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일단 파 보던가

잇몸 책 동아리

by 책o습o관

컨버전스. (원서 제목을 먼저 알았다면 안 읽었을지도 모른다. The future is faster than you think.)

피터 디아맨디스는 내가 처음 선택한 뼈다귀다.

여러 뼈다귀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목에 거슬리는 큰 뼈다귀다.

크다 못해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목에 콱 걸린다.

피터는 컨버전스라는 책 말고도 미래예측이라는 주제로 베스트셀러가 두 권이나 된다.

정약용 선생이 말씀하신 세 권은 써야 진짜 작가라는 법칙을 통과한 작가다.

게다가 세 권 다 베스트셀러니 무사히 통과 정도가 아니다.



이 책을 끝까지 읽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지루해서는 전혀 아니다.

지루하기는커녕 소름이 돋는다.

너무 소름 돋고 머리가 띵해서 읽기가 어렵다.

양쪽에서 입을 벌리고 쑤셔 넣는 입에 쓴 약 같은 미래 예측들이 낱낱이 열거되어 있다.



소매점은 다 망할 예정이란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집 앞 문구 전문점인 스테이플스가 문을 닫아서 마음이 허했는데 얼씨구.

GMO 종과 배양육은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예정이란다.

피터 작가의 말에 따르면 과거에 목매는 타성에 젖은 심리 때문에 발전을 못 하는 나 같은 인간들이 있어서 지구가 괴로운데 결국엔 먹게 될 거란다. 그래야 전 인류가 기아에서 벗어나고 기후로부터도 먹거리를 조달할 수 있단다. 인간과 로봇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동물들과 세상을 공유할지 궁금하다.

저 아프리카 오지 아이들도 컴퓨터 하나 갔다 줬더니 문맹률이 뚝뚝 떨어지더란다.

가르쳐 줄 필요도 없고, 기계하나 던져 줬을 뿐인데 앱을 까는 것부터 시작해서 못 하는 게 없는 걸로 보아 현재 교육계의 느리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들어 엎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한다.

가상현실만큼 중독성이 높고, 몰입을 높이는 최상의 환경이 없으니 교육계는 가상현실의 최대 소비자가 될 거란다. 최고로 잘 살고 최고 기계가 많은 나라들의 자살률을 생각하면 발달된 과학 기술과 줄어든 문맹률이 행복을 보장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인류의 숙명, 디아스포라. 머지않아 단짝인 일론씨와 베조 씨의 혁혁한 공로에 힘입어 인류는 지구에 있는 집 팔아서 5억 정도들이면 달이든 화성이든 이주해서 잘 살게 될 거란다.

내 경험으론 가족과 떨어져 산다는 것, 고향에서 떨어져 산다는 건 큰 기회비용을 상실하는 것이다. 화성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죽음. 인간은 머지않아 죽음을 선택해야 할 거란다. 권작가도 보타가 살던 시대로 간 시간 여행에서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질병이 없고 수명이 길게 연장된 너무나 멀쩡한 노인들이 줄 서서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는 현실을 그렸다.

점입가경은 인간의 뇌에 인공칩을 삽입하는 BCI (두뇌 컴퓨터 인터페이스)라는 기술이다. 늘 그렇듯 원래는 치료 목적이었지만 역시나 선구적이고 실험적인 인간들의 투자로 보다 경쟁력 있는 인간의 능력을 위해 개발 중이라고 한다. 인간이 로봇과 경쟁하려면 피할 수 없는 기술이란다. 성전환 수술을 통해 여성이 된 운동선수의 여자 경기 참가가 논쟁이 된 것처럼 인공칩을 찬 인간과 전통적인 인간과의 대결을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몸을 키운 내추럴인지 아닌지 아니냐를 놓고 법정 공방을 불사하는 몸짱의 소신은 고집일까 가치일까. 인간이 노력을 통해 얻어내는 마스터리의 가치는 대부분 기계들에 의해 쉽게 복제될 텐데 그러면 더 이상의 장인 정신은 없는 걸까?

희한하다. 나는 같은 것을 보고 나쁘게만 보고 있는데 어째 피터가 그리는 세상은 희망차게만 보인다.



그가 열거한 이런 변화들은 2030년을 기준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이미 가능하고 나머지도 코앞에 있다고 한다. 작가도 처음엔 무섭고 당황스럽지만 알아야 한다고 한다. 나한테 봉변 같은 현실을 그는 이미 받아들였나 보다.



좋은 점도 있다. 좋은 점은 대부분의 기술이나 콘텐츠 소유의 주체가 개인이 되어 무한경쟁에 이르고 결국 무료가 되어 기술이 더 급진적으로 발달할 거라는 점이다.

그래서 내가 브런치에 있는 좋은 책을 공짜로 읽고 있나 보구만. (물론 돈을 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 어느 곳에나 생존 경쟁을 벗어나 지금보다는 훨씬 편하고 효율적으로 살게 될 거라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로봇과 인공지능과 경쟁을 할 수 없는 인간에겐 선택의 자유, 기회, 경쟁, 실패를 통한 성장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축복을 여전히 누릴 수 있을까.

내가 생각낸 줄 착각했던 지우개 과학 이런 것도 재활용 경제( closed loop economy) , 생체모방( biomimicry) 같은 개념으로 연구,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의 규칙을 이해하는 테크노 전사들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격차를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까?

테크노 전사들이 만들어 좋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근데 떡이 먹기 싫으면 어쩌나?

굳이 옛날에 먹던 쌀밥이 먹고 싶다면 어쩌나?

한국엔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청학동이 있고, 미국엔 청교도적인 삶을 고수하는 아미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선택에 의해서 살고 있고 행복한지 불행한지 모르겠지만 고립되어 보인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가치,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인간들은 결국 그렇게 고립된 무리가 될 것인가?

고립된 무리에서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 누구나, 다른 무리로의 전환이 가능할까?

그런 선택이 모든 인간에게 여전히 공평하게 주어질까?

테크 유토피아를 동경하는 꿈나무들이 하고 있는 일이 설령 인류의 미래를 위한 일일지라도 인간들이 싫다면 어쩔까?

최첨단 기술이 제공하는 영원하고 완벽한 세상을 줘도 싫다는 괴팍한 인간들은 어쩔 건가?

그걸 개인 선택의 문제라고만 봐도 되는 것일까?

급진적 진화를 원하는 종과 원하지 않는 종간의 형평성과 다양성을 어떻게 보존할 텐가.


알아서 대비하라고? 어떻게 대비할까?

어차피 망할 소비점이니 아예 장사는 꿈도 안 꾸는 방식으로?

아니면 아마존 프리미엄 멤버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그렇다면 인공 지능과 로봇이 빅 데이터를 이용해서 서비스하는 아마존에 대항해서 개성 넘치는 집 앞 소비점을 지켜낼 만한 방식을 생각해 내면 되지 않냐고?

소매점 주인이 좋아서 가는 이유, 주인이 만들어 낸 불규칙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이 좋아서 가는 이유 말고는 소매점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가격을 올리지 않고 그런 손님들로 마진이 남을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로봇과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복지 혜택을 받고 살며 하는 장사니 마진 같은 건 신경 안 써도 될까? 돈을 모으는 기쁨도 없고, 돈을 모을 필요도 없는데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럼 화가나 음악가, 작가처럼 좋아서 하는 일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굳이 기계에게 양도하고 싶지 않은 창작과 득도의 경지에 대한 기쁨, 인정은 기계와의 경쟁에서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큰꿀이가 묻는다.

한국 사람들은 사진 찍을 때 필터를 많이 써?

왜?

아니 별스타에 프로필이 뜨는 사람들을 보니까 너무 심하게 수정한 사진이 뜨더라고.

너흰 안 써?

내 친구들은 너무 심하게 하면 막 뭐라고 그러거든. 진짜 안 갔다고.

한국 사람이라고 다 그러겠어? 인스타에 알고리즘에 뜰 정도로 유명인이 그렇겠지.

조금은 괜찮고 너무는 안 돼?

그래도 너무 가짜티가 나잖아.

진짜가 뭔데?



스칼렛 요한슨이 자신의 목소리를 꼭 닮은 챗 GPT개인 비서의 목서리에 대한 법적인 제재를 요청했다.

한국에서도 유명인들이 사칭 계정에 대한 국가차원, 기업 차원의 규제를 요구했다.

코앞에 있다는 게 맞긴 맞나 보다.


대가를 만날 줄 알고 열심히 올랐건만 만족스럽지 않다.

내 궁금증에 대한 답이 안 보인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안 보인다. 다른 산을 올라야겠다.



미션 세 번째,

뭔지 모르는 답을 위해 계속 파 본다. 정해진 정답은 없다. 정답이 뭔지 모르지만 내가 궁금한 답은 아니다. 내가 찾는 답이 뭔지 어떻게 아냐고? 만나면 안다. 깨우치는 순간이 오면 아 그렇지 한다. 그러면 그건 알고리즘처럼 네가 읽고 싶은 건만 가져다주는 정보만 읽는 것하고 같은 거 아니냐고?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원하지 않는 것을 걸러내는 일을 내가 했으니까. 어딨는 거야? 굵은 뼈.




그 후


큰꿀이는 처음에 고른 책과 다른 책을 읽었다. 책상위에 내가 널부러뜨린 이런 저런 책들과 나의 후기들로 선택이 바뀐 모양이다. 정치와 사회에 관심이 많은 큰꿀이가 고른 책은 시스템 에러, System Error (Rob Riech) 였다. 큰꿀이가 학교에서 학생회 같은 걸 한다고 할 때마다 전혀 공감이 안 되던 내 입장에서도 호기심이 가는 책이었다. 내가 읽기 위해 빌려놓은 책은 큰꿀이가 새치기 해서 읽었다. 나의 예상과 달리 큰꿀이는 시간을 따로 할애해서 모임을 하고 싶어 했다. 큰꿀이가 일을 하지 않는 월요일 오후 5시로 정했다. 그런데 작꿀이 녀석이 스쿠터를 타고 싶다며 따라 오란다. 큰꿀이와 함께 작꿀이 뒤를 따라 가며 책 이야기를 나눴다. 운동을 좀 더 했으면 싶었는데 책 이야기도 하고, 운동도 하게 되었으니 이게 웬 횡재인가. 큰꿀이는 개발의 속도에 맞춰, 또 그 이전에 시스템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큰꿀이에게 더 구체적인 미래를 상상하게 됐냐고 했더니 이미 아는 내용도 많았고, 더 궁금해진 부분도 있었다고 했다. 다음책은 상상력으로 미래를 본 책을 선택할 거라고 했다. 이미 책을 8권이나 읽었기 때문에 나혼자 내린 결론과 새로운 정보를 일방통행으로 전달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해야했다. 책상에 앉아서 했다면 타이머를 맞춰놓고 돌아가며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지만 걸으며 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신경 썼다.

큰꿀이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진심이구나.

큰꿀이는 참 아빠를 많이 닮았구나.

이런 생각들과 더불어 큰꿀이가 책에서 무슨 내용을 배웠는지, 새로운 내용은 뭐가 있었는지 만큼이나 내가 관심이 가는 건 큰꿀이가 어떻게 답을 찾아가는지, 어떤 책을 선택하는지다.

그래서 이런 질문들을 던져 본다.

다음엔 어떤 책을 고를거야? 기준이 뭐야? 이번 책을 읽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들이 있어?


큰꿀이가 써 놓은 독후감을 보니 사람들의 가치로 감정을 짚은 점이 인상적이다.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이해하는 할수 없는, 느낄 수 없는 감정도 감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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