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감정, 관계라는 태풍의 눈
책.습.관.
우리 작꿀이(작은 꿀꿀이)를 데리러 일찍 가서 기다리면 가끔 3살 반인 옆반 선생님이 나와 하교 전에 오늘 배운 것을 학부모들한테 이야기한다. 작년에 우리 아이가 다닐 때 계시던 선생님이 그만두고 새로 오신 선생님이다. 복도 의자에 앉아 듣고 있으면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 바로 말투다.
전 선생님은 굉장히 다정다감한 말투였다. 하루 일과를 설명하는 와중에 농담도 간간이 섞여 있다. 그런데 새 선생님은 말이 우선 빠르다. 오늘 이걸 잘 못했지만 괜찮다, 다음에 하겠다, 이런 계획도 많이 이야기한다. 또 아이들 작품이나 그림 보관하기 어려우면 사진 찍고 버리라는 깨알 같은 팁도 알려준다.
전 선생님은 유치원 경력이 20년이 다 돼 가고 새 선생님은 초보 선생님이다. 두 분의 말투차이가 경력에서 온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새 선생님을 잘 안다. 원래 알던 학부모 친구인데 처음 유치원 선생에 도전해서 정식으로 한 반을 맡아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사석에서 만난 새 선생님은 참 좋은 사람이다. 진실한 사람이다. 허투루 공치사하는 법도 없고 시간도 소중히 써서 애 셋을 키우면서 마라톤을 몇 번이나 완주했단다. 선생님의 말투가 빠르고 경쾌한 바탕에는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겠다는 철학이 있다. 씩씩한 아이로 키워야 한다고 믿는다고 한다. 분리불안 증상이 있는 것 같다며 초기에 일부 아이들에게 등록 취소를 권하기도 했단다. 아이들이 많은 학교에서 감정만 다룰 수 없으니 내린 결정이라 이해는 된다. 그녀는 응원단장과다.
감정이 생기는데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더러운 똥을 밟으면 다 같은 기분이 들거라 생각하지만 아니다. 어떤 아이는 웃겨 죽는다고 배를 잡고 데굴거리고 어떤 아이는 갑자기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한다.
너는 왜 그런 부정적인 감정만 드냐고 구박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코가 왜 그렇게 생겼냐고 구박하는 것과 같다. 감정보다 빠른 이성은 없다.
나도 새 선생님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누르고 힘차게 으쌰으쌰 하려고만 노력하며 컸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에 집중했다.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야만 할 때도 있다. 전쟁터에서 무섭다고 울고 있어 봐야 딱 죽기 십상이다. 끈적하고 질척거리는 감정에 갇히면 나오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다. 실제로 쉽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요즘 고등학생들 중에는 우울증 치료를 받는 아이들이 많다.
응원단장들이 가장 기피하는 자는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자다.
실제로 아이들은 어리광을 부리거나 울면 먹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대번에 안다. 초지일관 단호하게 하려다 보면 아이의 감정을 얕보기 쉽다. 공감 없는 응원은 짜증나게 하거나 외롭게 한다. 이미 손 쓰기도 전에 생긴 감정을 인정하고 그 감정까지 함께 응원해야 한다. 바쁜 와중에 공감도 어려운데 공감하면 해결까지 해주려는 병에 걸려 나는 고생 많이 했다. 완치도 없고 절대 면역도 없다. 그래서 아는 게 힘이고 모르는 게 약이다. 앞뒤도 안 맞고 머리로 안 되는 게 관계고 인생이다.
작꿀이는 작년 유치원에 처음 갈 때 많이 울었다.
작꿀이 말이 자리도 좁은데 자꾸 동그랗게 앉으라고 한단다. 집에서는 맨날 드러누워 책을 읽었으니 선생님이 책 읽어주는 동안 앉아 있기도 싫고 아무 때나 소꿉놀이하는데 가서 놀고 싶은데 안 된단다.
나도 잠시 고민했다. 1년 더 기다렸다 보내면 쉬운지 안다. 하지만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은 형제관계와 친구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 환경 때문에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아이가 울 때마다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별일 아니라고 씩씩하라고 하지 않았다. 슬프고 걱정되냐고 물었다. 불편한지 안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노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했고 친구들과 만나서 놀면 재밌을 거라고 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그리고 6개월을 기다렸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엄마가 슬프다는 것을 알아주는 얼굴인데 학교는 갔다 오라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원래 인생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하기 싫어도 슬퍼도 해야되는 게 있는게 인생이다.
처음엔 창문에 붙어 서서 내가 있나 없나 확인하고 있더니만 나중엔 잠시 쓱 어디로 사라졌다 오길 반복하더니 어느덧 아예 자취를 감춰 버린다. 지금은 신나서 들어간다. 뒤에서 불러서 질척대며 인사해도 세상 의젓한 척을 하며 뭐가 좋은지 친구들하고 낄낄대며 들어간다.
어떤 유치원 선생님은 부모가 단호하게 끊고 가버리면 그 뒤에는 아무 문제없다고 한다. 나처럼 보이는데서 기다리면 도움이 안 된다고도 한다. 그런데 전 선생님은 아이가 편안해할 때까지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내 육아팀에 선뜻 합류해 준 선생님이 너무 감사했다.
남의 아이도 많이 본 내 입장에서 우리 아이는 유난스러운 경우다. 시어머니 말씀이 집안 내력에 엄마 밝힘증이 있단다. 결혼할 때 미처 건강증명서를 떼어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