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자유롭고 싶어 난 악필을 선택했다.
책.습.관.
브런치를 한창 연구 중인 나는 브런치북은 뭔지, 어떤 책이 있는지 신나게 둘러보는 중이다. 나에게 하트를 날려주신 분이 이달의 작가, 최근 떠오르는 글 이런 데서 보이면 동창이 텔레비전에 나온 거 마냥 으쓱해진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러보다 도달한 또 어느 대단한 작가님의 글을 보니 최근 뉴스를 뒤덮은 전청조 글씨체에 관한 글이 보인다. 그분이 내 글씨를 분석한다면 뭐라고 하실지 궁금하다.
나는 유명한 악필이다. 칠판에 글씨라도 쓰는 날에 아이들 손이 올라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 선생님, 저거 무슨 글씨예요? "
나도 어렸을 때 서예학원도 다녔더랬다. 가끔 선생님이 칠판에 자습할 것 써 놓으라며 불러주시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글씨가 없어졌다.
지금도 이름이 기억날 정도로 예쁜 이름을 가졌던 ㅅㅅㅇ 의 글씨체를 보고 너무 부러워서 열심히 따라도 해봤다. ㅅㅅㅇ의 글씨는 획의 끝이 단정하다. 마치 단추를 꼭 잠근 것 같은 느낌이다. 성격이 급한 나는 그렇게 단정히 마감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내 글씨는 문을 채 닫지 못한 헤벌레 열린 대문같이 끝이 난다.
3년 내내 학교를 함께 걸어 다닌 ㅇㅈㅇ은 한번 보면 누구나 기억하는 글씨체를 가지고 있었다. 만화 광팬인 그 친구의 글씨체는 귀엽기 짝이 없다. ㅇㅈㅇ은 수학여행을 갔다 오면 특히 더 바빠진다. 수학여행 가서 만난 조교 오빠들한테 보내는 팬레터를 써 달라고 반 아이들한테 숱하게 대필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나도 따라 써 봤다. 유난히도 큰 가분수 ㅂ과 ㅇ을 쓰려고 나도 무던히도 노력해 봤다. 글씨가 역겨울 수도 있다는 걸 체험했다.
그 후에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친구들의 수많은 글씨체를 따라 해봤다.
유튜브에 유행하는 글씨 교정 영상들도 따라 해봤다. 그렇지만 내 것이 아니니 결국 제자리다. 내 속이 시원해질 만큼 빠른 속도와 나의 넘치는 힘을 받아낼 수 있는 글씨체는 없었다.
여전히 나의 ㅇ은 작고 찌그러져 있으며 나의 획들은 언제나 다음을 향해 달려가듯 날아다니며 나의 ㅂ은 글을 읽어야만 ㅂ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형태만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 ㄹ 은 말해 무엇하랴. 잘 보면 잉크를 뭉쳐놓는 것으로 구부러졌다는 느낌을 대신한다. 손이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니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마냥 널브러지듯 걸려있다.
예전엔 마음 먹으면 예쁜 척하는 글씨 흉내도 곧잘 낼 수 있었는데 이제 아주 고집에다 아집까지 생겨서 흉내도 안 낸다. 심지어 멋이라고 우기려는 배짱까지 생긴다.
ㅅㅅㅇ의 단아한 글씨도, ㅇㅈㅇ 의 귀여운 글씨도 , 그 뒤의 수많은 명필가의 글씨도 내 글씨가 아니다.
내 글씨는 악필이다.
글씨를 놀려대는 녀석들이 괘씸해서 천재는 악필이라는 공공연한 거짓부렁도 했다.
내 글씨를 찾는 것이 어려웠던 것처럼 진짜 내가 누구인지 찾는 것이 어려워 관계가 어렵다. 관계가 어려워 진짜 내가 누군지 찾는 게 어려웠는지 모른다. 현재는 일단 악필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름도 붙여주었다. 못난이체. 정감이 간다.
나를 인정하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고 끝이다.
관계를 최소한으로 하며 내가 요리조리 피해 살았던 나를 바로 보기는 육아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나를 바라보는 작은 두 눈은 나를 가감없이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