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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Jan 31. 2024

우리들의 (책).습.관 17   
똥을 똥이라 하지

책.습.관. 라디오

안녕하세요. 우리들의 책.습.관.의 강주현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작꿀이와 자기 전  흥부놀부 전을 읽었어요. 문구선이란 삽화가의 똥그림이 마음에 쏙 들어 큰꿀이가 읽던 책을 12년째 보관하고 있었는데 이제 작꿀이가 읽습니다. 

한국에는 전래동화라는 재미난 동화 장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알고 보면 재미가 있지만 때로 롯데월드 옆에 두고 민속촌에 소풍을 가는 느낌이에요. 시간이 벌어질수록 아이들이 공감하는 부분도 적어지고, 상상조차 안 되는 게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른 재미난 이야기들도 많고요. 그래도 우리 것이니, 우리 문화니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느 출판사나 한 번쯤은 내놓는 것 같은데 이야기는 이미 너무 유명해서 특별한 것들이 없고 삽화나 울그락 불그락, 슬그렁 얼그렁 같은 추임새, 책을 읽을 때 타지는 박자가 제가 전래동화를 고르는 변수가 됩니다.  

문구선 삽화가의 놀부네 박에서 똥이 터지는 삽화가 어찌나 생생한지 진짜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책장을 넘기면서도 어쩐지 손가락이 움찔합니다. 당연히 애들은 좋아 죽지요.

왜 하필 똥일까요?


어느 날 큰 꿀꿀이가 하는 말이

"엄마는 왜 이렇게 똥, 방귀 이야기를 많이 해?"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교양 있는 여잔데 그런 소리를 하냐? " 정색을 하니,

" 미국 사람들은 그냥 화장실 갔다 올게 하지 엄마처럼 똥 누러 갔다 올게 안 해 " 그러네요.

물론 제가 그랬죠. 

"우리 그런 사이 아니었어? "

그건 가 미국 사람 딸이 아니라서 그런 라고요.

우린 그렇게 격이 없는 관계라는 거 아니겠냐고.

한국말도 어설프면서 '우린 그런 사이'라는 말이 싫진 않은지 피식 웃네요.


외국인들한테 한국어를 가르쳐보면 된소리를 참 어려워해요. 똥이 똥이어야지 동이면 영 시원하지가 않은데 말이죠. 된소리에서 오는 옹골찬 느낌. 한국인이 아니면, 한국말을 모르면. 이 느낌을 어떻게 알겠어요. 영어에서 똥을 뜻하는 말로 Shit, Poop 이 있지만 Shit 은 뱉어버리는 발음 때문인지 모욕적인 어감만 남고, poop 은 귀엽긴 하지만 그뿐입니다. 그런데 똥은 아니지 않나요? 똥강아지의 똥은 친근하면서 따뜻한 온도가 느껴집니다. 똥배, 똥배짱은 또 어떤가요. 여기 똥들에선 든든함과 느긋함이 느껴집니다.  언젠가 말을 순화한다고 짜장면이 자장면이 됐던 것처럼 똥이 동이 되면 어쩔 뻔했어요. 단체로 변비에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작꿀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작꿀이가 천재인가 생각했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아직 얇은 옷을 입던 걸로 기억하니 늦여름쯤이니 백일 전 인듯해요. 하얗고 말랑한  찹쌀떡 같은 얼굴로 거실 소파에 누워 놀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눈이 동그래지며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 거예요.  똥 신호가 온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손을 잡고

" 똥 누는구나. 아이고 잘한다. 응~ 아~응~ 아 ~!"

하며 열띤 응원을 보냈어요. 자신의 몸 하나를 다룰 줄 모르는 작꿀이는 찹쌀떡이 토마토가 될 정도로 용을 씁니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도 말이죠.

끝이 보이지 않는 작꿀이의 까만 콩 같은 눈에서 저는 스스로 배설을 성공한 성취감과 응원하는 저의 존재로 인한 안도감을 봤습니다.

네, 저 바보 맞습니다. 동물도 누는 똥을 가지고 무슨 천재씩이라고 호들갑이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그때 작꿀이가 관계를 배웠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니, 저에게 관계를 가르쳤지요. 제가 보내는 응원을 되돌려주는 방법, 저의 부담스런 응원에도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요. 그것도 인간이 수치럽다고 생각하는 똥 누는 순간에 말이죠. 아마도 제가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겠죠. 

부모가 되면 똥에 감사할 순간들이 많습니다.

큰꿀이 때는 이 순간을 놓쳤습니다. 아이가 놀라는 얼굴을 보고 저는 더 놀라서 벽돌만한 육아책을 해부했거든요.


무화과를 먹고 부끄러워진 아담과 이브처럼 5살 난 작꿀이는 이제 화장실에 넘버2를 하러 간답니다. 똥의 해학을 모르는 미국 사람들은 오줌은 1번 똥은 2번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 전 굳이 그래요.

" 응, 똥 잘 누고와. "


책을 보다 제가 작꿀이에게 물었어요.

"언니가 흥부처럼 가난해서 먹을 것 좀 줘 하면 어쩔거야? " 하니

"먹을 거 줘야지" 해요.

자기보다 12살이나 많은 언니인데 자기가 보살필 수 있다는 듯 큰소리를 떵떵치네요.

그래서 " 네가 가난해서 언니한테 가면 언니가 어쩔 거 같아? " 하니

"당연히 주겠지" 해요.

똥 때문인지 관계 하나는 확실히 아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아차차 녹음 하는 걸 깜빡했네요. 찾으면 전화기는 꼭 옆에 없어요.


여러분의 책.습.관.은 어땠어요?

습관삼아 돌아올게요.

우리들의 책.습.관 이었습니다.

                                                                    


https://podcasters.spotify.com/pod/show/juhyun0528/episodes/17-e2f65ks


https://youtu.be/tfNrTHNwy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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