만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차 밑에서 나오는 것은 못 봤는데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동을 걸기 전에 보닛을 열었더니 녀석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총총히 사라졌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차를 탈 때는 항상 차 밑과 보닛 안을 꼼꼼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며칠 뒤 외출 전 자동차 보닛을 열었는데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무리 안쪽을 살펴봐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플래시를 이리저리 비춰가며 한참을 살펴서 앞 범퍼 안쪽 공간 깊숙이 숨어 있는 치즈냥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를 두드려 봐도 간식으로 유혹해 봐도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씨름하다가 결국 기다란 막대기를 넣어 엉덩이를 톡톡 건드려서 겨우 내보낼 수 있었는데 혹시나 다른 차에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하지나 않을까 너무 걱정됐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아내와 집을 나서는데 앞집 아주머니가 차 보닛을 열고 무언가를 하고 계셨다. 혹시나 해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치즈냥이가 차 속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이번에도 녀석은 쉽게 나올 것 같지 않아 보였지만 병원 예약 시간 때문에 우리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진료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앞집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고양이가 나오지 않아 결국 길고양이 보호 협회에 연락했고 협회 분들이 와서 구조했다는 것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미처 들기도 전에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다시 방사하면 또 다른 차에 들어갈 수 있어서 제가 입양하지 않으면 협회로 데려간다는데, 한 달 동안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해야 한다네요. 어쩌죠?”
순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봄, 가을이 되면 협회에는 구조한 새끼 고양이를 입양해 줄 사람을 찾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하지만 입양되는 고양이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지금도 입양을 기다리는 새끼들이 줄을 섰는데 과연 저 녀석이 입양될까?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저 녀석을 안락사하게 둘 순 없다. 그렇다고 앞집에서 입양해 주길 바라는 것도 무리다. 앞집은 이미 고양이 한 마리와 개 두 마리가 있고 마당냥이 한 마리까지 있다. 아직 어린이집도 안 들어간 귀여운 딸내미도 하나 있으니 그야말로 대가족이다. 반면 우리 집은 아내와 나 둘이 전부다. 물론 내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지만 심하지는 않으니 약만 잘 먹으면 된다. 게다가 아내는 예전부터 고양이를 들이고 싶어 했다. 도시에 살 때는 아예 엄두를 내지 못했었고 이곳에 와서는 우리 집을 찾아주는 길냥이들이 있으니 그걸로 만족하고 굳이 알레르기가 있는 남편에게 고양이를 들이자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녀석을 살리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보였기에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우리가 입양하자.”
“정말? 자기 괜찮겠어?”
“괜찮아. 대신 육아는 나보다 자기가 많이 해야 할 거야.”
“그럼, 협회로 보내지 말라고 한다. 진짜 입양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보이면 반갑고 안 보이면 걱정되고, 행여 안락사당하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으니, 이 정도면 가족이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어쩌면 이 녀석도 우리와 가족이 되고 싶어서 죽어라 우리 차 속으로 들어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치즈냥이는 우리 집에 입성했고 아내는 ‘녹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결혼 후 줄곧 둘 뿐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줄만 알았던 우리 부부에게 갑작스럽지만 자연스럽게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