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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Feb 08. 2022

민주주의와 국제개발협력

미얀마 군부 쿠데타 1년에 부쳐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불법으로 정권을 잡고, 시민을 탄압한 지 1년이 넘게 지났다. 국내의 독립 싱크탱크인 동아시아연구원(EAI)는 "미얀마 민주주의 복원, 어떻게 도울 것인가?"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개최해 한국에 있는 미얀마 시민과 미얀마국민통합정부(NUG) 공보관, 미얀마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사회 활동가, 연구자가 모여 미얀마 시민과 어떻게 연대하고 민주주의 복원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를 주제로 각자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나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의 미얀마 민주화 연대 네트워크인 '국제개발협력 커뮤니티 얼라이언스(국커얼)'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 세미나에서 국커얼을 초대해 국제개발협력의 관점에서 미얀마 민주화 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세미나는 1월 27일,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녹화 영상이 얼마 전에 유튜브에 업로드되어서, 이때 나눈 이야기를 브런치에도 기록해둔다. https://youtu.be/7EA7bAD5dxU


아래 내용은 내가 맡은 발제를 위해 준비한 내용으로, 유튜브 영상에서는 경남미얀마교민회 네옴 회장, NUG 묘헤인 공보관, 해외주민운동연대 강인남 대표, 고려대 김헌준 교수의 발제도 볼 수 있다.



1. 국제개발협력 커뮤니티 얼라이언스 소개


국제개발협력 커뮤니티얼라이언스(국커얼)은 작년 3월 25일, '미얀마의 민주화, 그리고 군부 쿠데타'라는 주제로 진행된 재한 미얀마 청년-한국 국제개발협력 활동가 온라인 간담회를 계기로 결성되었다. 국커얼의 목표와 하고자 하는 활동 내용은 국커얼의 첫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미얀마 시민불복종운동에 연대하는 한국 국제개발협력 실무자•활동가 성명"에 나와있는데, 이 성명은 4월 7일 발표되었고, 발표 전후로 진행된 연명을 통해 764명의 마음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성명서 전문)


이 성명을 통해 국커얼과 연명에 참여한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은 세 가지를 다짐했다.  우선, 미얀마 시민과 끝까지 연대하겠다는 다짐을 했고, 또 각자가 개발협력의 행위자로서 각자 선 곳에서 한국 개발협력의 다양한 주체가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연대 행동과 지원 방안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의 대 미얀마 ODA 재검토와 지원이 조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촉구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어떤 주체의 행동을 촉구하는 보통의 성명서와 달리, 국커얼의 성명서는 다짐이었다. 미얀마와 어떻게든 연결된, 그리고 심지어는 관련된 결정과 활동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우리 자신의 행동을 촉구하고 다짐했다.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부의 불법 쿠데타가 일어난 뒤, 개발협력 활동가들은 딜레마에 빠지고, 고민하고,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해야 할 일과, 기관과 동료의 안전 사이에서, 또 해야 할 일과, 규정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혹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좌절했다.


국커얼은 이 활동가들의 다짐, 그리고 한국 사회의 미얀마에 대한 관심이 이어질 수 있도록 미얀마 민주화 운동 아카이빙 페이지 "미얀마 봄"을 개설해서 운영하고 있고, 매주 소셜미디어(국커얼 인스타그램)를 통해 미얀마 소식 카드 뉴스를 공유하고 미얀마 민주화를 주제로 한 세미나도 여러 차례 개최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행위자들과 연대하며 집회나 대담회에 참여해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서 목소리 내고 있다.



2. 한국의 ODA, 국제개발협력 그리고 미얀마 연대


미얀마 쿠데타 이후 한국 정부는 미얀마 시민의 민생에 직결되는 사업과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나머지 미얀마에 대한 ODA를 재검토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ODA 중단이나 새로운 방향 제시가 아닌 재검토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작년 7월 발표된 정부의 2022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이나 작년 말 국회 예산 심의 기록 등을 보면 기존 진행 중이던 유상원조사업인 미얀마 송전망 구축사업이나, 전자정부 통합데이터센터 구축사업 등은 대부분 계속 사업으로 포함되어있고, 오히려 미얀마 시민들의 생계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무상원조 사업은 최소한 사업의 명맥이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 축소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미얀마 정부를 대상으로 지원하던 원조 예산을 시민사회 강화와 지원을 위한 예산으로 전용하겠다고 발표한 미국, 영국, 스웨덴 정부 등의 방향과는 상당히 다른 점이다. 그리고 미얀마 국경지역의 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인도적지원사업과 국내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생계지원 사업도 언론에 계획 정도는 발표된 것이 있지만 실제로 시행되는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한국 정부가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천명하고, 한국 시민들도 미얀마의 민주주의 세력에 유례없는 지지를 보내는 상황이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정부의 대 미얀마 ODA 활동은 다소 아쉽다.


하지만, 국제개발협력에는 정부의 ODA만 있는 게 아니다. 사실 지금의 미얀마처럼 복잡한 상황에서는 정부보다 시민사회가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미얀마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중단된, 혹은 시민들이 거부한, 교육, 보건, 생계지원 등의 기초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한국과 미얀마 시민사회가 연대하여 진행하고 있고, 국경 지역에서도 난민 지원을 위한 움직임이 있다. 그리고 물밑에서 이뤄지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직접 지원에 참여하는 시민사회단체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3. 국제개발협력과 민주주의 지원의 연계


이번 미얀마 사태를 겪으며, 국제개발협력을 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의 개발협력은 협력국 정부와 밀접하게 협의하고 정치와는 거리를 두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협력국 정부를 존중하고, 부당한 내정간섭을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중요하지만, 지금의 미얀마처럼 정부가 정당성을 가지지 못하고, 오히려 시민들을 탄압하고 있을 땐 분명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실 이런 고려는 쿠데타 이전에 있었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에도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사실은 군부가 허락하고 통제하고 있는 그런 취약한 민주주의라는 목소리가 있었고, 로힝야 학살 과정에서 이러한 메커니즘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상황, 비슷한 패턴을 겪은 나라는 여전히 많다. 하지만, 한국의 개발협력은 이런 사실을 외면 혹은 간과한 채, 경제 성장에 치중한, 혹은 기존 사회 구조에 위협이 되지 않는 기본적인 서비스 제공에만 그 역할을 한정지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게 된다. 


앞으로 국제개발협력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나아갈 방향은 그 접근법과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협력국 정부만이 아닌 그 나라 안의 다양한 구성원들, 시민사회단체가 될 수도 있고, 야당이 될 수도 있고, 언론이 될 수도 있고, 협동조합도 될 수 있을 텐데, 이들을 대상으로 단순 기술 중심의 역량강화나 서비스 전달을 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권한 강화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우선 농업, 교육, 보건 어느 분야의 국제개발협력이건 민주주의와 인권이 주류화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농촌개발 사업을 하더라도 그 지역사회의 권력구조를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크고 작은 시민 조직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들이 변화의 주체가 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날 세미나에 함께한 해외주민운동연대(KOCO)처럼 풀뿌리에서부터 기존의 구조를 흔드는 역할을 하는 개발협력 활동도 물론 존재하지만, 갈수록 기술적인 접근이 더 많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회의 정치문화나 거버넌스 구조에 대한 세심한 고려 없이 기획되고 실행되는 프로그램은 어쩌면 큰 구조적 불평등과 기득권층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정부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국제개발협력을 다각화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권위주의 정권은 불평등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친다. 예를 들자면, 등록 가능한 시민단체의 활동 범위를 규정한다거나, 정부가 각 단체의 자료를 언제든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중장기 개발 계획에 포함되는 지역과 민족을 정치적으로 정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민주주의나 인권 같은 의제를 가진 단체들은 등록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생기고, 개발협력사업이 뜻하지 않게 권위주의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일도 생긴다. 지금까지는 협력국의 승인이나, 사업 시행 기관의 정식 등록 여부를 기본 조건으로 삼았고, 한국의 기관과 단체가 중심이 되는 개발협력이 주류를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상황에 따라선 현지의, 지금 미얀마 같은 경우엔 NUG나 재한 미얀마 교민들을 통해 연결될 수 있는 현지 네트워크 같은 다양한 형태의 조직과 기관을 직접 지원하고 강화하기 위한 방법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행사를 후원한 전미민주주의기금(NED)과 같은 민주주의에 중점을 둔 비정부 성격의 기구 설립을 통해 혹은, 그 나라에 네트워크를 가진 한국이나 국제 NGO를 통해 이런 방법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철학과 비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작년 발표된 제3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에는 포괄적 국익, 기업의 해외진출, 청년의 해외진출, 개도국의 경제성장 지원 등이 포함되어있지만, 민주주의나 거버넌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이 연대와 협력을 통해 나눌 수 있는 것은 비단 ‘한강의 기적’ 같은 경제성장 노하우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제성장과 국가 중심적 접근을 넘어 각 나라의 맥락에 맞는 민주주의 발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끝/



이날 세미나의 내용을 기초로 동아시아연구원에서는 "미얀마 민주주의 복원: 저항과 연대 활동의 재점검"이란 제목의 이슈브리핑을 내놓았다. http://www.eai.or.kr/new/ko/pub/view.asp?intSeq=21061&board=kor_issuebriefing&keyword_option=&keyword=&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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