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 책 동아리
기말고사를 끝내고 어슬렁 거리며 거실을 지나가는 큰꿀이에게 물었다.
미래를 상상해 본 적이 있어?
있쥐.
(어쭈구리? )
10년 후, 20년 후엔 뭐가 달라질 거 같아?
엄마, 나한테 왜 그래?
에이 그러지 말고 말해봐. 궁금하잖아.
10년 후에 작꿀이도 너처럼 학교에서 공부할까?
아닐 거 같은데?
잉? 고뤠? 그러면?
벌써 우리 학교만 해도 블렌디드 수업이라고 해서 어떤 과목은 온라인으로 공부하는 옵션을 주니까 작꿀이 때는 학교 매일 가진 않을 거 같아.
...... ( 나보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해 본 모양이구먼.)
로봇은?
로봇이 많아지겠지. 사람들이 엄청 좋아할걸?
아기 돌봐주는 로봇 이런 거? 너도 아기 낳으면 쓸 거야?
난 결혼 안 해.
(그런 애들이 원래 제일 먼저 한다.) 그래? 그럼 나중에 엄마 아빠 아프면 로봇사서 간호하게 할 거야?
피식. (본심이 탄로 났나 보군.)
엄마, 아빤 내가 돌보지.
(로봇이 있어 우리 꿀꿀이들이 고생을 안 해도 될지 모른다는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애달프고 희한한 감정이군)
넌 네가 한다면서 사람들은 왜 로봇을 살 거 같아?
몰라. 그냥 그럴 거 같아.
넌 무슨 책 읽을 거야?
몰라. 아직 못 골랐어. 엄만?
난 랑랑별 때때롱.
나도 그거 읽어 본 건데.
(기억하는구나)
아, 난 One hundreds of solitude, by Gabriel Garcia Marquez 읽어야겠어.
(나도 읽어야지. 제목이 마음에 들어)
그 책이 뭐가 좋은데?
사회가 가져야 하는 가치에 대한 메세지가 있다고 하더라고.
(어쭈구리. 가치를 생각하신다고?)
검색해서 찾은 수많은 미래 관련 책들이 있었다. 디스토피아의 위험을 경고하는.
나는 그런 책들이 싫다. 그런 위험을 알고 대비하라는 경종의 메시지라고 하더라도 싫다.
그래서 뭐.
말린다고 안 할 것도 아닌데.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변해가는 세상이 싫고 무섭다고 한들 안 올 것도 아니고, 도망갈 수도 없는데.
미리 알고 싶지 않다. 그때 닥치면 마지못해 해야 하는 거나 하며 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미 미래의 씨앗을 뿌린 부모고, 씨앗을 가꾸는 선생이다.
내가 사랑하는 자식들, 학생들은 미래를 살 텐데 모른 척할 수가 없어 애써 눈을 치켜떠 본다.
권정생 작가의 랑랑별 때때롱은 두 세 수를 더 본다.
디스토피아 그 후에 어떻게 될지를 상상한다.
놀라운 건 그 다음이 유토피아는 아니다.
삶이 순탄하지 않으셨던 걸로 알고 있는 권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뼛속까지 희망적일까?
공기는 많이 더러워졌어도 땅은 아직 쓸만해서 맛있는 호박이 자라는 지구에서 사는 새달이, 마달이.
과학 기술의 진보를 500년 동안 거슬러 만들어낸 세상인 랑랑별에 사는 때때롱, 매매롱
아이들이 요술 망토를 입고 시간 여행을 통해 만난 10살 밖에 안 되었지만 모르는 것이 없고, 뛰어놀지 않는 보탈이
읽은 책을 또 읽는 건 반칙 아니냐고? 반칙은 무슨. 책은 다시 읽을 때가 진짜 맛있는 거거든.
시간 정해 놓고 얼굴 마주 보고 앉아서 오손도손 하는 북클럽?
생각해 볼 문제들을 뽑아 놓고 하나씩 격파하기?
나는 못한다. 그렇게 각 잡고 할 이야기가 없다. 실력도 없다.
밥 먹다가 이야기하고, 지나가다 눈 맞으면 이야기하고, 그도 못하면 각자 쓴 독후감을 읽어 본다.
큰꿀이가 한국어 공부도 할 겸 때때롱 랑랑별이 다시 읽고 싶어 지게 독후감을 잘 써야 할 텐데 쉽지 않겠군.
미션 두 번째.
어떤 분야에 대해서 알고 싶을 땐 뼈대를 알면 도움이 된다.
나처럼 미래학, 미래학자 이런 거에 일절 관심이 없던 사람이 책을 찾으려면 이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다.
물론 AI가 답하는 검색 엔진을 돌려서 추천책을 보고, 리뷰를 보고 아무거나 골라 잡아도 된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생선뼈의 잔가시가 아니라 가운데 굵은 가시 같은 작가다. 왜냐고? 너무 모르니까.
굵은 뼈대 작가의 책을 읽으면 시간도 절약이 되고 다른 책들이 줄줄이 와서 달라붙는 편리한 점이 있다.
이럴 땐 위키를 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위키에서 미래학의 역사를 보면 계속 나오는 인물들이 있다. 또 몇 가지 유행하는 책들의 참고목록을 보면 공통되는 인물들도 있다. 그 분야의 대가를 찾으면 지름길이다.
남들이 대가라고 하는게 무슨 소용인가? 내가 인정하는 대가를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때까지 올라가 보는 게 유리하다.
시작은 항상 초라하지 않나. 초라할 땐 그나마 선택지가 적다.
생선 뼈다귀 방법으로 이번엔 상상 말고 현실에선 얼만큼 되고 있는지 한번 알아볼까?
미래학의 대가에게 한 번 들어봐야지.
그 후
큰꿀이가 One hundreds of solitude를 읽고 독후감을 썼다.
영어 실력의 한계인지 몰라도 나는 그 책을 이해를 못 했다. 갑자기 왜 꼬리는 달린 것인지, 요술력은 또 무엇인지.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나한테는 기괴한 이야기였다. 대강대강 넘기다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갔는데 되려 주인공의 철저하게 고독한 죽음이 담긴 마지막 부분은 공감이 되었다. 그런데 큰 꿀이가 쓴 독후감을 보니 더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다. 기술력을 가지고 등장한 미국 회사 fruit company가 바나나 산업에 일으킨 변화로 일어나는 콜롬비아 좌파 우파 정부 사이의 전쟁이 배경을 설명해주어 도움이 됐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선진국들의 치열한 자리 싸움과 그 자리싸움에 또다른 신흥세력인 후발주자들의 윤리 따위는 안중에 없는 개발 양상도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언이 새삼 진리롭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참 묘하도록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