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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Nov 29. 2021

자본주의 이후를 (새) 마르크스에게 묻다

[책 리뷰]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2020/2021)


2020년과 2021년, 기후위기와 코로나19 감염병 위기 속에서도 자본주의는 끝없이 달렸다. 한국에선 주식과 코인(가상화폐) 광풍이 불었고, 전 세계적으로 부자는 더 부자가 되었고, 얼마 전 영국 글라스고에서 막을 내린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는 또다시 탈석탄과 기후정의를 위한 대전환을 다음으로 미뤘다. COP26의 결의사항은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2015년 파리 협정에서 약속한 지구 평균 온도를 산업화 이전 기준 1.5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목표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1.5도는 많은 과학자와 남반구 국가 사람들이 외쳐온 목표지만 사실 1.5도 상승한 지구에서도 우리 인류는 더 강하고 많은 태풍, 더 난폭하고 잦은 폭우, 더 심각하고 길어진 가뭄, 이 외에 2020년 초의 코로나19처럼 듣도보도 못한 대형 재난과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COP26에 모인 세계 정상들은 계속 지금처럼 생산하고 소비하며 1.5도의 세계를 넘어 모두가, 특히 재산 상위 몇 프로에 들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이 고통받는 세계로 나아가 보기로 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 혹은 이 자본주의가 만든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지키겠다는 의지, 이도 저도 아니라면 새로운 생활 방식에 대한 빈곤한 상상력이나 그냥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은 게으름은 우리 인류에게 어떤 내일을 선사할까?


COP26의 결과를 반영한 기후위기 온도계. 출처: Climate Action Tracker


일본 출신으로 경제사상과 사회사상, 특히 마르크스를 연구하는 학자인 사이토 고헤이는 자신의 책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가 기후위기의 원인이며,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지구를 지켜내기 위해 사람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거나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꾸도록 촉구하거나, 탈성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조금 늘어나고 이런 책의 독자도 늘어난 것 같은데, 그동안 펭귄이나 산호초의 일, 먼 나라 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위기를 체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이미 몇 차례 기후위기와 탈성장에 대한 책을 읽었던 터라 내용이 비슷할 것 같은 이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를 읽을지 말지 고민을 좀 했지만, 너무 참여하고 싶던 책모임에서 선정한 책이라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이 사서 읽었다. 서울시 관악구 신대방역 근처에 있는 이나영책방에서 진행하는 기후위기/탈성장 파일럿 책모임에 참석하고 싶었던 이유가 절반이라면, 절반을 채워준 것은 이 책의 제목과 서론이었다.


11월 19일 있었던 이나영책방의 책모임 공지문. 매우 영감 넘치는 모임이었다.


사이토 교수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현대의 아편'이라며 호기롭게 서문을 여는데, 이 SDGs를 사실상 모든 프로그램과 사업의 목표로 삼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는 나에겐 아무 흥미로운 모험의 서막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책 제목도 지속불가능 자본주의라니, 그동안 조금 불만스러웠던 이 체제를 본격적으로 '깔' 것 같은 기대가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부제를 놓치고 말았다. 이 책의 부제는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인데, 이 부제를 놓치지 말았어야 하는 이유는 뒤에 설명하겠다.


SDGs를 일상에서 잘 듣지 않아 익숙해하지 않는 독자라도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에코백을 사고,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구입하는 행위가 무의미하고 심지어 유해하다고까지 말하는 서문의 첫 문단에서 흥미를 느껴 이 책의 내용을 더 알고 싶어 지거나, 혹은 반감을 느껴 이 작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보자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저자는 텀블러, 에코백 그리고 SDGs는 사람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덜어낼 구실이 되고, 진정 필요한 더 대담한 실천에서 멀어지도록 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의 3분의 1 정도는 자본주의가 기후위기를 어떻게 일으켰는지를 설명하고 분석하는데 쓰고, 3분의 1 정도는 우리가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하고 탈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쓴다. 그리고 그 사이 3분의 1은 마르크스를 옹호하는데 쓰는데, 나는 기존에 마르크스에 대해 별 생각이 없던 터라 이 부분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이 부분을 읽지 않아도 뒷부분 읽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 정말 대충 읽었다.


대신 나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가 기후위기를 어떻게 일으키고, 사람들을 자본주의 속에 가두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다. 기후위기, 가난, 불평등과 같은 현상들을 일으키는 체제 속에 적절한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특히 좋았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듯, 뭔가 찝찝했던 것, 마음에 들지 않던 것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을 때 더 정확히 겨냥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첫 번째 이름은 '제국적 생활양식'이다. 사이토 교수는 우선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이 책에서 저자는 글로벌 사우스를 "자본주의의 세계화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지역과 그곳의 주민들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다)에 주목해 자본주의와 기후위기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며,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브란트와 마르쿠스 비센이 말한 '제국적 생활양식'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제국적 생활양식은 간단히 말하면 한국과 미국 같은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풍요로운 소비와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부정적 대가를 글로벌 사우스에 떠넘기는 양식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노스의 저렴한 의류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글로벌 사우스에선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대량의 목화 재배를 위해 몸과 토양에 해로운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뿌린다. (27쪽)


선진국의 풍요를 위해 글로벌 노스를 희생시키는 방식은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하청을 떠올리게 한다. 주로 대기업인 원청 기업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을 다른 하청 회사에 떠넘기는 하청은 '위험의 외주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제국적 생활양식'도 풍요에 뒤따르는 유해하고, 위험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다른 곳으로 떠넘기는 하청, '위험의 외주화'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오염도 줄이고 경제 성장도 이루었다는 선진국들이 간혹 있는데, 이들 또한 자원 채굴이나 쓰레기 처리 같은 경제 성장에 따라오는 부정적 영향을 외부로 떠넘긴 결과라고 사이토 교수는 지적한다. (35쪽)


두 번째 이름은 '채굴주의'다. 자본은 그동안 석유, 토양의 양분, 각종 금속처럼 쓸모가 있는 것들을 모조리 채굴해왔는데, 이 책은 그런 행태를 '채굴주의'라고 불렀다. 이 책에서 채굴주의는 그리 길지 않게 소개된다. 자본이 그동안 자본의 성장을 위해 해왔던, 주로 선진국 외부에서 이어진 채굴이 자원이 고갈되어가며 점점 불가능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나는 이 '채굴'이라는 표현이 석유나 가스, 금속을 넘어 코인에까지 쓰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자본주의는 실제 존재하는 자원을 채굴해서 고갈시키는데 멈추지 않고, 그 자원들을 다시 태워 만든 가상의 자원을 채굴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35쪽)


기후위기 대응이란 명목으로 각국 정부가 내놓는 '그린뉴딜', '녹색성장'도 사실은 이 '채굴주의'의 일부다. 탄소배출을 줄인다는 전기자동차의 배터리를 만들기 위한 리튬과 코발트 등은 글로벌 사우스에서 채굴되고, 이 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환경 파괴와 노동 착취가 일어난다.


세 번째 이름은 '포섭'이다. 저자는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이 무력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말한다. 과거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도구와 생활양식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었는데, 현대인들은 상품을 소비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력해진 사람들은 자본주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무의식 중에 느끼게 되었고, 그 때문에 대안을 내놓아야 할 좌파도 상상력이 빈곤해졌다고 한다. 국내에서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정의당도 경제성장률이 2%대로 낮아진 것을 문제로 지적하며,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 등의 국제 '녹색산업' 시장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경제발전의 토대를 바꾸자는 '그린뉴딜'을 국회의원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현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참고로 저자는 그린 뉴딜에 대해 한 다큐멘터리의 카피를 따 이렇게 말한다. "멸종에 이르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정의당의 '성장' 정략, '그린뉴딜'. 출처: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정의당 정책공약집

상품 없이는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스스로를 성실하고 성능 좋은 '상품'으로 포장해 상품을 만드는 일자리를 얻고, 거기서 돈을 벌고, 다시 상품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경제성장 없이는, 혹은 '녹색 기술'없는 미래를 꿈꿀 수 없게 된 정치인들은, 상품을 만들어내고 소위 말하는 '혁신'이란 걸 하는 자본가들에 기댄다. 그들이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녹색 기술 혁명을 이루어주길 기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의 부속품이 되고,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것, 저자가 /잡아먹히고 빠져드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 '포섭'이다.


이 외에도 여러 흥미로운 개념들이 나오는데,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길 권하며, 이렇게 다양한 개념을 통해 기후위기의 원인인 자본주의를 분석한 저자는 암울한 미래의 모습, 그리고 그런 미래를 피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출처: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114쪽


사이토 교수는 인류 앞에 놓인 선택지를 네 가지로 분석한다. 첫 번째 기후 파시즘은 지금 그대로 간다면 도달하게 될 수 있는 상태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엄청나게 증가한 상황에 초부유층은 그 권력과 부를 유지하거나 더 늘려나가고 국가는 그 외 사람들을 엄격히 관리하는 체제다. 두 번째 야만 상태는 기후 파시즘에서 국가의 역할이 빠진 것으로, 상위 1퍼센트 대 나머지 99 퍼센트의 대결이 일어나 99퍼센트가 이긴 뒤 대혼란의 상태로 빠져드는 것이다. 세 번째 기후 마오쩌둥주의는 독재국가가 등장해 평등주의적 기후변화 대책을 실행하는 체제다. 여기까지 보면 저자는 정부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느낌이 든다. 기본적으로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정부는 오직 사람들을 억압하는 존재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은 저자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상태, 마지막 네 번째 미래인 X에서도 드러난다. 저자는 X를 "사람들이 강한 국가에 의지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민주주의적인 상호부조를 실천하여 기후 위기에 맞서는 것"으로 소개하는데, 그것이 바로 책 말미에 등장하는 탈성장 코뮤니즘이다.


저자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만년의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마르크스를 생산력 지상주의와 유럽중심주의로 잘못 해석해왔다며, 그의 만년 노트를 근거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업데이트하고, '탈성장 코뮤니즘'을 지속 불가능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앞서 이야기한 내가 제대로 읽지 못한 책 중간의 마르크스 옹호와 그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나에겐 사실 이 탈성장 코뮤니즘이란 개념도 잘 와닿지 않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해한 바를 대략 요약하자면, 코뮤니즘은 토지나 물, 전력처럼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자 생산수단이기도 한 것을 사회가 함께 관리하는 커먼즈(Commons)로 회복하고, 이러한 커먼즈를 전문가나 정부가 아닌 사람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관리하는 것이고, 탈성장은 자본주의의 가속주의 대신 감속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탈성장 코뮤니즘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장에서의 상품 '가치'가 아닌 실제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도를 의미하는 '사용가치'로의 전환, 마케팅이나 광고처럼 상품 가치를 만들기 위한 노동을 줄여 노동시간 줄이기, 획일적인 분업 폐지를 통한 노동의 창조성 회복 등등을 제시한다. 대부분 앞서 언급한 자본주의의 문제, 과잉 생산과 소비의 악순환을 일으키는 그 고리를 끊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한 중간까지는 신나게 읽다가 중간을 지나며 조금 힘도 빠지고 집중력도 떨어졌지만, 그래도 몇 가지 배운 것이 있었다. 앞서 말했듯 세 가지 '이름'을 알게 되어 지금의 상황을 더 또렷이 보고 비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이 위기의 해결책은 무엇을 더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성장이라는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 어떻게 더 적게 만들고, 적게 쓰면서,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하청'을 두지 않고 살아갈 것인가에 달려있다는 믿음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4차 기술 '혁명'이 일어났다고들 하지만 이 '혁명'은 제국적 생활양식과 채굴주의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다. 위기의 시대, 진짜 혁명은 새로운 상상력에서 출발해 탈성장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나가는 연구와 실천으로 일어날 것이다.




같은 책모임에 참여했던 "소피"님의 정갈하고 신중한 리뷰는 아래 링크에서   있다.

https://brunch.co.kr/@hildeandsophie/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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