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에는 전문적인 세부 지식이나 정확한 용어면에서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나에겐 내가 쓰고 싶은 건 교과서가 아니라는 비겁한 핑계가 있다. 그렇다고 최신 소식, 중요한 학계 전망도 없다. 전망할 주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만에 하나 내가 누군가의 옆구리를 찔렀다면 내가 못하는 것을 손 안 대고 코을 푸는 것이니 좋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걸 또 쓴 거라고 해도 여기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손 들어서 힘을 실어주고 싶으니 그것도 좋다. 또 내 의견에 반대하는 누군가를 자극한다면 나보다 나은 다른 의견을 생산할 가능성이 올라가서 좋다. 그리고 내 글로 과학을 전부 이해하길 기대했다면 그건 내 탓이 아니다. 그건 사람 보는 눈이 없는 독자 탓이다. 그래서 난 무조건 승자다. 그러니 안 쓸 이유가 없다.
비영어권 학생들을 포함한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에게 교실문도 못 따는 어리바리한 초보 선생이 선생 노릇을 제대로 못 했던 것이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확률적으로 25명 남짓한 일반 생물학 교실에 생물학 관련한 직업울 가질 친구는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다 포함해서 5명도 안 된다. 한 명도 없을 수도 있다. 10명은 대체로 공부에 크게 관심 없어도 원하는 건 나름 명확하다. 나머지 10명은 그냥 상황 맞춰서 직업을 가질 확률이 많다. 이렇게 직업을 가상으로 하나씩 나열해 보면 DNA에서 타이민과 아데노신은 두 개의 수소 결합, 사이토신과 구아민은 세 개의 수소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을 기억하고 써먹을 것 같은 아이들은 소수다. 물론 그래도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세 개, 두 개를 열심히 외워서 보는 시험공부를 하느라 정작 아이들이 살며 생각하게 될 중요한 질문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없었지 않나 싶어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과학을 배우면서 졸업 논문을 제하고는 책을 읽으라거나 글을 써오라는 숙제는 한 번도 없었다. 교수님과 교육 과정을 탓할 수 없다. 쓰지 말라고, 읽지 말라고 말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써오라고 했으면 나는 불 보듯 투덜거렸을 거다. 심지어 졸업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험과 관련된 논문만 읽기도 빡빡하고, 실험에 치이고 그러다 어느 순간 졸업 논문 쓴다고 머리 싸매는데 책은 무슨. 좋은 거라 다들 몰래 숨어서 혼자 읽어서 나만 몰랐는지 몰라도 주변에서 책 읽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난 그저 몰랐을 뿐이다. 책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행인지 졸업장 덕분에 나는 과학 선생님이 됐다. 내가 가르치던 학교는 더 이상 교과서를 이용하지 않는다. 눈 뜨면 달라지는 과학계 속도를 교과서를 출판하는 속도가 못 쫓아가서인지 교사들이 회의를 통해 교과과정을 짜고 다양한 자료를 이용한다. 세부적인 예시, 세부 사항은 좀 달라도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에 대한 기본은 비슷하다.
과학 시간에 영어가 서툰 아이들이 기본 대화도 어려운데 생소한 과학 용어에 기죽어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될 때, GMO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도 아들 둘을 건강하게 잘 먹여 키워낸 직장 동료를 볼 때, 간호사였던 친구가 달걀 섭취 하나도 설명 못하는 과학을 얕잡아 볼 때, 아이들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할 때마다 궁금해졌다. 우리한테 진짜 필요한 과학 공부가 뭘까? 시험에 필요한 공부, 진짜 필요한 공부를 따로 하기엔 너무 시간이 아깝지 않을까?
과학을 사랑한 과학자들이 쓴 책을 읽고 과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써 보기로 했다. 정말 배울 수 있는지. 될까?
생각하기 싫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동기부여. 이 부분도 흔히들 교사의 역량이라고들 한다. 비록 물가로는 데려와도 물을 입에 넣기는 어렵지만. 비겁하다고 해도 할 수 없지만 난 그 역할을 책과 나누어지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나는 흉내 낼 수 없는 과학에 대한 열정. 그런 열정이 녹아 있는 글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하다. 누가 이과생은 글을 못 쓸 거라고, 과학책은 재미 없을거라고 했던가. 총균쇠를 쓴 제로미 다이아몬드도 이과생이었고, 통섭을 쓴 에드워드 작가는 퓰리처 상을 두 번이나 받은 글솜씨다. 최재천 교수님 글도 이야깃거리가 많아서인지 원래 이야기꾼인지 술술 읽힌다.
쓰다 보면 생각구멍이 속출한다. 그러면 궁금해지고, 찾아보게 되고, 배우게 된다. 이건 내가 경험했다.
AI가 글쓰기 숙제를 대신하면 소용없을까? AI가 글을 쓴다고 해도 글을 쓴 사람으로 책임을 지게 된다면 AI가 써 준 글을 안 읽을 수는 없다. 그러면 글을 읽어본다는 건 공부가 된다는 거니까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연결하라는 주문이 들어간다면 AI가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 생긴다. 설사 명령어만 고민하게 되더라도. 바로 그 명령어를 고심하는 순간이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내 경험상 편집이 처음 쓰는 것보다 더 어렵다. 여기저기 짜깁기를 하다 보면 나처럼 성질 급한 놈들은 차라리 그냥 쓰는 게 쉽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럼 평가는? 아마 학생들도 글쓰기 평가를 싫어하겠지만 선생님들도 싫어한다. 채점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수치화를 해야 하니 공정한 심사를 위해 꼭 들어가야 하는 채점 기준을 세워 놓으면 결국 단답형과 별 다를 바가 없다. 그래도 그냥 단답형 문제보다는 아이들 입장에선 얻는 게 조금 있지 않을까? 자신과 문제, 고민, 생각과 연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면 꼭 딱딱한 글이어야 할까? 노래는? 연극은? 영상은? 만화는? 소설은? 시는? 나는 이런 선택지에도 활짝 열려있다.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실험도 하고 보고서도 쓰고 용어도 외우면 더 좋지 않을까?
내가 가르쳤던 학교의 생물 교과 과정에 따라 선생님 버전으로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8개의 질문을 모았다.
1. 과학의 성질 : 과학이 뭘까?
2. 인간의 역할 : 생물계에서 인간의 역할을 뭘까?
3. 진화 : 진화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게 뭘까?
4. 세포와 유전물질 : 자연은 어떻게 변화와 영원함을 동시에 추구할까?
5. 시스템과 항상성 : 자연에 항상성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
6. 광합성과 식물 : 생명이란 무엇일까?
7. 동물과 생태계 : 같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8. 과학과 사회 : 사회에서 과학자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9. 과학 교육 : 우리에게 필요한 과학은 뭘까?
아이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은 질문이고 녀석들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아이들이 알았으면 하는 내용을 담은 책도 틈틈이 소개했다.
얇은 책, 날카로운 책, 술술 읽히는 책, 궁금한 거에 대답해 주는 책까지 고르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 다양하게 고르려고 노력했다.
언젠가 수업을 돕기 위해 침입종에 관한 수업을 하는 과학 교실에 앉아 있었다.
선생님이 자연계 천적이 없어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침입종 예시로 든 Asian carp이라는 잉어과 물고기 이름을 부를 때마다 교실에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는 움찍 움찔했다. 선생님이 나를 공격하려고 그 예시를 들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도 물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거란 건 안다. 미국에 이민 가서 사는 나만 혼자 괜스레 움찔했을 뿐이다.
원래 이런 침입종의 시작은 필요해서 누군가 들여오고 방치해서 생태계에 잠입했는데 천적이 없어 원 생태계의 규칙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는 찾다가 힘이 너무 세져서 위화감이 들면 견제하려는 게 생태계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살던 물고기를 강물을 깨끗이 한다고 들여와놓고 너무 많이 먹고, 빨리 크고, 번식도 너무 잘하는 바람에 침입종 딱지를 붙였다. 그런데 아시아에는 이 종들이 생태계에 문제를 일으켰단 얘기가 없다. 왜? 맛이 좋아 인간이 잡아먹으니까. 그런데 가시를 못 바르는 미국에선 생선으로 인기가 없어 침입종 신세다. 가시를 발라주는 방법을 개발하면? 유명 요리사가 나서면 어떨까? 유명 체인점에서 메뉴로 개발한다면? 그도 아니면 싼 값에 수출을 한다면?
한국은 나라크기로 인해 소비 시장, 생산 규모에는 한계가 있다. 몸집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면 땅덩어리가 큰 나라들을 고객으로 삼는 건 어떨까? 어딜 가서 봐도 일당백을 거뜬히 하는 바지런하고 빠릿빠릿한 한국인들이 지우개 같은 과학을 하면 어떨까? 이미 과학 선진국인 나라들도, 따라오기 위해 애쓰는 아프리카 같은 나라들도 더 만들어서 무언가를 해결하는 과학, 자연계의 항상성에 도전하는 과학을 할 때 깨끗이 되돌리는 과학, 인류가 자연에 남긴 흔적을 지우는 과학,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변화를 하는 과학을 하면 어떨까? 다른 여러 나라들이 마구잡이로 과학을 하면 할수록 한국 과학의 잠재 고객은 늘어나지 않을까? 다른 과학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가장 빠른 민족은 한국인이 아닐까? 아이들도 역사의 교훈을 알면서 과학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자연, 생물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다.
뱀의 모양을 닮은 주얼리
거미를 닮은 로봇
인체의 몸을 닮은 과학을 해보는 건 어떨까?
다양성과 생존 법칙 사이를 넘나드는 생물처럼 선택과 집중을 넘나드는 과학
항상성을 유지하면서도 진화를 이뤄내는 생물처럼
균형을 이루면서도 혁신을 이뤄내는 과학.
태양과 공기로부터 태어나, 살면서 행복을 느끼고,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처럼
무에서 유를 만들고, 만들어진 유를 의미 있게 즐겁게 쓰고, 쓰인 후에는 무로 돌아가는 과학.
그런 과학을 할 수 없다면 자연 앞에, 생명의 원리에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 배워야 하지 않을까?
스티븐 스필버그의 백투 더 퓨처에 나왔던 쓰레기 처리기는 현존하는 기계가 됐다.
미국에 있는수많은 음식물 처리기 대신 그 자리에서 가루 비료로 만들어주는 기계가 대신 들어오면 봄마다 비료 포대를 더 이상 옮기지 않아도 된다. 상상한 걸 이뤄주는게 과학이다.
나보다 더 상상력이 넘치고, 더 과학을 사랑하고, 더 용기 있을 녀석들의 진화를 위해 내가 건네줄 문화 유전자의 다양성에 보탤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고민이 될 때 에드워드 윌슨의 ' Letter to a young scientist'는 힘이 되었다. 안도가 되었다.
나비의 힘이라도 보태보자고 쓰기 시작한 글들이었다. 보태기는 커녕 내가 제일 많이 배웠다.
함께 배울 수 있기를 바라본다.
늘 그렇듯 사랑을 담아 응원해 주시고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자료)
Letters to a young scientist, Edward O Wil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