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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Jul 02. 2020

국제개발협력일을 하려면 석사가 필수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의 "'해외 석사 학위'있어야 국제개발협력 전문가?" 기사를 며칠 전에 읽고 좀 아쉬운 맘이 많이 들긴 했지만 그냥 흘려보냈다. 하지만 네이버의 한 국제개발협력 카페에, 원래는 실무경력을 쌓다가 더 공부하고 싶으면 대학원 진학을 생각해보려 했는데, 해당 기사를 보고 심란해졌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댓글을 달다가 길게 글이 길어져 페이스북과 브런치에도 올린다.


2013년 탄자니아 도도마대학교 정문. 본문 내용과 별로 상관이 없음. Photo: 우승훈


나는 해당 기사를 읽으며 석사 학위와 국제개발협력 활동의 관계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실관계 확인보다는 석사 학위를 하나의 '스펙'으로만 바라보며,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례와 인터뷰를 편집해서 만든 기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인과관계에 대한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 이 기사는, 현장 활동가의 경험도 '전문성'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며 끝나는 구성에도 불구하고, 석사 학위가 없는 (예비)활동가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석사 학위의 '필수 스펙화'를 부추기며, 결국 학력과 발언권/전문성의 연결고리를 공고화하는데 이바지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또한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다양한 이유와 동기로 대학원에 진학하고 학위 과정을 거쳐 석사 학위를 취득한 많은 활동가들을 폄하하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했다. 예전부터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학력 인플레'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한번 깊이 고민해보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는 감사한 마음도 든다.


해당 기사에서 표현하는 만큼은 아닐지라도,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석사 학위자가 많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 연구의 중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민사회에서 국제개발협력 활동을 하는 2030활동가의 30%가 석사 학위가 있거나 석사 학위 과정에 있다고 답했다. (참고로 해당 설문조사는 7월 3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니 아직 설문에 응답하지 않은 2030 국제개발협력 전현직 활동가들은 많이 참여해주세요! 설문 참여는 여기서: https://forms.gle/iPLQQ9YU7xPcGAnt5)



국개협UP의 설문조사 결과. 현직 활동가 응답자 중 30%가 석사 학위가 있거나 석사 과정에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나는 기사에서 제기하는 석사 학위가 경력과 경험보다 우대받는다는 주장이나 석사 학위가 '기본 스펙'이 되었다는 주장이 섣부른 일반화라고 생각한다. 기사는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석사 학위를 많이 취득하는 원인을 경력만으로는 '전문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와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데 비해 지원자가 많은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현상에 대한 원인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첫째. 코이카를 포함한 정부 기관에서 만든 전문가 등급제와 전문가 채용 제도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이 원인은 기사엔 전혀 언급되지 않았지만, 기사가 지적하는 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정부 기관 사업에 전문가로 참여하기 위해선 유관 석사학위 소지 여부가 필수 조건인 경우가 종종 있고,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석사 및 박사 학위가 유용하다.


둘째, 학부 과정에 국제개발학 전공이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 원인일 수 있다.(찾아보니 학부과정에 국내 최초로 국제개발협력학과를 설립 헸다고 하는 수원대학교의 첫 졸업생은 2016년 나왔다) 학부에서 국제개발학을 전공한 사람이 적다 보니 (예비)활동가들은 국제개발학을 학문적으로 접근해본 경험이 적을 것이고,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업무와의 연관성으로 인해 대학원 진학이 많을 수 있다. 사업을 기획하고 수행하며 평가하는 과정이 조사 및 분석 역량과 밀접한 경우가 많다 보니 활동을 하다가 필요에 따라, 혹은 자연스럽게 석사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도 꽤 있으리라 생각한다. '스스로의 필요에 의한 공부'라면 오히려 환영하고 지원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다소 과감한 추측이긴 하지만 분야 상관없이 석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국제개발협력 분야를 선호할 가능성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 석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진입을 많이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에서 언급한 전문가 제도에서의 유리한 위치와 세 번째 이유에서 언급한 석사 공부와 업무와의 연관성으로 인해 석사 이후 구직 과정에서 업무적으로 익숙하다고 느끼는 국제개발협력 분야로 유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기사의 주장처럼 국제개발협력NGO 내부에서 석사 학위가 경력보다 우대되는 분위기가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주류라고 볼만한 근거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터뷰에서 언급된 일부 단체를 제외한 많은 단체와 활동가들이 '학력이 높은 사람'보다는 '좋은 활동가'를 동료로 두고 싶어 한다고 믿으며, 심지어 인터뷰에서 언급된 사례들에서조차도 석사 학위가 취업이나 '전문성'을 인정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만한 근거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소수이고, 이러한 경향이 주류이거나 강화되는 추세라고 한다면 우리는 '전문가주의' 및 학력과 연계된 '전문가' 자격 부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는 무엇인가?", "모두가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가?", "소통과 공감, 실무를 잘하는 사람도 반드시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가?", "석사 학위와 '전문성'의 관계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현지 사람 중에는 '전문가'가 없는가?????")


나는 이 기사를 포함해 석사 학위가 마치 필수인 양 떠미는 분위기를 경계한다. 최근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 있는 자리에서 박사·석사끼리 서로 어느 학교를 나왔니 누구를 아니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특별히 학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자리도 아니었던 것 같은 사석에서 그렇게 학교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이 불편했다. 그리고 심지어 그냥 학교랑 전공, 그 학교를 나온 누구를 아는지만 물어보고 정작 무엇을 연구해서 논문을 썼는지는 따지지도 않는 것도 이상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우리 주변에서 학위와 어떤 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자주 들리는 현상이 당사자들이 의식했는지 여부와 별개로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혹은 특정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무리를 짓고 카르텔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학력과 학교를 중심으로 카르텔이 형성된다면, 국제개발협력 분야는 더 많은 가치와 변화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놓치게 될 것이고, 모두에게 외면당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쪼그라들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많이 생기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읽어야 할 글의 양과 논리적/비판적 사고 및 글쓰기 훈련 과정, 그리고 논문이라는 길고 어려운 프로젝트를 완료한다는 것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활동/사업을 기획·수행·평가하는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석사 학위가 있는 사람에게 추가적으로 기대하는 바도 있다. 하지만 석사 학위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위 자질들은 학위를 '스펙'이 아닌 공부와 나아가 활동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대학원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자질들은 따지고 보면 반드시 학교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위는 없지만 특정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석박사 이상의 지식과 통찰력을 갖춘 '덕후'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의미에서 특별히 공부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취업이나 커리어 연장을 위해 석사 학위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대학원을 가겠다는 사람들과 석사 학위 자체에 큰 의미를 두는 채용권자들에게 조금만 더 넓게 고민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석사 학위가 있다는 것만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적다. 한편, 알차게 쌓은 경험과 경력, 그리고 깊은 고민과 자기 연구를 통해 형성된 자신의 관점이 있다면 석사/박사 학위 없이도 소위 말하는 '전문가'가 아니, 그보다 더 좋은 '좋은 활동가'가 될 수 있다.


나는 모두가 다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전문가'는 무엇이고, 왜 남반구의 현장에 꼭 '한국인 전문가'가 투입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으며, 우리 하는 일에 반드시 석/박사 학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동시에 누군가에겐 하고 싶은 활동의 성격에 따라 '전문성'이나 학위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학력이라는 것은 엄청난 시간적/경제적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고, 우리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우리 분야 내부에서 학력이 권력화 되는 것을 경계하고, 다양한 경험과 배경의 가치를 인정하여 다양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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