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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nine Sep 13. 2016

마지막 편지

중2병에 걸렸나봐요

어느 블로그가 있다. 한 남자가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쓰는 편지를 모아놓은 블로그인데, 유치하기도 하고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인 글도 많고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글도 많지만 찬찬히 읽고 있자면 글에 어설프게나마 묻어있는 사랑이 귀엽게 보여서 가끔씩 들어가 미소 지으며 읽어보곤 했다.


그곳에 2011년 7월 이후 글이 올라오지 않다가 최근에 몇 개의 글이 올라왔다. 5년 만에 글이라니. 처음 동한 것은 반가움이었으나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는 제목을 보고 나니 그런 마음이 단번에 사라진다.


‘마지막 편지’


5년 만에 올라온 그의 마지막 글은 이별의 편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편지였다. 같은 글을 몇 번이나 읽고, 거슬러 거슬러 이전 글까지 읽고, 글에 달려있는 그의 여자친구의 댓글까지 모두 읽고 나니, 나는 괜스레 나의 사랑이 끝나기라도 한 듯 서글프다.


서로 사랑했던 그들은 어째서 헤어져야만 했을까. 함께 과거를 공유하고,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약속했던 그들은 어째서 이별해야 했을까. 영원히 사랑할 것만 같던 그들은 어째서. 어째서 서로를 떠나야만 했을까. 모든 만남에는 끝이 있다지만, 적어도 몇십 년 이후에나 찾아올 것만 같던 그들의 끝은 왜 이리 일찍 찾아온 걸까. 이렇게 끝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들은 남들이 평생 해야 하는 사랑의 정량을, 그사이에 다 써버린 건 아닐까.


답할 이 없는 질문들이 허공을 맴돌다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나는 앞선 모든 질문에 침묵으로 답한 뒤, 마지막 두 질문에 애써 소리 내어 답한다.


이렇게 끝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은, 아니 적어도 그는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더더욱 열과 성을 다하여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을 것이며, 사랑에 정량이 있다면 그가 그녀를 만나기 시작한 순간. 그가 온 힘을 바쳐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 그 순간에 이미 다 써버렸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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