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습.관. 라디오
안녕하세요. 우리들의 책.습.관. 강주현입니다. 잘 지내셨죠?
눈이 많이 왔어요. 눈이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 새벽이라 그런지 글이 고파집니다.
얼마 전 경성크리처에 관한 기사가 났더라고요.
한국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저는 저런 기사를 눈여겨봅니다.
아이들하고 같이 읽을 만한 기삿거리인지, 수업 재료가 되겠는지 모아두는 거죠.
게다가 올해는 아이들과 일제 강점기에 관한 주제로 1년 동안 수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사가 제 눈에 번쩍 뜨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얼마 전 1학기를 마치며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대해서 배우는 게 어땠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니?라고 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지요. 답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미국 사는 아이들한테는 질문거리가 됩니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인이기도 한 아이들한테는 선택권이 주어진 것처럼 생각되거든요.
핏줄의 힘인지, 가정교육의 힘인지 여하튼 대부분의 아이들은
너무 화가 난다. 인상적이다. 슬프다. 배워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한국학교에 오기 싫은데 억지로 끌려 오는 한 녀석이 그럽니다.
배운다고 뭐가 달라지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일본은 착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저도 제가 애국자가 아닌 줄은 알고 살았는데 저 글을 보는 순간 찬물 세례를 받은 것 같이 정신이 번쩍 납니다.
여러분은 병원에 가면 어떻게 하시나요? 제 친구는 피만 조금 나와도 오금이 저린다며 질색팔색을 하면서도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것은 눈을 부릅뜨고 봅니다. 반면 저는 고개를 돌리고 바늘 쪽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그저 모르게 빨리 지나가게 해달라고 간호사 선생님께 부탁합니다. 아픈 줄 이미 아는데 굳이 그걸 눈으로 꼭 봐서 확인하려는 심리를 이해를 못 하겠어요.
그래서 저는 안경도 잘 안 닦습니다. 살다 보면 더러운 것도 마주하게 되는 세상을 굳이 그렇게 눈 똑바로 뜨고 보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질 않거든요.
그런데 저 녀석이 꼭 저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저 녀석은 아마도 귀신의 집에 들어가면 얼굴 다 가리고 눈 다 감고 앞사람 등짝에 매달려 걸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돈 아깝게.
착해진다고 믿는 게 편하니까요. 배운다고 달라지는 게 없으니 없는 일이 되면 속이 편하니까요.
언젠가 일본에 큰 쓰나미가 왔을 때 예전에 다니던 아이가 그런 말을 해요.
엄마가 그러는데 일본이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천벌을 받는 거라고요.
그런가요?
별로 과학적으로 들리진 않습니다.
아이들이 굳이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조상들의 암울한 과거, 무력한 역사
이로 인해 느껴지는 이 부정적인 감정을 80년이 지난 지금 왜 굳이 느껴야 하는지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과거의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사죄를 받기 위해서?
다 중요하지만 선진국 반열에 들어 선 한국만을 보고 자라고 일본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여기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여기서 자란 아이들은 아시아인, 그중에서도 한국인이라는 소수 인종에 속하기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본인과 같은 아시안으로 묶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같은 배를 탄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일본인들이라고 다 나쁘지 않다는 건 아이들도 압니다. 학교에서 같이 게임하고 낄낄거리고 서로 좋아하는 것도 많습니다. 집에 놀러 가도 서양아이들보다 더 비슷한 생활 방식에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타국 만 리 할머니 할아버지 나라보다 당장 게임을 같이 할 친구가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배우자니 미워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친하게 지내면 안 되는 건가 싶은 마음도 드니 어느 감정에 장단을 맞춰야할지 어려워집니다. 그러니 배우기 싫습니다. 어떤 부모님들은 굳이 뭐 하러 아픈 역사를 되짚냐고도 하십니다. 드물게는 약했던 우리나라가 아픈 과거를 굳이 들출필요가 뭐냐고도 하십니다. 정치계의 난장에 식물난 어른들은 지레 손사래를 치기도 합니다.
일본인과 결혼한 제 친구 남편이 친구에게 그런 말을 했다더군요. 한국인들도 능력이 됐다면 결국 일본처럼 그렇게 세계를 제패하고 싶지 않았겠냐고요. 글쎄요. -다면을 가정해 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장담은 못하겠지요. 그런데 한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못 해서든, 안 해서든 그렇게 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 만행 덕분에 아무 상관도 없고 심지어 동의하지 않더라도 후세들은 전범의 굴레를 짊어지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한국은 총 칼 대신 춤, 노래, 음식, 기술 그리고 글로 세계로 뻣어나갑니다. 이 한류의 끝에 세계 정복이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복이 아니라 포용이 있었으면 합니다. 보자기 같이 덮어지고 세계를 품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보면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잔인할 수 있나에서 시작해서 우리는 왜 이렇게 힘이 없었나 싶은 원망마저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 그 작은 나라를 지켜냈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정을 아이들이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Kpop도 좋고 K culture도 좋지만 아픔도 보듬을 줄 알고, 과거 속에서도 배울 점과 긍정적인 감정을 찾아 한국과의 끈끈한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봅니다.
제가 봐야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하니 경성크리처를 한 번 볼까 하고 들어가니 달달한 웰컴투 삼달리가 눈에 밟히네요. 자긍심도, 뿌듯함도 있긴 한데 경성크리처가 선뜻 눌러지는 않는 것을 보니 시대에서 오는 그 암울한 감정의 힘이 대단은 한가 봅니다.
여러분의 책.습.관. 은 어땠어요?
습관삼아 돌아올게요.
우리들의 책.습.관.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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