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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nine Jul 16. 2022

써야지 써야지

새로 산 스피커 후기

얼마 전 스피커를 새로 샀다.


소리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면서 여기저기 뒤져가며 알아보니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스피커 자체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저음역대부터 고음역대의 소리의 크기가 크게 차이 나지 않고 고르게(플랫하게) 나올 수 있는 환경(룸 세팅, 이퀄라이저 등)도 중요하다고 하여 이왕 산 거 조금이라도 더 좋게 들어야지 하는 마음에 이퀄라이저 설정을 시작했다.


휴대폰 마이크로 소리를 측정하고, 측정 그래프를 보며 뾰족뾰족 크게 튀어나온 부분을 찾아 출력을 낮춰주면서 어느 정도 평탄한 그래프를 만들고 나니 소리가 좋아진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리면서도 뭔가 좋아진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절반은 성공했다고 믿으며 좋아하는 음악들 찾아보며 이것저것 들어보는 중에 알람이 울린다. 저녁 9시 반, 일기 쓰는 습관을 갖고 싶어 매일 알람을 맞춰놓은 지 벌써 2년도 더 지났는데..... 작년에 하나 쓴 이후로 하나도 쓰지 않은게 오늘따라 괜히 마음에 걸린다.


일기를 써야지 써야지,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쉽게 써지지 않는 건 여러 핑계가 있겠지만(작년에도 여러 핑계를 썼지만) 감정적 동요가 날이 갈수록 적어지기 때문인 것도 있는 듯하다.

날이 갈수록 생활은 더 단조로워지고 이런저런 사건들을 겪으며 여러 감정에 익숙해지기도 하다 보니 마음을 관통하기도, 할퀴기도 하던 뾰족뾰족한 부분들이 조금씩 마모되어 고르고 둥글게 변해가는 것만 같다.


큰 굴곡 없이 플랫한 삶이 되어가는 과정을 나는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할까? 편한 것 같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크게 나쁜 일이 없고 그 와중에 작은 행복들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으니 이것 또한 절반의 성공인 걸까.


열정도 없이 뜨겁고 습하기만 한 여름이 또 지나간다. 지구 한편에서는 전쟁이 진행 중이고, 다가올 기후 위기니 경제 위기니 심각하다고들 하는데 내 마음은 극적인 환희도 끝없는 절망도 없이 점심을 뭐 먹을지. 일기는 또 언제 쓰지 하는 사소한 고민뿐이다.


이퀄라이징 된 고르고 평탄한 감정. 그 절반의 성공 뒤에 남은 절반의 실패에서는 조금 메마른 소리가 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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